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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의 어두운 미래

냉소적인 이들은 북한 사람들이 겪어야 할 심리적 외상이 더 나은 길로 나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투표권을 갖게 되면, 그들의 좌절감은 통일한국의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통일한국의 정치판에는 극좌와 극우적 사상을 망라한 저질의 선동꾼들이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 NK News
  • 입력 2015.11.26 08:43
  • 수정 2016.11.26 14:12
ⓒASSOCIATED PRESS

통일 이후 북한 출신의 사람들이 마주할 경제적, 사회적 차별

공개 석상에서 통일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때면 사람들은 곧잘 낙관적인 전망을 이야기 합니다. 통일한국이 이룩할 멋진 신세계는 낙관적 예상과 아주 다르지는 않겠지만, 그 어떤 긍정적인 사회변화 속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법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통일한국이 만들어지는 변혁 과정에서 북한 사람들은 패자로 낙오될 가능성이 큽니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 혁명과 현대화를 향한 격렬한 분투는 보통 '도시 중산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끌었습니다. 이 중산층은 대학 교육을 받은 사무직 근로자, 전문가, 숙련된 기술을 지닌 노동자, 말단 공무원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산당 해체시기를 거친 1991년 소련이나 노동자 시위를 통해 호네커를 쫒아낸 1989년 동독, 아랍 민주화의 봄의 물결을 탄 2011년 이집트를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민주화 시위는 위에서 설명한 중산층들의 참여로 이루어졌습니다. 중산층은 사회운동을 주도하며 사회변혁 운동에 필요한 재정적 자원과 군중의 요구를 조직하는 사람들입니다.1980년 말 동유럽과 소련에서 공산주의는 엄청난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폴란드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기타 공산국가에서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정부에 대항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의 관심과 은근한 지지가 필수적이었지만 공산국가들의 음울하고 노령화된 사회주의 지도자들을 몰아낸 것은 도시의 중산층이었습니다.

저는 북한이 이와 비슷한 미래를 겪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통일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시나리오는 이와 같은 민중 혁명을 통한 방법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날로 커지는 고통

공산주의 체계의 종말이 점점 다가올수록 공산주의 국가의 인민들은 민주주의로의 전환과 레닌주의 경제체계의 붕괴가 물질적 풍요와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국민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공산주의 체계의 말기에 물질적 풍요와 자유에 대한 꿈을 꾼 사람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낙관적 혁명주의자들의 희망 사항대로 흘러간 곳조차도 큰 마찰을 동반한 변혁의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1990년 초기 동구의 기술자, 엔지니어, 회계사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이 새롭게 부상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계에서 매우 뒤처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구 소련에서의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훨씬 더 혹독한 과정을 거쳤으므로 소련 중산층의 희망은 순식간에 실망, 더 나아가 깊은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같은 절박한 상황은 후일 푸틴이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유럽 도시 중산층의 대부분은 장기간에 걸쳐 다시 정상적인 사회적 궤도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처음 몇 년의 고된 변혁 기간 이후 산업은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고 신기술을 익힌 공산권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은 자신의 기술을 사회에 접목시킬 수 있었습니다.

의사, 학교 선생님과 공무원들도 새로운 기술과 규정을 익히는데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동구권 나라든 사무직과 숙련된 노동력의 수가 매우 제한적이고 외부에서 이들의 지위를 위협할 만한 노동력이 많이 유입되지도 않아 내부적으로 경쟁이 없다는 점은 큰 이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일한국에서는 상황이 많이 다를 것입니다.

오늘날 북한에서 근무하는 사무직 종사자들의 대부분은 통일한국에서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 큰 충격에 빠질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북한 출신의 의사, 사무원, 학교 선생님, 기술자, 엔지니어와 같은 사람은 한국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이론적 지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그 이론을 뒷받침할 기술적인 요소가 심각하게 미약하고 구식이라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기술적 격차는 과거 동유럽에서는 훨씬 적었습니다.

과거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국가들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뒤처졌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과 북한만큼 괴리가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날 북한의 기술적인 측면은 선진국의 1960년대와 비슷할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기술적인 측면만을 두고 본 것입니다. 2015년 현재 북한의 경제는 1965년 미국이나 독일의 경제 사정보다 훨씬 뒤처져 있습니다. 위와 같은 수준의 기술적 격차는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급격한 하락

통일 후 대량의 한국 자본이 북한으로 몰려갈 것입니다. 엄청난 양의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며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일거리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의 인사과가 평생 단 한 번도 컴퓨터를 다뤄본 적이 없고 CAD가 뭔지도 모르는 엔지니어를 고용할까요? 평생 한 일이라곤 구식 소련 장비를 다뤄본 것이 전부인 기술자를 고용할까요? 조악하게 번역된 수십 년 전 소련 교과서로 배운 북한 의대생이 통일한국에서 의사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요? 아는 지식이라고는 김씨 일가의 영웅적인 일대기뿐인 학교 선생님이 통일한국의 교편을 잡을 수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 현대 문학의 90퍼센트 이상은 접해본 적이 없는 국어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과거 북한에서 의료업에 종사한 사람의 대부분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 Photo: Eric Lafforgue

오늘날 한국에서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모습은 통일한국의 북한 출신 사람들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물론 탈북자들 중 전문가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현재 수백 명의 전문직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도 아주 일부만이 한국에서도 전문직 자격을 인정받고 그 직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2년 33명의 북한 의사가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 오직 여덟 명만이 한국 의사 시험을 통과해 의사 자격을 다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합격자 중 대다수는 수년간 고된 공부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익혀야 했습니다.

북한 출신의 전문가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을 여느 전문직에게나 평생 요구되는 '약간의' 재교육의 일환으로 보는 관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약간'의 재교육을 쉽게 볼 수는 없습니다. 재교육을 받는 비용은 상당한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할 것이며 이 재교육은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의 대부분에게 해당될 것입니다. 강한 의지와 운을 모두 지닌 몇몇은 성공할 것입니다. 반면 북한 정권의 몰락 이후 북한 중산층들 대부분은 사회적 지위의 급격한 하락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때 북한의 공학기술자는 숙련공이 되고 의사는 간호사로 일할 수 있겠으나 과거 '위대한 김일성 장군의 혁명 위업 역사'를 가르치던 북한의 교사는 과연 어떤 쓸 만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돈이냐 자긍심이냐

그렇다고 통일이 영원히 북한 사람의 생활수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과 한국 사이의 소득의 격차는 오랜 기간 유지되겠지만 통일은 대다수 북한 사람들의 소득 수준을 절대적인 수준에서는 급속하게 대거 향상시켜 줄 것입니다. 아마도 통일을 이룩한 처음 몇 년 동안은 전 세계에서도 비교 대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북한의 생활수준 향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과거 북한에서 엔지니어였던 사람이 미래 통일한국에서는 공사장 인부로 일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는 과거 북한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 중고차 구매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신체적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는 자신이 속한 사회적 위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기에 과거 엔지니어였던 북한 출신 인부는 통일한국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심지어는 그 사회를 적대하는 경향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 사회의 희생양이라고 여기고 김씨 일가가 지배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화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더 끔찍한 경우는 그나마 북한에 남아 있는 자리마저 한국 출신의 뜨내기 노동자들에게 뺏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모든 분야에서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전문가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와 같은 한국 대학 졸업자들은 민족주의적 이상이나 개인의 금전적 욕심이 동기가 되어 북한으로 몰려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이 인력들은 북한의 구직자들보다 훨씬 더 준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식의 사업 방법, 조직 구성, 상사와 동료를 대하는 방법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외부 구직자들은 통일한국의 경제를 회복하는데 필수적일 수도 있지만 북한 사람들은 이들을 환영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북한 사람들의 눈에게는 자신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냉소적인 이들은 북한 사람들이 겪어야 할 심리적 외상이 더 나은 길로 나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투표권을 갖게 되면, 그들의 좌절감은 통일한국의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통일한국의 정치판에는 극좌와 극우적 사상을 망라한 저질의 선동꾼들이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위에 제가 제기한 모든 문제들이 일정 시간 이후 잦이들거나 사라질지 여부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차별과 불공평한 대우는 사회의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내려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중산층 아이들은 한국 중산층 아이와의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에 한반도의 남부와 북부는 지역적 차이를 넘어 발생한 수입의 차이가 먼 미래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열이 정치와 엮이게 된다면 표면상으로는 통일이 되었을지언정 통일한국은 영원히 조각난 불안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과거 북한의 중산층은 통일한국에서 차별을 당하고 주변적인 존재로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동시에 그들은 과거 북한의 정체성을 그 누구보다 잘 간직하고 이어나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런 중산층들은 통일한국의 새로운 사상과 삶의 방식과 엮이려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Nikolaevich Lankov)는 1980년대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수학한 세계적인 북한 전문가입니다. 안재혁이 번역하였으며 메인사진은 Eric lafforgue가 찍은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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