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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레코드포럼. 굿바이 홍대앞 음반가게들

  • 김도훈
  • 입력 2015.03.26 06:29
  • 수정 2015.03.26 06:34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시간이 흐르면 음악도 사라진다. 인류는 음악이 사라지지 않도록 담아둘 장치를 고안했다. 19세기 말 등장한 축음기와 레코드판(LP)이다. 음악을 담는 그릇은 변천해왔다. 카세트테이프와 시디(CD)의 시대를 거쳐, 21세기 들어 디지털 음원 시대가 도래했다. 그릇의 물성이 사라지자 현실 세계의 음반가게도 사라져간다.

‘레코드포럼이 영업을 31일 종료합니다. 전 품목 50% 세일.’ 지난 16일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레코드포럼은 1995년부터 서울 홍대 앞을 지켜온 음반가게다. 2012년 건물이 헐리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인근 카페의 ‘숍인숍’으로 살아났다. 이번에는 카페 주인이 리모델링을 이유로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1998년부터 홍대 정문 부근 미술학원 골목에 자리잡았던 한 음반가게(주인은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도 오는 30일까지 ‘굿바이 세일’을 한다.

1980~90년대부터 음반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레코드가게 키드’들과 지난 21일 홍대 앞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문화방송> 라디오 팝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배순탁 작가와 펑크 밴드 크라잉넛의 김인수(건반). 그들에게 사라져가는 음반가게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김인수(이하 김) 1974년생이다. 85년께 공테이프에 음악을 녹음해 듣기 시작했다. 카세트테이프를 열심히 사 모으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디를 샀다. 당시 시디는 전부 수입 음반이어서 금지곡도 실려 있었다.

배순탁(이하 배) 1977년생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테이프를 샀다. 홍대에 다니면서 미술학원 골목 음반가게에서 1주일에 시디 1~2장씩 꼬박꼬박 샀다. 당시 얼터너티브, 모던록에 경도된 때라 아르이엠(R.E.M), 유투, 스미스 같은 앨범을 주로 샀다. 또 (1997년 3호까지 나오고 사라진) 국내 음악잡지 <로큰롤> 창간호에서 평론가들이 꼽은 ‘100대 명반’ 목록을 바이블 삼아 사 모았다. 그때 지미 헨드릭스 앨범을 샀는데, 처음엔 왜 좋은지 잘 몰랐다가 나중에 진가를 알고 완전히 빠져들었다.

음반이 얼마나 있나?

테이프는 결혼하면서 다 버렸다. 시디는 5000장에서 1만장 사이인데, 정확히는 모른다. 요즘은 엘피만 사는데, 비싸서 많이 못 산다. 500장이 채 안 된다.

시디는 5000~7000장? 엘피는 300~400장? 좋아하는 앨범의 경우 처음 한장 사고 리마스터링·초판 앨범까지 사서 세장씩 갖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사도 되는데, 지금까지 음반가게에 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음반가게 사장님이 손님 취향을 알고 추천해주는 것이 장점이다. 또 음반을 만지는 느낌이 좋다. 문화를 즐기고 수집하는 데는 물성이 중요하다. 온라인숍에선 느낄 수 없는 거다.

온라인에선 검색해서 사면 끝이다. 음반가게에 가면 찍어둔 음반이 있어도 ‘뭐가 새로 나왔나?’ 하고 살피게 된다. 음반가게에서 모르는 음악이 들리면 궁금해서 미친다. 레코드포럼이 특히 그렇다. 내가 아코디언 연주자인데, 레코드포럼 앞을 지나다 우연히 프랑스 아코디언 연주자 아르망 라사뉴(Armand Lassagne)의 음반을 듣고 그 자리에서 샀다. 지금도 가장 즐겨듣는 앨범 중 하나다. 이후 사장님이 아코디언 위주 음반들을 많이 추천해주셨는데….

작은 음반가게에는 나름의 컬렉션이 있다는 게 매력인 것 같다.

그 컬렉션 때문에 가는 건데, 아닌 경우도 있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앞 음반가게 누나는 음악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도 예뻐서 애들이 맨날 갔다.(웃음) 그걸 알았는지 그 누나는 한겨울에도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압구정동 현대고 근처에 석기시대 소리방과 상아레코드가 있었다. 나도 상아레코드에서 일하는 누나가 예쁘다고 해서 자주 갔다. 강수지 닮은 걸로 유명했다.

이름난 레코드가게 ‘알바’ 중 유명한 사람이 제법 있다. 잡지사 편집장이나 라디오 피디가 된 분도 있다.

요즘은 엘피를 주로 산다고?

꼭 사운드 때문만은 아니고, 소장하려면 시디보다 엘피가 나을 것 같아서다. 자랑 개념도 있어서 엘피를 사면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다.(웃음)

엘피는 큼직해서 아트워크 보는 맛도 있다. 아트워크 자체가 예술작품인 경우 엘피와 시디는 비교가 안 된다.

일본 가면 엘피를 20~30장씩 사온다. 언젠가는 지하로 들어가니 흑인음악 전문 매장이더라. 내가 아는 아티스트가 몇 없었다. 그런데 남들은 엄청난 속도로 음반을 골라내는 것이었다. 기가 팍 죽더라.

이곳 단골이었던 크라잉넛의 김인수(오른쪽)와 인근 미술학원 골목 음반가게 단골 배순탁(왼쪽) 작가가 무거운 마음으로 음반을 고르고 있다.

이제는 다들 음반을 안 산다.

요즘은 음원 다운로드도 잘 안하고 스트리밍만 한다. 마니아 팬들만 시디를 산다. 음악을 듣는 방식이 바뀐 건데, 어쩔 수 없는 변화인 것 같다. 다만 나는 기분이 안 좋거나 지칠 때 엘피를 사는 습관이 있다. 취향에 기반한 소비에는 위로·위안의 기능이 있다. ‘솔푸드’를 먹는 것과 같다.

나는 테이프, 시디의 시대를 지나 돌아온 엘피 시대까지 영위하는 중이다. 즐길 만큼 즐겼다. 다음 세대를 보면 ‘너희들은 음악을 들어도 나처럼 즐기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충분히 즐겼다는 게 중요하고, 이후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예전에는 상당수가 음반을 사 모았다. 음악의 시대였다. 이제는 음반 말고도 사 모을 만한 것들이 많아졌다. 음반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뭔가를 꾸준히 모은다. 나만 해도 일본 만화 <원피스> 피규어를 모으고 있다.

음반가게가 사라지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상아레코드와 석기시대 소리방이 없어질 땐 아무도 신경 안 썼는데, 이제는 음반가게가 없어지면 에스엔에스(SNS)에서 화제가 된다. 꼭 거창한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자주 가던 단골가게가 문을 닫으면 착잡해진다.

오랜 단골인 음반가게가 곧 없어진다. 사장님은 본인 희망에 따라 접는 거라 서운한 감정이 없다고 하지만, 단골로서 느끼는 감정은 별개다. 그곳은 나의 대학 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많이 아쉽다. 추억이 스며들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비단 음반가게가 아니어도 그런 공간들이 사라져버리고 있다.

얘기를 마치고 레코드포럼에 갔다. 표진영 대표는 김인수를 보더니 “살이 좀 빠진 건가요? 아기는 아직?” 하고 근황을 물었다. 다들 무거운 마음으로 50% 할인중인 음반을 골랐다. 기자는 김인수가 이곳에서 알게 됐다는 아르망 라사뉴의 앨범을 집었다. 표 대표는 “속상한 마음도 있지만 이젠 지쳤다. 이번에 문 닫으면 1년쯤 푹 쉬려고 한다. 그 뒤에 기회가 되면 새로운 공간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순탁 작가의 단골 음반가게는 이달 말 문을 닫은 뒤 온라인숍만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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