지금까지 없던 신종 수법이다.
본래 3·1절은 분단을 몰랐다. 분단이 없으니 통일이란 말도 필요 없었다. 그저 자주독립과 세계평화를 한 목소리로 담았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분단 속에서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3·1절 기념식이 아니라 훼손식이라 할 수 있다. 100여 년 전에 자주독립하자고 나선 길을 분단으로 귀결시켜놓고 기념식을 하는 것은 너무나 뻔뻔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1운동은 헌법의 뿌리인 만큼 기미독립선언서도 헌법문서로 보아야 한다. 헌법을 읽는 국민들은 앞으로 독립선언서도 찾아 읽어보아야 한다.
최근 진보의 대선후보인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보수를 향하여 대연정을 주장한 데 대해 국민은 높은 평가를 함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의 대선후보인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이미 연정을 통해 경기도정을 이끈 데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함이 마땅할 것이다. 우위를 점한 한 진영에서 곤경에 처한 다른 진영에게 진심어린 손길을 내미는 것은 참된 화해와 상생의 길을 여는 첩경일 것이다. 총체적 난국의 상황에서 집권에 성공을 거둔 한 진영이 홀로 헤쳐 나가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대연정이 요구되는 바가 또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이전해 행정수도를 완성하자"고 주장했다. 현재 청와대로부터 지역으로의 수도이전은 지방자치,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해 보인다. 또 행정청들과 청와대 국회가 분리된 이후 너무 많은 불편과 낭비가 드러난 바 있다. 그러나 필자가 수도이전에 찬성하고 청와대시대의 종언을 주장하는 것은 조선시대 이래 지속되는 왕조문화의 고리를 끊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공직자라면 묵비권은 거의 사용해서는 안 될 권리라고 생각된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법률」(국회증언감정법) 제4조를 보더라도 공직자들은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다분히 사적인 권리인 묵비권을 공직자들이 즐겨 쓰는 것은 공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임을 생각해보자. 공직자들은 헌법상의 책임정치의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책임(accountability)정치란 어떤 사건에 대해서 공직자의 판단을 설명(account)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설명이 맞으면 집행력이 인정되는 것이고 아니면 책임을 져야 한다.
어제는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를 친박계가 집결하여 다시 잡았다고 한다. 야당도 이제 친박 새누리당과는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친박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박근혜 범죄동아리라 할 수 있다. 검찰로부터 범죄공모자로 지목되었고, 국헌문란으로 탄핵소추까지 받아 나라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그 대통령을 한사코 지키겠다는 충성집단이다. 의리와 충성이 사라진 이 사회에서 그래도 죽어가는 보스를 지키겠다는 그 일념만큼은 귀하게 봐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이 집단은 어디 영화에 나오는 깡패집단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집권당이다.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이런 망칙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 눈앞이 깜깜해지지 않을 수 없다.
탄핵소추를 위해서는 그 위법행위가 무엇인지를 가급적 정확히 알아야 한다. 위법행위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탄핵소추단계에서뿐만 아니라, 향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할 때는 더욱 필요하다. 명백한 법위반 사실을 기초로 심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검찰은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고 생각되는 대통령에 대한 진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기소와 재판은 나중에 하더라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생략하고서는 현재 기소된 사람들에 대한 재판도 공허해질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와 심판 모두가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래서 검찰은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해야 한다.
6.25 전쟁 이후 군부정권의 종식까지 우리 사회는 상시적 계엄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87년 개헌부터 30년 동안 계엄은 잊고 살았다. 잊을 정도가 아니라 계엄 정치와는 아주 멀리 멀리 떠나와 있다. 계엄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보다도 더 어렵다던 암울한 시절에나 횡행할 수 있었던 것이었지 지금은 언급조차 해서도 안 될 야만적 통치방식이다. 이참에 우리 국민들은 헌법이 정한 계엄 규정을 살펴보면 좋겠다. 한 번만 읽어봐도 현 시국이 계엄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과, 만약 특정 집단이 정권수호차원에서 계엄을 꿈꾼다면 그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형법상의 내란행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야당만 해도 과반수를 넘는다. 전 국민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야당이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국민의 품에 안긴다는 것이 무슨 어리광인가? 대의제 민주주의는 엘리트정치다. 맞다. 그런데 이때의 엘리트가 어리숙한 국민 위에 서서 가진 자가 군림한다는 의미라면 대의제는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대의제의 본령은 국민들보다 더 현명하라는 데 있다. 대표자들은 엘리트로서의 의식과 능력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 대표자들에게 월급 주고, 세비 주고, 헌법상 특권을 부여하는 이유는 정치전문가들에게 국정을 맡기고 국민이 편하게 지내보자는 데 있다.
국민들은 주말에, 그리고 매일 광장에 나가 함성을 지른다. 그런데 국회는 손해 보지 않으려고 행동을 자제한다. 화투놀이 하듯 모여서 상대방(국민과 대통령과 다른 정당)의 행동예측과 수읽기에만 골몰한다. 그 틈에 대통령이 중환자실을 나와서 활보한다. 국민들은 불안해서 더욱 바빠질 것이다. 대통령은 제발 그대로 누워계시라고 소리쳐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가 누구인가? 바로 국회다. 제발 정치적 계산 좀 하지마라.
비록 단기간의 총리지만 새 국무총리는 대통령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중대한 자리가 된다. 그렇다면 어떤 인물이 적합할까? 이를 위해서는 거국중립내각의 성격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현 상황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해 강력히 책임을 묻는 정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리는 국회가 추천하되 야당 몫이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현재의 김병준 내정자는 결격사유자에 해당한다. 또한 새 내각은 중립내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여야에 두루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적합하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과 같은 정치상황이야말로 개헌상황 혹은 혁명상황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개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혼란스런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나가는 것이냐가 향후 헌법운영의 전범이 될 것이다. 거리 시위를 통해서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은 지난 87년 상황까지 많이 해본 방법이다. 저항권이 헌법의 기초라는 것은 지당하다. 그런데 저항권행사는 특히 50대 이상의 우리 국민들은 이미 숙달한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대의정치 안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대통령이 개헌착수를 선언했다. "개헌은 블랙홀이라 다른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국민의 이익에 반한다. 그래서 개헌은 있을 수 없다."는 종래의 주장대로라면, "이제는 블랙홀이 필요한 시점이고, 다른 아무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해석된다.
1948년 헌법을 무어라고 부르는가? 요즘은 '제헌헌법'이라고 많이 지칭하는 것 같다. 그런데 1980-90년대에는 '건국헌법'이라는 호칭이 더 많이 쓰였다. 그것은 당시의 제일 유명했던 두 분의 헌법학자, 김철수교수와 권영성교수의 헌법학 책에서 서로 다르게 쓰였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제헌헌법'이라 했는데, 권교수의 경우에는 제헌헌법의 어법을 문제 삼았다. 다시 말해 '헌법을 제정하는 헌법'이라는 '제헌헌법'의 용례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건국헌법'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래서 많은 법학도와 수험생들이 약 20년 동안 '건국헌법'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졌다.
접대문화는 민주사회에 역행한다. 평등관계에서의 대화와 의사결정을 저해한다. 접대라는 매개고리로 대화는 지속되지만 거기에서 산출되는 의사결정은 왜곡과 불합리를 수반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제3의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접대문화와 왜곡된 의사결정구조가 전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하자. 아니 이것은 가정법이 아니라 현실태이다. 우리나라는 부정부패지수 40위권에 들어가 있다.
사실 여성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박근혜대통령이 먼저 했다. 박대통령의 당선은 분명 한국사회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 당선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노예해방과 여성해방과 같이 사회발전의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많이 미흡하다. 우선 당선의 배경에 아버지 후광이 있었고, 또한 대통령으로서도 차세대 출신답게 과거 아버지의 공적과 과오를 분별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진취적 정치를 했어야 한다. 우리가 밖으로 자부하고 자랑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지점인 것이다.
결혼식을 부모가 치른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혼주는 법적 개념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부모의 결혼식장이 된다. 그래서 하객이 신랑신부의 결혼 축하객이라기보다도 반쯤은 부모의 지인들이다. 그러니까 결혼식 진행에 별로 관심이 없다. 부모와 인사하고 축의금을 내면 사실상 하객의 임무는 끝난다. 그래서 얼른 피로연장으로 가서 식사를 마치는 게 일이다. 황금주말이 이렇게 형식의 시간으로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사치의 문화는 답습되고 전염된다.
헌법이 정한 긴급상황이 아닌데도 대통령은 그와 같이 권한행사를 했다. 개성공단 중단은 국무회의도 거치지 않고, 자문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만을 거쳐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단하고, 주무장관인 통일부장관을 앞세워 진행했다. 관련법인「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과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는 공단 전체의 폐쇄에 관한 규정이 없다. 다만, 법을 위반한 기업에 대해서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정지명령이나 승인취소의 사유만을 적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번 결정은 법률에 근거를 둔 행위가 아니다. 북측은 지도자 마음대로 결정하는 나라지만, 우리는 입헌민주국가로서의 의사결정과정이 있다. 헌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했고, 법률이 없으면 그 근거를 마련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