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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06일 12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06일 12시 28분 KST

진짜 노오력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무대에 선 모두가 남성인 이상한 세상

Tom Werner via Getty Images

2017년,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콘퍼런스가 열렸다. 열명이 넘는 연사 전부가 남성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한 불편함을 얘기했더니 ‘과학계에 여성이 적기 때문인데, 그것을 불편해하면 어떻게 하냐. 현실을 제대로 볼 줄 모른다’는 댓글이 달렸다. 2018년, 공공기관에서 여는 큰 축제가 있었다. 축제 포스터에 주요 연사들의 사진이 실렸고 모두 남성이었다. 포스터가 게시된 SNS에 연사의 남녀비율 문제를 지적하는 댓글이 달렸고, 행사 기획자가 ‘여성을 섭외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의 스케줄상의 문제로 섭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 두 사례뿐일까. 그렇지 않은 사례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각종 콘퍼런스와 축제 등에서 무대에 서는 사람의 비율은 남성이 훨씬 높다. 2017년 인터넷매체 <디퍼>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해에 열린 콘퍼런스 29개를 조사한 결과 남녀 연사의 비율은 5 대 1이었다. 해당 조사에서 콘퍼런스 기획자들을 인터뷰했는데 ‘노력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여성이 많지 않다’는 것이 주요한 답변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여성이 연사 리스트에 없거나 열명 넘는 인원 가운데 한두명 정도 있는 콘퍼런스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그 ‘노력’은 어떤 노력이었을까.

사전을 찾아보면 ‘노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애를 쓰는 일’이다. 그래서 그 노력이 리스트에 있는 여성 연사를 섭외하는 일이었다면 제대로 된 노력이라고 할 수 없다. 그건 콘퍼런스 기획자들이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없던 연사 리스트를 만들거나, 계속 이어지는 기획에서 여성 연사의 비율을 점점 높여나가는 것, 그래서 2017년과는 다른 2019년의 콘퍼런스를 만드는 것이 노력이다.

특정 분야를 대표하는 여성이 적고, 그래서 콘퍼런스나 대표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여성의 비율이 낮은 문제는 기획자 개인이나 콘퍼런스를 만드는 일개 조직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콘퍼런스에 설 연사를 구성하는 일은 다르다. 발견되지 않았던 한명의 연사를 더 찾고,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은 기획자의 노력으로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콘퍼런스의 남녀비율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 미래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성을 찾기 힘든 분야지만, 그 안에 여성들의 자리가 있고, 그 자리는 더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무대에 선 전문가들을 통해 미리 보여줄 수 있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더 많은 사람에게 ‘저 자리가 나의 자리가 될 수 있다’ ‘이 분야가 나의 분야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도 할 것이다. 그깟 콘퍼런스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그깟 것들을 그냥 하던 대로 한 탓에 무대에 서는 모두가 남성이어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한 세상에 살게 되어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여성 연사를 늘려달라는 요구에 현실을 모른다는 답변을 듣고 싶지 않다. 현실이 그렇더라도 미래를 먼저 맞이한 콘퍼런스에 참여하고 싶다. 트렌드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열리는 것이 콘퍼런스 아닌가. 제대로 미래를 예측하려 노력해보자. 진짜 노력은 변화를 가지고 온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