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 집착을 버려라

'최고의 마블링' 와규를 한 점 이상 못 먹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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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장소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한 레스토랑. 때는 2015년 6월 중순. 별이 쏟아지는 밤. 종업원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왔다. 나를 비롯한 한국인 6명이 탄성을 질렀다. “먹는 일을 좋아하는 우리라도 다 먹을 수 있을까?” 이탈리아 고기 요리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뼈가 붙은 황소 등심으로 만든 티본 스테이크). 두께는 5㎝가 넘게 보였다. 1인분은 450g. 키안티 지역에서 사육한 황소가 재료다. 토스카나주 사람들이 좋아하다 못해 정당을 만들 정도로 숭배한 고기 요리다. 1953년에 창당한 이 정당의 구호는 “비프스테이크 450g을 전 국민에게!”였다. 장난처럼 만든 정당은 그해 밀라노에서만 1000 표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각설하고, 그날 밤 그 요리를 본 우리, “마블링(근육 내 지방)이 거의 안 보이는데!” “그럼 고기라 할 수 없지. 맛이 없겠네!” 몇 점 먹은 우리는 알은체한 게 부끄러웠다. 혀가 미식의 쾌락에 푹 빠져 춤췄다. “마블링만 고기 맛의 척도는 아니구나.”

# 장면 2

2017년 일본 교토의 한 고깃집. 다다미방에 한 상이 펼쳐졌다. 친구들에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소고기 와규인데, 눈송이처럼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와규는 수백 년에 걸쳐 개량한 일본 소 품종이다. 마블링이 촘촘하고 넓게 퍼져 매우 부드럽다. “벌써 기대가 되네.” “말로만 듣던 그 와규!” “최고의 마블링이라니, 침부터 고인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식탁엔 침묵이 흘렀다. 최고의 맛이라서? “한 점 이상은 못 먹겠어!” “너무 느끼해.” “더 먹다간 토할 거 같아.”

두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주제는 ‘마블링’. 소고기 등급제의 중요한 기준이다. 등급은 1등급 투플러스(++), 1등급 원플러스(+), 1등급, 2등급, 3등급 등으로 나뉜다. 마블링이 많을수록 등급이 높다. 당연히 등급이 높을수록 비싸다. 이렇다보니 사람들이 찾는 고기도 마블링이 많은, 높은 등급의 소고기다.

지엄한 국법도 소고기 앞에서는 소용없으니

소고기는 도축을 금지했던 조선 시대에도 사람들이 몰래 먹었을 정도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먹거리다. 여러 고서엔 이야깃거리도 넘친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소고기 예찬론을 펼쳤다. <중종실록>에는 손님 접대로 소를 잡는 평안도 사람들의 얘기가 나온다. 음식 문화평론가 윤덕노씨는 평안도에 어복장국 등 소고기 음식이 발달한 이유를 이런 역사에서 찾는다. 지엄한 국법도 강렬한 식욕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고려 시대 이규보는 육식주의자의 비애를 담은 ’소고기를 끊다ʼ란 시도 지었다.

현대에도 소고기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소고기 중에서도 마블링이 촘촘하게 박힌 최고급 한우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귀한 먹거리다. 지난주 끝난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잘 그려져 있다. 출판사가 배경인 드라마.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자 사장은 “전 직원 회식하자”고 하는데, 직원들이 부르짖은 회식 메뉴는 소고기다. 살면서 겪는 벅찬 기쁨 대부분이 소고기 몇 점으로 귀결된다.

그러면 마블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그리고 마블링 때문에 돈을 버는 이는 누구일까? 소는 번식기, 육성기, 비육 전기, 비육 중기, 비육 후기를 거치면서 성장한다. 본래 풀을 뜯어 먹던 우리 소는 1993년 ‘소고기 등급제’가 도입되면서 옥수수 등 곡물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소고기 등급제란 도축한 소의 마블링, 육색, 조직감, 성숙도 등을 기준에 따라 판정해 등급을 매기는 제도다. 소고기 등급제가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뿐이다.

소는 옥수수 사료가 대량으로 밥상에 나오면 제 죽음을 알아챈다. 도축 직전에 소가 가장 많이 먹는 사료는 옥수수 등 곡물이다. 마블링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사료협회 홍성수 기획조사부장은 “사료용 옥수수는 국내에서 전혀 생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로 미국 등에서 수입한다. 미국 곡물엔 유전자변형생물’(GMO·지엠오) 논란이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료용 옥수수 재배를 국내에서 시도한 농가도 있었다. 하지만 채산성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도저히 수입 사료와 가격경쟁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축산 농가는 마블링이 풍부한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미국산 옥수수 등 곡물 사료를 많이, 더 많이 먹일 수밖에 없다.

미국 옥수수 사룟값이 춤을 추면 축산 농가의 시름은 깊어진다. 올라가는 사룟값은 바로 소고기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2018년 미국 사료용 옥수수 수입량은 2015년에 견줘 대략 2배 늘었다. 우리 축산 농가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는 미국 곡물 사료 업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년 전이다. 볏짚, 청치(푸른빛이 나는 쌀알), 쌀겨, 과일 껍질 등을 2시간 이상 찌고 미생물을 넣어 발효까지 한 사료를 쓰는 축산 농가에 간 적이 있다. 태평스럽게 물소리, 새소리, 클래식 음악 등을 들으며 건강하게 자란 그 농장 소들의 등급은 3등급이었다. 유기 축산에 매달렸던 농장주가 “마블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건강한 먹거리에 눈을 뜬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 농장의 3등급 소는 한살림 등을 통해 유통한다.

사육 공간, 도축 방식 따지는 등급제 필요

올해 12월이면 개편한 소고기 등급제가 시행된다. 예전보다는 마블링의 권력이 약해졌지만 사라진 건 아니다.

마블링 정도를 판정 기준에서 빼면 안 되는 걸까? 마블링이 거의 없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는 미식가들이 손에 꼽는 음식이다. 사육 공간, 도축 방식 등 축산 환경까지 따져야 하지 않을까? 등급제가 필요하긴 한 건가? 누구를 위한 등급제일까?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