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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로 승부 건 그 식당의 자부심

  • 남현지
  • 입력 2015.04.09 13:32
  • 수정 2015.04.09 13:35

크롬옐로의 ‘베이컨 뇨키’. 사진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요리

단호박을 주재료로 메뉴 개발한 크롬옐로, 하루에 한시간 해장국만 파는 부부청대문의 특별한 맛

부부청대문. 사진 박미향 기자

<세상의 모든 달걀 요리>(How to boil an egg)에는 84가지 조리법이 있다. 모두 달걀이 재료인 조리법이다. 2002년 프랑스 파리에 문을 연 ‘로즈베이커리’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재료’, 달걀을 주제로 펴낸 책이다. 84가지 다양한 색채로 맛의 변주를 시도한 달걀은 위대해 보인다. 국내에도 지난해 이와 비슷한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크롬옐로’에는 15가지가 넘는 메뉴가 있다. 대부분 단호박을 주재료로 만들었다. 흔히 연인들이 애정공세를 펼칠 때 ‘단 하나의 사랑’이란 표현을 쓴다. 크롬옐로에 단호박은 단 하나의 사랑이다. ‘단 하나’가 콘셉트인 곳은 크롬옐로만이 아니다. 하루 한시간 동안 단 한가지 음식만 파는 곳, 브런치 메뉴로 단 한가지 요리만 내놓는 곳들이 있다.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은 대학생들의 거리, 서울 성북구 동선동3가 성신여대 앞. ‘크롬옐로’에는 햇볕이 쏟아진다. 호박색 봄볕이다. 노란색 치마를 걸친 대학생은 노트북을 탁탁 치기 바쁘다. 봄은 카페에도 분다. 주문한 ‘단호박 스무디’가 물방울을 컵에 묻힌 채 나온다. 금방 입술이 민망해진다. 빨대를 꽂고, 있는 힘껏 입을 오므려가며 흡입해 보지만 노란 스무디가 잘 올라오지 않는다. 어쩌자고 주인은 단호박을 할머니 인심처럼 넉넉하게 넣은 것일까! 단호박 수프, 단호박이 들어간 샐러드, 단호박이 들어간 크림파스타인 ‘로제’, 단호박이 들어간 뇨키(수제비 같은 이탈리아음식) 등 크롬옐로의 메뉴엔 대부분 단호박이 들어간다.

옐로커피. 사진 박미향 기자

크롬옐로의 박재성(48) 대표는 “장기 보관이 쉽지 않은 단호박은 고급 식재료다. 1년 내내 같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자랑한다. 단호박은 수확하고 2주까지 당도가 높아 맛있지만 그 뒤로는 잘 썩는 성질 때문에 외식업체에서는 그다지 애용하지 않는 재료다. 박 대표는 종자 개발 등을 하는 회사 ‘온샘’의 단호박연구소와 연계해 급속냉동 등의 장기 저장 기술을 개발해 단호박을 공급한다고 한다. 1년 내내 유통에 문제가 없다. 박 대표가 자신있게 단호박 메뉴를 선보이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이다. 포장이 되는 단호박 컵수프도 있다. 단호박을 파서 신선한 해산물과 뇨키 등을 넣은 음식들은 푸짐하다. 작은 사이즈를 주문해도 여성 2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원두 몇가지를 섞어 직접 볶아 만든 커피는 단호박을 만나 ‘옐로커피’가 되었다.

광희동 허름한 골목 안

오후 5시부터 한시간 영업

연탄으로 밤새 끓인 양지 맛

해장하는 술꾼들에게 최고 인기

하루에 딱 한시간만 영업하는 식당이 있다면 믿겠는가? ‘부부청대문’의 영업시간을 알면 무슨 배짱인가 싶다. 오후 5시부터 딱 한시간, 6시까지 영업한다. 주인장은 “한시간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준비한 게 다 떨어지면 문을 닫는데 그게 한시간 정도”라고 말한다. 주인할머니를 보면 수긍이 간다. 그의 나이는 72살. 허리도 구부정한 박순분씨는 욕심이 없다. 한시간 영업을 위해 준비하는 데만 하루 종일 걸린다고 한다. 할머니가 솜씨를 발휘하는 음식은 해장국 단 한가지다. 기름기가 적은 국물 위에 손바닥 반만한 한우 양지머리 고기가 수북하다. ‘그릇을 고기로 메웠다’는 표현은 이 해장국에 쓰는 말이다. 싸구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숟가락을 푹 박으면, 최근 들어 영양가 때문에 인기가 있는 시래기가 푸짐하다. 가격에 또 한번 놀란다. 1만7000원.

화려한 서울에서 달동네보다 더 시선이 머물지 않는 동네,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도 힘들 것 같은 광희동 뒷골목에 부부청대문이 있다. 사철탕집 몇곳을 지나 고불고불 좁은 길을 지나면 을씨년스러운 골목이 나타난다. 영세한 인쇄소 사무실 등과 마주한 부부청대문은 옹색함으로 치자면 최고다. 금세라도 부서질 것 같은 의자와 식탁, 벽에 막 붙은 메뉴판, 널브러진 신문 쪼가리들. 반전은 오후 5시에 벌어진다. 문 연 지 6분 만에 15개 좌석이 다 찬다. 낯선 이와 함께한 식탁에서 해장국을 만난다.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고개를 숙여 퍼먹는다. 위장에서 신나는 출항을 서두르는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쫄깃한 육질에 이어 축축한 시래기가 혀를 쓰다듬는다. 이 집 해장국을 선택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증명해 보인다.

광희동에서 3번 정도 이사를 한 박 할머니는 지금의 자리에서 영업한 지는 13년째다. 40여년 동안 박 할머니는 해장국을 만들어왔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친정어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았다. “조선시대 양반들 음식”이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드러낸다. 국물 간은 간장이 아니라 된장으로 하고, 연탄을 12장이나 태워 밤새 국물을 끓인다. 잘 삶아 뜨거운 김이 폴폴 일어나는 한우 양지고기를 써는 할머니의 모습은 방학 때 찾은 외갓집 부엌의 풍경이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이가 있으면 다른 손님이 “거, 묻지 마시오. 나오는 시간이 늦어지니깐”이라고 타박한다. 40대 이상 술꾼들이 대부분이다. 손님들치고 긴 세월 알코올을 몸에 담은 흔적이 없는 이가 없다. 할머니는 국물 온도, 고기 온도를 감으로 최적으로 맞춰 낸다고 말한다. 한사코 언론 인터뷰를 거부하는 할머니는 단골들의 질문에는 아궁이까지 열어 보여준다. 지난 2일 한시간 동안 이 집을 찾은 손님은 31명이었다. 문지방을 나설 때 “건강하세요, 어머니”라는 인사말을 다들 건넨다. 손님은 박 할머니의 가족이다.

베키아에누보의 ‘에그 베네딕트 알베르토’. 사진 박미향 기자

에그 베네딕트 오스카. 사진 박미향 기자

다시 달걀 요리로 가보자.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베키아에누보’에는 브런치가 에그 베네딕트, 단 한가지 메뉴만 있다. 에그 베네딕트는 미국식 샌드위치로 대표적인 아침 식사다. 잉글리시 머핀 위에 햄, 베이컨, 수란을 얹고 홀런데이즈(hollandaise) 소스를 부은 음식이다. 이귀태(48) 주방장은 “에그 베네딕트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이가 많다”면서 자신이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쓴 이름을 붙인 ‘에그 베네딕트 알베르토’까지 개발했다고 말한다. 에그 베네딕트, 에그 베네딕트 로열(훈제 연어), 에그 베네딕트 플로렌틴(시금치), 에그 베네딕트 오스카(게살과 아스파라거스), 에그 베네딕트 알베르토(로브스터)가 메뉴판에 있다.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음식의 맛은 수란의 완성도에서 결정이 난다. 이 주방장은 식초를 넣은 물을 회오리가 일도록 젓고 난 다음 달걀을 넣으면 동그란 모양의 수란이 생긴다고 한다. 85도 물에 3분 정도 더 익히면 완성이다. 흰자는 적당히 익고 노른자를 터뜨렸을 때 흥건할 정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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