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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포 그리고 사토리 세대의 만화

당연히 이런 젊은이들의 성향은 창작과 콘텐츠 산업 일선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좀처럼 젊은이들이 만화잡지를 사지 않는다. 연일 부수가 추락하고, 폐간하는 잡지가 줄을 잇는다. 단행본 시장은 유지는 되지만, 타이틀 숫자는 늘어난 것에 비하여 시장 크기는 거의 그대로라서 이전보다 상품이 팔리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의 디지털 만화 시장은 점점 크기가 커지고 있다.

ⓒASSOCIATED PRESS

삼포 (연애, 결혼, 출산)가 아닌 오포(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포기) 세대

일본의 많은 만화 출판사는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독자를 대상으로 앙케이트 조사를 실시한다. 물론,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 푸짐한 경품을 내건다. 앙케이트는 단순히 어떤 작품이 인기 있는 가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독자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기 위한 조사다. 따라서 앙케이트 항목이 수백개에 달한다. "취미가 무엇인가?" "한 달 동안 사용하는 용돈은 얼마인가?"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는가" "하루에 텔레비전을 얼마나 시청하는가" 등으로 사회학 조사와 비슷하다. 이런 데이터를 얻으려는 목적은 의외로 단순하다. 독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그들이 원하는 만화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출판사가 머리를 쥐어짜며 파악하려는 지금의 일본 독자, 주로 젊은이들은 어떤 사람일까? 여기서 요즘 확연히 달라지는 한〮일 간의 독자 취향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에서 바라본, 일본의 젊은이들은 얼핏 우익 사상에 조금씩 물들어가는 과격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우익이나 우경 사상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인터넷에 머물러 있다. 물론 대표적인 반한단체인 '재특회'(재일교포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임)같은 모임도 있고 이들의 데모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이들은 지극히 소수다.

지금 일본 젊은층이라 부를 수 있는 20대는 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로, 흔히 사토리 세대라고 불린다. 뭔가를 해탈했다는 뜻인 '사토리さとり'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전 세대가 추구한 욕망이나 욕구에 흥미를 잃었거나 포기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10대쯤, 일본 경제가 저성장-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었다. 사토리 세대는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를 보고 자랐을 것이다. 20대가 된 지금에는 낮은 취업률에 시달리고 일본 전체에 만연한 젊은층에 대한 노동력 착취 문제(블랙기업)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들은 이전 세대가 누렸던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출세를 하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고 미인과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등에 별반 관심이 없다. 이런 것들을 삶의 목표로 삼고 매진해온 자신들의 부모들이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 지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일본과 한국의 다른 점은 한국의 최저시급은 턱 없이 낮다는 점.

주된 소비계층으로 이야기되는 젊은이들의 의식변화는 당연히 산업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단적인 예가 일본의 자동차 산업인데, 그들은 좀처럼 자동차를 사지 않는다. 명품이나 화려한 디자인의 신차를 내놔도 아무런 흥미가 없다. 그냥 전철을 타고 다니는 게 편하게 생각한다. 이전 세대가 궁극의 목표로 생각하는 집을 사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월세를 내고 살아가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한다. 바깥에서 귀찮은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을 하느니 그냥 인터넷으로 사람들과 소통해버리고 끝낸다.

당연히 이런 젊은이들의 성향은 창작과 콘텐츠 산업 일선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좀처럼 젊은이들이 만화잡지를 사지 않는다. 연일 부수가 추락하고, 폐간하는 잡지가 줄을 잇는다. 단행본 시장은 유지는 되지만, 타이틀 숫자는 늘어난 것에 비하여 시장 크기는 거의 그대로라서 이전보다 상품이 팔리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의 디지털 만화 시장은 점점 크기가 커지고 있다. 작년에 모습을 드러낸 스마트폰 용 어플리케이션 만화 매체인 '코미코'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다운로드수가 900만에 육박했다. 또 주요작품을 단행본으로 내놓아 괄목할 만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전자 만화 매체가 생겨나고 있다.

이전 세대가 돈과 사랑 중에 고민했다면 오포세대와 사토리 세대는 둘 모두를 포기한다....

여기에는 현재 일본 젊은이들의 사정이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이들 세대는 이전과 다르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가 않다. 부모 세대가 이전과는 다르게 여유가 없으니 자급자족을 해야 하고, 그러니 소비를 최소한도로 억제한다. 만화책을 사는 것도 부담스럽다. 물론, 만화책은 일본 전체의 문화상품 시장을 생각하면 비교적 싸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다른 곳에 돈을 써야할 곳이 존재한다. 바로 휴대폰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LINE'등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기가 어려워졌다. 트위터 등의 SNS서비스에 참여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당연히 스마트 폰이 필수적으로 필요해진다. 일본에서 이러한 스마트 폰을 유지하려면 한 달에 1만엔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스마트 폰에는 엄청난 규모의 공짜게임과 만화 서비스들이 포진 하고 있다. 그러니 점점 돈을 지불하는 기성 상품들에 참여하기 어려워지는 국면이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소년 점프'가 내어놓은 꿈이나 도전, 우정. 소년 매거진의 피눈물 나는 노력, 근성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아버지 세대가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서 이룩한 사회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의 일본 만화는 과격할 정도의 묘사와 과장된 인물들의 감정이 넘쳐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이러한 것들에 지쳐있고 잔혹하거나 짜증을 유발시키는 것 등으로 자신이 불쾌한 경험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요즘의 만화들- 특히 대중적 취향의 가장 최전선에 서있는 일본 웹툰-에서는 과장된 감정보다는 이른바 치유계 등으로 불리는 부드러운 만화들이 주류를 이루고 좀 더 환영받고 있다. 당연히 극단적인 취향을 다루고 있는 오타쿠 만화 등도 이런 디지털 만화 업계들로부터는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글_ 이현석/한일 간 만화 기획자, 스토리 작가.

* 이 글은 에이코믹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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