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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바이크 모으는 남자...델리 윤준호(사진)

1970~80년대 자전거의 멋을 되살린 빈티지 자전거…프레임, 구동계, 휠 직접 구해 조립하는 재미

인류 최고의 발명품을 꼽으라면, 바퀴는 세 손가락 안에 들 것이 분명하다.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 발명된 바퀴는 인간의 활동 반경을 크게 넓혔고, 그 결과 세상이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시속 300㎞를 훌쩍 넘기는 포뮬러원(F1) 경기용 자동차의 바퀴도 돌지만, 여전히 인간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원초적 바퀴도 함께 돈다.

원초적 바퀴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이 자전거일 터다. 19세기 초 독일의 카를 드라이스 남작이 발명한 ‘드라이지네’가 자전거로는 최초로 특허를 얻은 이후로, 200년 넘도록 애용되어온 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엔 두 발로 땅을 박차야 움직이던 것이 차차 페달, 체인, 고무 타이어, 변속장치 등을 장착하면서 인간의 힘을 최대한의 동력으로 끌어올리는 ‘첨단 기계’로 진화한 것이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일주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서 평지를 달릴 때의 평균 시속은 30~40㎞를 웃돈다.

꽃샘추위도 더는 심술을 부리지 못하는 4월이면 본격적인 자전거 시즌 시작이다. 한강시민공원은 자전거 라이더들의 천국이 된다. 투르 드 프랑스 선수로 빙의라도 한 듯한 ‘스피드족’부터 슬렁슬렁 유람하듯 주변 경관을 즐기는 ‘마실족’, 자전거에 매단 스피커로 트로트 음악을 크게 틀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뽕짝족’, 2인승 자전거를 타고 염장질을 해대는 ‘로맨스족’까지 각양각색이다.

이들 사이를 유유히 가로지르며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듯 달리는 라이더들이 있다. 빈티지 자전거를 사랑하는 ‘빈티지족’이다. 1970년대 머스탱 같은 클래식 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1970~80년대에 만들어지거나 그 시절 모델을 재현한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최근 몇 년 새 급증하고 있다. 빈티지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네이버 카페 ‘클래식 앤 빈티지’(cafe.naver.com/classicvintage) 회원은 3만3000명이 넘는다.

프레임·구동계·바퀴 세 부분으로 나눠 조립. 이탈리아·일본 제품 강세.

부품 하나하나 구해가면서 몇년 걸려 완성하기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빈티지 자전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바구니가 달렸거나 이른바 ‘쌀집 자전거’ 모양의 생활자전거, ‘사이클’로도 불리는 도로 주행용 로드 자전거, 산악용 자전거 엠티비(MTB), 바퀴 지름이 20인치 이하인 미니벨로, 고정 기어를 사용하는 픽시, 짐을 싣고 여행 다니기에 적합한 투어링 자전거…. 그중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빈티지 로드 자전거다. 1970~80년대 투르 드 프랑스 선수들이 실제로 탔던 자전거를 모델로 한 것이라 보면 된다. 그 이전 자전거도 분명 빈티지 자전거지만, 실제로 타기에는 성능이 떨어져 선호하지 않는다.

모던록 밴드 델리스파이스의 윤준호(베이스)는 이름난 자전거 마니아다. 델리스파이스 2집 <델리의 집으로 오세요>(1999)에 수록된 ‘달려라 자전거’도 그가 만든 곡이다. 윤준호는 자전거를 여러 대 갖고 있다. 그중 특히 애정을 갖는 ‘애마’는 1980년대 초반 모델을 콘셉트로 조립한 빈티지 로드 자전거다. 이탈리아 브랜드 ‘치넬리’에서 나온 자전거 프레임 ‘슈퍼코르사’를 5년 전 중고로 구하면서 조립을 시작했다. 자전거는 크게 프레임, 구동계, 휠(바퀴) 세트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중 자전거의 기본 뼈대인 프레임은 가장 중요한 핵심 부품이다.

자전거 프레임의 소재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전통적인 소재는 강철이다. 요즘도 보급형 생활자전거에 쓰이는 일반적인 강철 프레임을 하이텐 프레임이라 한다.

가격이 싼 대신 무거워서 속도를 내기 힘들다. 철, 크롬, 몰리브덴을 섞은 합금의 크로몰리 프레임은 같은 강철 프레임이라도 좀더 가볍고 주행성과 승차감이 좋다. 빈티지 로드 자전거는 주로 이 크로몰리 프레임을 쓴다. 강철보다 가볍지만 강도가 약해 더 두껍게 만든 알루미늄 프레임도 한때 크게 유행했다. 최근 들어선 가볍고 튼튼한 카본 프레임이 인기다. 워낙 고가여서 드문 티탄 프레임도 있다.

뮤지션 윤준호씨가 조립해 완성한 자전거. 2 여행용 자전거인 ‘비앙키 앙코라’.

윤준호는 “프레임의 소재는 뭐가 더 좋고 나쁘다 하는 차원이 아니라 각각의 장단점과 시대에 따른 유행이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카본 프레임은 공기 저항을 덜 받도록 하면서 강도를 높이기 위해 파이프를 두꺼운 디자인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크로몰리 프레임은 얇게 만들어도 강도가 충분히 높아 날렵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이들로부터 사랑받는다. “좋은 크로몰리 프레임을 보면 대단히 아름답다. 철 지난 소재임에도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라고 윤준호는 말했다.

크로몰리 프레임은 이탈리아 제품을 으뜸으로 치는 분위기가 강하다. 마시, 치넬리, 비앙키, 지오스, 펠리촐리 등이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다. 프레임을 만드는 소규모 공방의 명장 이름이 그대로 브랜드가 된 경우다. 이탈리아는 카본 프레임이 나오기 이전 세계 시장을 제패한 자전거 생산 강국이다. 각 제조사가 고유의 디자인을 갖고 있어 모양 자체로 구분이 된다. 한국에도 진사이클, 영사이클 등 소규모 공방이 있어 프레임을 주문 제작해준다.

먼저 프레임을 결정하고 나면 다음으로 구동계를 장착해야 한다. 변속장치, 브레이크 등을 같은 제조사 세트로 갖추는 것이 보통이다. 이탈리아 캄파뇰로, 일본의 시마노, 미국의 스램 등이 유명한데, 빈티지 자전거의 경우 특히 캄파뇰로 제품을 선호한다. 이탈리아산 빈티지 프레임에 일본 시마노의 최신 변속장치를 다는 경우도 있지만, 기왕이면 은빛이 도는 빈티지한 캄파뇰로 구동계를 다는 것이 조화롭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바퀴를 단다. 빈티지 자전거의 경우 ‘림’이라고 부르는 바퀴대의 높이가 낮고, ‘스포크’라 부르는 바퀴살이 많은 편이다. 핸들, 안장, 페달은 사람 몸에 직접 닿는 부품이라 각자 몸에 맞춰 편한 것을 고르면 된다. 이 역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제품을 장착하는 경우가 많다. 윤준호는 프레임을 산 뒤 전체 콘셉트에 맞는 부품을 하나하나 구해 최종 완성까지 2년이 걸렸다고 한다. 네이버 카페 클래식 앤 빈티지를 통해 중고 거래를 하거나 외국 경매 사이트 이베이를 이용했다. 부품마다 브랜드, 연식, 상태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완성차를 기준으로 싸게는 100만원대 중반으로 빈티지 자전거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모던록 밴드 델리스파이스의 윤준호. 사진 박미향 기자

윤준호는 매주 한 번씩 동료 음악인들과 단체 라이딩을 한다. 정식 이름은 없지만 장난처럼 ‘평양랭면 이륜단’이라는 이름으로 10~20명이서 자전거를 타고 냉면도 먹고 한다. 크라잉넛의 쌍둥이 형제 이상면·이상혁,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성기완, 와이낫의 김대우,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조문기(조까를로스), 킹스턴 루디스카의 서재하 등이 멤버다. 이들은 대부분 빈티지 자전거를 탄다. 최근 몇 명은 카본 자전거로 옮겨 탔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빈티지 자전거를 고수하고 있다. 김대우는 “뮤지션들이 세월의 흔적이 깃든 빈티지 악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자전거도 빈티지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준호가 빈티지 자전거를 세워두고 벤치에 앉아 쉬고 있으면 최신형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들이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아니, 이거 내가 젊은 시절에 꿈꾸던 자전거인데, 어떻게 이게…. 얼마짜리유?”

자전거는 순바람을 타고 달릴 때 편하다. 맞바람을 맞으며 달릴 때는 고역이다. 하지만 세월을 거슬러 달리는 자전거는 이토록 아름답다. 그 할아버지의 눈에도, 젊은 라이더의 눈에도.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빈티지 자전거를 탄다. 세월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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