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2년 06월 23일 14시 49분 KST | 업데이트됨 2022년 06월 23일 14시 51분 KST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 그 1년 후: 수사기관부터 초등생 교실 안까지 파고든 여성혐오의 현장

여가부 폐지라는 구호는 지난 1년간 한국 사회 곳곳의 백래시를 자극하는 ‘시그널’이 됐다.

한겨레 김진수 선임기자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국회 앞 도로에서 기습 기자회견을 하려던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 철회’를 요구하는 펼침막을 펼쳤다.

2001년 설립 뒤 20년 넘게 존속한, 국가 성평등 체계의 중심인 여성가족부는 정치인들 입에 하염없이 휘청였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정치인의 ‘구호’는 그들의 입에서 나와 공론장에 뿌리내렸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여가부는 아직 존재한다. 여가부 폐지를 위해선 정부조직법이 개정돼야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는 남아 있지만, 구호가 남긴 여파는 크다. 여가부 폐지라는 구호는 지난 1년간 한국 사회 곳곳의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를 자극하는 ‘시그널’이 됐다. <한겨레>는 정부 움직임과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여가부 폐지 구호가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 수사기관, 교육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봤다.

지난 1년,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에 따른 파장은 이 부처 존폐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보다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개별적인 방식으로 작동했다. 성평등 정책과 체계는 다양한 양상으로 위축과 퇴행을 거듭했다. <한겨레>가 인터뷰한 수사기관, 성범죄 피해자 지원단체, 여가부 산하·협력 기관, 성평등 교육 활동가와 교사 등 각계 관계자 18명은 지난해 7월 ‘여가부 폐지’ 주장이 나온 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쇄적으로 위축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산하·협력 기관까지 연쇄 위축

여가부와 함께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지원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은 당장 여가부 기능 확대가 절실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여가부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이들 기관·단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성매매 여성 처벌 조항 삭제와 성 구매 수요 차단을 위한 ‘성매매처벌법’ 개정 운동에 주력하고 있는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의 이하영 대표는 “2년 전 아청법(청소년성보호법) 개정 때만 해도 여가부는 개정안에 반대했던 법무부를 설득하고 중재하는 등 도움이 됐지만, 폐지론에 휩싸이면서 과거처럼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피해자에게 끼친 영향은 훨씬 직접적이다. 여가부 산하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지원센터)의 활동가 ㄱ씨는 “인력이 워낙 부족하니 얼굴이나 일상을 찍은 불법촬영물로 피해를 본 피해자는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고 했다. 올해 예산·인력은 전 정부에서 확정한 사안이지만, 여가부 폐지 기조를 내세운 새 정부가 지원센터를 강화할지는 불투명하다.

여가부와 지방정부, 의료기관, 경찰청이 협력해 운영되는 일부 해바라기센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4자 협력이지만, 예산 등 주요 지원·운영은 여가부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해바라기센터에서 일하는 ㄴ씨는 “워낙 급여 수준이 낮은데다 여가부 폐지론까지 나오니 구인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다. 심지어는 해바라기센터 존속 여부를 묻는 전화까지 온다”고 했다.

 

“무고죄 인지가 ‘실적’되면 피해자 입 닫는다”

여가부 폐지론과 함께 제기된 ‘무고죄 적발·처벌 강화’ 주장은 피해자와 지원단체는 물론 수사기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ㄴ씨는 “무고죄 이슈가 있기 전에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면, 이제는 ‘혹시라도 제가 무고로 역고소 당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먼저 할 정도”라며 “자신이 성폭력 피해를 봤는데도 사회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우려하는 분들이 결국 센터에 발길을 끊곤 한다”고 말했다. 이하영 대표는 “활동가인 우리도 혹여나 내담자가 사건 진행 과정에서 상처받거나,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을까 봐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처벌하자고 적극적으로 독려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집계한 45개 성폭력상담소의 무고 상담 횟수를 보면, 2018년 531건이던 상담 건수는 2020년 211건으로 감소세를 보였지만, 지난해 404건으로 전년 대비 91%나 증가했다. 성범죄 사건 수사 마무리 전 무고 수사를 개시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대검찰청 수사 매뉴얼이 2018년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 이후 개정됐고, 2019년 12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시행돼 수사기관의 2차 피해에 문제 제기를 할 근거가 생기면서 무고죄 상담은 꾸준히 줄었으나, 지난해를 기점으로 크게 반등한 것이다. 올해 4월까지 집계한 무고죄 상담 횟수도 150건에 이른다.

무고죄 적발·처벌 강화 공약은 여가부 폐지와 달리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 공식적으로 담겼다. 일선 경찰들은 이 점 때문에 성범죄 수사가 무고죄 수사로 치우치고, 피해 신고가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현직 경찰인 ㄷ씨는 “무고죄 ‘적발’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고소·고발이 아닌 ‘인지수사’를 늘리겠다는 의미다. 전체적으로 젠더 범죄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약해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현직 경찰인 ㄹ씨는 “과거 사례를 봤을 때, 국정과제에 포함되면 ‘성과 점수’로 연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고죄 인지수사=실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경찰이 성범죄 수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 왔는데, 앞으로는 무고를 잡아내는 데 더 초점이 맞춰질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교실 안, 여가부 자료만 인용해도 반발

여가부 폐지 주장은 교실 안 ‘성평등’ 교육의 장마저 흔들고 있다. 이한 성평등 교육 활동가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여가부 폐지를 공식화한 뒤로는 여가부 자료를 단순 인용만 해도 학생들이 ‘여가부 폐지한다던데요’ ‘남성가족부는 왜 없어요?’ ‘여가부가 잘못했으니까 정치인도 폐지해야 한다고 하는 거겠죠’라며 술렁인다”고 했다.

한겨레,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아카이브 ‘빅카인즈’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지난 1년간(2021년 6월13일∼2022년 6월13일) 4616건의 기사가 생산됐다. 전해 같은 기간(443건)에 견줘 10배 이상의 기사량이다. 기사량이 눈에 띄게 늘었던 시기는 지난해 7월(654건), 지난 1월(719건)과 3월(1437건)이었다. 지난해 7월은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유승민 전 의원, 하태경 의원 등 국민의힘 대선주자들과 이준석 대표가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내세울 때다. 지난 1월은 윤석열 대통령(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이 ‘여성가족부 폐지’ 7자 공약을 페이스북에 올려 시선을 끌었던 시기다. 지난 3월에는 윤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여가부 폐지 공약 현실화에 대한 우려가 극에 달했던 때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국민의힘 정치인을 중심으로 확대·재생산된 여가부 폐지 주장은 성차별 인식을 공적으로 표출해도 된다는 신호탄으로 작용했다는 말도 나온다. 지역의 한 초등교사 ㅁ씨는 “여가부 폐지와 정말 무관한 상황, 예컨대 (여성 교사인 내가) 실수로 미술 시간에 붓을 떨어뜨리는 상황에서도 남성인 학생들이 ‘아, 이래서 여가부 폐지해야 해’를 마치 무슨 유행어나 놀이인 듯 말한다. 그러다 보니 수업시간에 쓸 예시를 준비할 때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반발을 의식해 성평등 이슈를 피하게 된다”고 했다.

여가부와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이유정 사무국장은 “지금처럼 성인지 감수성이 불필요하거나 논쟁적인 것으로 여겨지면 인권과 페미니즘에 기반한 포괄적 성평등 교육이 아니라, 형식적인 성규범 교육 위주로만 수업이 이뤄질 수도 있다”며 “이는 많은 성교육 강사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최윤아 기자 ah@hani.co.kr,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