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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계의 허니버터칩으로 등극한 바로 그 소주(사진)

ⓒ한겨레

지난 28일 오후 8시께. 서울 다동의 한 술집. 30~40대의 중견기업 직장인 11명이 보쌈을 안주삼아 소주와 맥주를 마신다. 직장인들의 흔한 회식 자리다.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어갈 무렵, 평소 애주가라고 소문난 이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술 한 병이다. 동료들은 술집에 술을 가져온 악행(?)을 타박하는 대신 반색하며 경쟁하듯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너도 나도 사진 찍기에 바쁘다. “여기서 이걸 맛보게 되다니!”, “요새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면 ‘좋아요’ 가 엄청 달린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직장인들이 환호한 술은 지난 3월 말 롯데주류가 출시한 ‘순하리 처음처럼 유자’(이하 순하리)다. 언뜻 보면 병의 모양이나 색이 영락없는 소주지만 국내 관련규정상 소주가 아니다. 일반 소주는 ‘소주’나 ‘일반 증류주’로 식품유형이 분류되지만 순하리는 ‘리큐르’에 속한다. 술에 들어가는 ‘유자’때문이다. 성분표에는 ‘유자청장농축액 0.033%, 합성착향료(유자향)’이 적혀있다. 과일주스 제조 때 넣는 과일농축액이 들어간다. 알콜 도수도 14도. 17.5도인 ‘부드러운 처음처럼’보다 더 낮다.

‘순하리’는 출시 한 달 만에 150만병이 판매되었다. 최근 ‘주류업계의 허니버터칩’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지난해 제과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처럼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하기 어려워, 붙인 이름이다. 순하리는 현재 부산·경남 지역의 술집,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만 판매한다. 서울의 술집에서는 마실 수가 없다. 서울은 마트에서 판매하는 데, 물량이 부족해 ‘1인 1병 구매’를 원칙으로 내세운 마트가 있을 정도다.

조판기 롯데주류 상품개발팀장은 “서울, 경기 지역 공략을 목표로 개발한 술이 아니라 애초부터 부산 경남이 목표였다”고 한다. 부산·경남은 무학의 ‘좋은데이’(16.9도)가 지역강자로 군림해있다. 현재 소주업계는 ‘참이슬’을 내세운 하이트 진로가 1위, ‘처음처럼’이 주력 상품인 롯데주류가 2위, 무학이 3위다. 무학은 2006년 ‘좋은데이(16.9도)’를 내놓아 ‘순한 소주’ 시장의 문을 열고 부산 소주시장 점유율을 70% 가까이 올렸다. 강자와 대적하기 위한 ‘킬러 콘텐츠’로 롯데주류는 유자 맛을 선택했다. 조 팀장은 “레몬은 자극적인 신맛이라서 알코올을 만났을 때 쓴맛을 강화하지만 유자는 은은한 맛을 추가시켜준다. 마지막 단계에서 유자과즙을 넣는데, 과즙은 열을 받으면 변색하는 특징이 있다. 열처리를 안 한 유자과즙을 여과해 넣는 기법으로 변색을 막는다”고 말한다. 주스 제조업체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살려, 주류에 적용한 셈이다. 유자는 요리사들이 고급스러운 풍미를 넣고자 할 때 흔히 쓰는 식재료다.

순하리는 1990년대 대학가에서 유행했던 레몬소주처럼 유자 맛이 강하게 풍기는 칵테일 소주 맛이다. 소주 특유의 쓴맛을 유자 맛이 덮는다. 최근 인기의 비결은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90년대 대학을 다닌 30~40대에게는 추억을 부른다. 몇 년 전부터 20~30대 젊은 층에게는 칵테일이 인기다. 서울 홍대 맛 골목이나 이태원동 등지에는 칵테일 전문바가 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시나몬이나 블루베리 등을 섞은 위스키, 허브를 넣은 맥주 등이 자신을 드러내는 감성코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롯데주류 관계자은 “빠른 파급력이 있는 에스엔에스가 큰 역할을 했다. 호감을 가진 젊은 층들이 에스엔에스 채널로 다수의 제품 후기를 올리고 있다”고 말한다. 부산에 여행을 다녀온 이들의 입소문과 가격도 한몫을 한다는 해석이 있다. 조팀장은 “통상 과즙을 첨가하면 가격이 올리기 마련인데 최근의 경기침체를 고려해 일반 소주 가격과 비슷하게 책정했다”고 한다. 순하리의 출고가는 962.5원이다.

순하리때문만라고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3월 롯데주류 주식 가격은 160만원대였으나 현재 한 주당 가격은 230만원대로 올랐다. 한화투자증권 분당지점 피비(PB·개인상담) 성지선 과장은 “현재 순항중인 맥주 클라우드 공장증설 소식, 순하리 판매 호조 등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현재 롯데주류는 예상하지 못한 순하리의 인기로 공급이 딸리자, 이를 안정화할 필요하다고 판단해 5월 안에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본래 소주는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폭탄주’(맥주+소주)의 재료로 애용돼 왔다. 폭탄주로는 어떨까? 칵테일용 우산 장식만 꽂으면 그야말로 ‘영락없는 과일 칵테일’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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