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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14일 14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14일 14시 27분 KST

‘5·18 왜곡’ 처벌을 위한 전제 조건

유럽의 '역사 부정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공개한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의 모습
huffpost

몇몇 국회의원의 5·18 역사 왜곡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일베 등 인터넷을 통해 널리 유포되었던 허위 사실이다. 이번 사안이 중대한 것은 국회의원 여러명이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수준을 넘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된다. 국회에서 버젓이 그런 얘기들이 오간다는 것은 역사 왜곡이 공식적으로 승인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국회에서는 5·18 역사 왜곡 처벌법을 추진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역시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수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먼저 확인해둘 것은 법적 처벌은 최후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여러 해결 방법 중 단지 하나일 뿐이라는 점이다. 유럽에 역사부정죄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형사처벌 이외에도 교육, 정책, 홍보, 자율규제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끈질기게 대응해왔다. 법적 처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이 없을 때, 다른 방법들과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수단으로서 선택되어야 한다. 5·18 왜곡이 심각한 문제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 해법에 관한 논의가 형사처벌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은 경계돼야 한다는 얘기다.

5·18 왜곡 처벌법의 취지와 기능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발의된 역사 왜곡 처벌법들은 일제 찬양, 민주화운동, 반인륜 범죄, 5·18 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왜곡과 부정을 그 대상으로 한다. 이때마다 등장했던 근거가 유럽의 역사부정죄 또는 홀로코스트부정죄였다. 하지만 유럽에서 왜 역사 부정을 처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일단 확인해야 할 점은 유럽의 역사부정죄가 모든 중요한 역사에 대한 왜곡을 모조리 처벌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히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인 것도 아니다. 물론 홀로코스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성’으로 따지면 홀로코스트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적 진실은 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중요한 역사적 진실 중에 왜 홀로코스트에 대한 왜곡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홀로코스트의 ‘현재성’이다. 유럽 국가들에 홀로코스트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간주된다. 홀로코스트는 유태인을 비롯한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이 집단학살로 귀결된 것이었고 이것은 현재에도 다양한 형태의 혐오, 차별,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나치를 계승한다는 극우세력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 문제의 현재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홀로코스트가 조작됐다”고 하는 주장은 단순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수자 집단을 차별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발언이 소수자 집단에 대한 폭력이나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유럽이 그토록 홀로코스트 부정에 강경하게 대응해온 이유다.

한국에서도 역사부정죄의 정당성이 단순히 그 역사적 진실의 ‘중요성’에서 찾아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얼마나 ‘현재성’이 있는 문제인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러 역사적 진실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만큼은 그 현재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5·18에 대한 왜곡은 5·18 생존 피해자와 유족 등 관련자들, 그리고 호남에 대한 차별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피해 관련자들의 고통과 차별 문제의 ‘현재성’이 충분히 인정된다면, 5·18 왜곡 행위는 더 이상 말이 아니라 그 자체로 혐오와 차별이자 폭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동안 여러 역사부정죄 입법이 시도되어왔지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충분한 성찰 없이 ‘유럽에서도 처벌한다더라’ ‘중요한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정도의 논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식이면 왜곡을 막아야 할 중요한 역사의 목록은 끊임없이 추가될 것이며, 역사적 논쟁이 늘 사법적 판단에 맡겨져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형사처벌 여부와 무관하게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다시 이것이다. 2019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5·18 광주는 어떤 의미인가?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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