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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03일 15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03일 15시 09분 KST

계급투쟁과 가족 : 영화 '기생충'

영화 '기생충'이 보내는 신호를 해독하는 방법

huffpost

화제작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봤다. 어떤 의미에서든 감각과 사유를 자극하고 그 텍스트에 대해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는 좋은 영화다. <기생충>도 그렇다. 아래 평은 최대한 스포일러를 조심하며 쓴 글이다. 서사와 상황의 전개를 상세히 묘사하지 않으면서 평을 쓰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스포일러를 최대한 유의하면서 내가 받은 감흥을 적어 본다.

1. 이번 학기 학부에서 맑스주의 비평을 강의한다. 학생들이 제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개념이 ‘계급투쟁‘(class struggle) 이다. 아니, 학생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맑스주의에 대한 많은 오해 중 하나가 바로 이 개념을 둘러싸고 생긴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계급투쟁은 각 계급이 ‘주관적‘으로, 의지를 갖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그런 투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묘사하는 파업이나 정치투쟁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계급투쟁은 각 계급의 주관적 의지나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사회적 적대관계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효과‘이다. 계급투쟁은 객관적인 효과의 문제다. 쉽게 말해 각 계급이나 사람들의 주관적 의지와 상관없이 계급사회에서 모든 일들은 ‘객관적’으로 계급투쟁의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 계급투쟁이 각 계급주체들의 주관적 선함이나 악함과 관계없는 구조적 효과라는 것을 잊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좋은 예로 악덕 자본가-선한 노동자의 이분법적 구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종종 목도하듯이 현실에서 그런 식의 이분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맑스의 말대로 본래적인 선함이나 악함은 없다. 윤리는 언제나 계급관계의 문제다. 각 계급은 각자의 조건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객관적’으로 충돌할 때 계급투쟁이 발생한다. 봉준호의 <기생충>은 이런 의미에서의 계급투쟁에 주목한다.

2. 내 판단에 지금까지 봉준호는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종속의 관계, 혹은 계급관계의 문제를 다뤄왔다. <기생충>이전에 나온 봉감독의 영화중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마더>가 좋은 예이다. <설국열차>도 그렇지만 <마더>는 지배-종속의 단순한 이분법을 무너뜨린다. 현실의 지배구조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 그래서 <설국열차>가 보여주듯이 지배-피지배층의 대표자들은 더 은밀하게 현재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결탁하기도 하고 <마더>가 보여주듯이 피지배층 사람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지옥도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이 봉감독의 영화이력에서 아주 새로운 지평을 연 영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 영화는 <마더>의 계보를 분명하게 이어받으면서 계급투쟁의 의미를 블랙코미디, 서스펜스, 추리물 등 다양한 장르영화를 뒤섞어서 다시 천착한다. 몇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 계급투쟁의 영화를 읽는다.

3. 반지하층 가족. 온가족이 백수로 반지하방에 사는 가족이 있다. 아버지 기택(송강호),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 네번이나 입시를 치렀지만 대학에 가지 못한 장남 기우(최우식), 이런저런 재능을 지녔지만 역시 백수인 기우의 여동생 기정(박소담). 영화의 앞부분에 묘사되는 이들 가족의 생활묘사는 종중 웃음을 자아내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 웃음은 ‘웃픈‘(웃기고 슬픈) 웃음이다. 봉감독은 ‘봉테일’ 답게 이들이 겪는 생활의 곤경을 몇가지 에피소드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뒤에 다시 적겠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반지하층‘이라는 공간 자체가 이들이 놓인 계급적 위치와 상황의 정확한 상징이 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을 위한 일자리이다. 그 일자리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거짓말과 사기행각과 ‘기생충’ 적 행동은 용납된다(고 스스로 믿는다). 어떤 관객들에게는 이들이 보이는 ‘기생충적’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느끼기에 따라서는 다소 충격적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묻게 된다. 진정 ‘기생충’은 누구인가. 누가 누구에게 기생하는가.

4. 지상의 가족. 잘 나가는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의 가족. 그에게는 젊고 아름답지만 생활능력은 거의 없어보이는 부인 연교(조여정), 그들의 딸과 아들이 있다. 내가 위에서 굳이 계급투쟁의 의미를 살펴본 이유는 이들 가족을 논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자본가‘이기에 악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의 범위에서 나름대로 성실하게 생활한다. 남편은 기업을 운영하고 아내는 남편과 아이들의 생활에 신경을 쓰고 아이들은 그 나이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지만 착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런 주관적인 미덕과 선함은 구조적으로 주어진 계급투쟁의 관계에서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봉감독은 이들의 ‘착함‘이 명확한 계급적 구분위에서만 작동한다는 것, 그리고 그 착함의 물질적 근거가 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충숙이 말하듯이 ‘부자이기에 착하다‘는 것. 정확히 표현하자면 부자이기에 착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충숙은 ‘자신이 부자라면 저들보다 더 착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중요한 지적이다. 오래전 평론가 김현이 다른 맥락에서 지적했듯이 여유와 관용은 부르주아의 특권이라는 것. 착함은 주관적 심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착할 수 있는 물적 조건이 중요하다.

5. 충돌. 이 두가족이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영화가 묘사하는 ‘폭력‘과 ‘투쟁‘은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현실의 삶에서는 실제로 이 두 가족은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그것을 알기에 감독은 조금은 비현실적인 방식을 통해 두 가족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두 가족을 같은 공간에 놓는다. 그래야 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충돌은 서로가 다른 쪽을 증오하거나 미워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표면적으로는 두 가족은 선의와 고마움을 지니고 다른 가족을 대한다. 특히 반지하층 가족인 기택 가족은 그렇다. 그러나 그런 선의는 명확한 구분의 선을 전제할 때만 작동할 수 있다. 박사장이 되풀이 언급하는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그점을 가리킨다. 그 선을 넘을 때 충돌과 비극이 발생한다.

6.냄새, 폭우, 미세먼지. 그런데 그런 구분의 선은 거창한 이념이나 계급의식에서 표현되지 않는다. 어쩌면 사소해보이는 것들에서 나타난다. 예컨대 영화에서 되풀이 표현되는 냄새. 계급은 사소해보이는 생활의 냄새로 구분된다. 영화의 결말부분에서 기택이 행사하는 폭력은 그 냄새로 선을 다시 긋는 행동에 대한 반발이 촉발한 것이다. 그 폭력이 느닷없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이유. 감독이 촘촘하게 짠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누적된 강고한 생활의 논리가 서로 화해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주관적 의도나 선함보다 더 강한 것은 언제나 생활의 논리, 계급관계의 무의식적 효과라는 것을 감독은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생활을 위협하는 폭우가 다른 이들에게는 미세먼지를 없애서 공기를 깨끗하게 해주는 좋은 일이 된다. 그럴 때 ‘좋음’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영화는 묻는다.

7. 지하층 가족.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히 적을 수 없지만 영화는 <마더>가 그랬듯이 ‘기생충‘으로라도 살아남기 위해 하층계급이 벌이는 생존의 투쟁에 주목한다. 지하층 사람들은 상층의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표현하듯이 느닷없이 출몰하는 ‘유령‘일 수 있다. 그 유령은 안온하고 교양있어 보이고 젠틀한 상층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 영화의 결말부분은 그 위협의 실제적 형태를 제시한다. 맑스는 계급투쟁을 유산계급과 무산계급, 혹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사회관계의 결과라고 지적했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그런 계급투쟁이 피지배계급끼리 서로를 약탈하는 ‘생존’ 투쟁으로 전환되어 나타난다. 그점이 더욱 이 영화를 끔찍하게 만든다.

8. 모르스 신호. 영화에서 몇번 언급되는 ‘모르스 신호’는 (반)지하층 사람들 혹은 계급들이 보내는 생존의 신호이기도 하고, 살려달라는 구조요청의 신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신호는 아무나 해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독할수 있는 이들만이 알아듣는 신호이다. 계급사회의 사회적 적대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적대가 폭력적으로 해소되지 않으려면 그들의 모르스 신호를 해독하는 법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영화가 보내는 모르스 신호를 그렇게 이해했다. 그 신호를 해독하는 법이 쉽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는 그런 답을 제시할 의무가 없다. 다만 물음을 던질 뿐이다.

9. 연극적 요소.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이 영화의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실내에서 이뤄지는 인물들의 관계와 충돌을 담으면서 연극적 요소를 활용한다. 명백하게 제시되는 상층, 하층, 지하층을 연결해주는 계단의 이미지, 계급위치에 따라 분할되고 구획되는 공간의 위계 등을 영화는 실감나게 제시한다.

10. 연기. 송강호 배우의 연기야 다시 말할 필요가 없지만 주요 배우들의 연기가 다 좋다. 특히 젊은 배우들인 최우식, 박소담, 그리고 스포일러때문에 밝힐 수 없는 지하층 사람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이 영화 꼭 보시길 추천한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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