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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19일 14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20일 11시 37분 KST

다소 '위험한' 리뷰 - 전시 '잔류감각'

작품에 대해 말을 꺼내면 살벌해지는 한국에서 다소 위험하게 전시 리뷰하기

Sophis Gallery
김경태, ‘플로어 플랜 (10:1)’, UV 인쇄 전 디자인 이미지
huffpost

″전시 주제인 ‘잔류감각(after-sensation)’은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감각을 말한다. ‘잔상’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가장 뚜렷이 느낄 수 있는 잔류감각이다. 즉, 잔류감각은 즉각적인 감각이 아닌 이미 지나가 버린 후 남은 재편집된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전시에는 디자이너 겸 설치 작가 김진식, 시각 디자이너 겸 포토그래퍼 이상필, 산업 디자이너 성정기, 포토그래퍼 김경태, 포토그래퍼 박신영 등 총 5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작가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환경 또는 사물을 일부분 생략하거나, 위치를 재정렬하고 아주 세밀한 부분을 확대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잔류감각’을 유도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감상자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곤두세우며, 수면 아래로 감춰두었던 감각과 기억들을 환기시킨다. 여기서 감각과 기억들은 그저 알고 있었던 기억과 감각이 아닌 상상력을 동반하거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것이다.” -보도자료 中-

이 글은 현재 소피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잔류감각 After-sensation>전에 대한 다소 ‘위험한’ 리뷰다. 전시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개별 작가의 작품에 대해 하나하나 코멘트를 남겼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처럼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작가의 작업에 의의를 제기하는 행위가 혹여 시비와 모욕으로 간주되는 선례를 자주 보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조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 참여 작가는 해외 체류 경험도 많거니와 디자인과 예술 사이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며 피드백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젊은 세대에 속하므로 불안한 마음을 잠시 놓아둔 채 의견을 개진해보도록 하겠다. 참여 작가는 김경태, 김진식, 박신영, 성정기, 이상필 총 5인으로 리뷰는 가나다순이다.

Harry Jun
김경태, ‘플로어 플랜 (10:1)’, 스테인리스 스틸 판에 UV 인쇄

김경태 -  ‘플로어 플랜 (10:1)’

김경태의 ‘플로어 플랜 (10:1)’은 테라조(Terrazzo, 시멘트에 작은 대리석 조각을 섞어 굳힌 후 표면을 매끄럽게 정리한 인조 대리석) 바닥에 있는 돌의 조형적인 패턴을 찍은 후 이를 넓은 스테인리스 스틸 판에 UV 인쇄한 작업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플로어 플랜(10:1)’이란 제목이다.

플로어 플랜은 건축 용어로 ‘평면도’를 뜻한다. 즉 건축물의 평면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설계도다. 그리고 그 옆의 10:1은 비례 값이다. 보통 건축 스케치나 모형과 실제 건축물의 비례 값은 1:100, 1:1000 등 왼쪽이 1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축소 모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업에서는 1이 오른쪽이다. 즉 축소가 아닌 확대다. 작은 돌무늬를 초고해상도 카메라로 찍은 결과물을 10배 확대해서 넓은 금속판에 인쇄한 것이다. 제목과 실제 작업을 구현한 간극 사이에서 노는 게 묘미라 하겠다.

하지만 이 작업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플로어 플랜 (10:1)’이란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작품에 전혀 다가가지 못한다. 그리고 현장에 배치된 받침대가 작품을 다소 숭고하게 떠받드는 바람에, 바닥을 확대해서 또 다른 바닥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재미가 휘발되는 점이 아쉽다.

Sophis Gallery
김진식, ‘돌의 무게’, 스크래치 스테인리스 스틸, 보령 천연석, 금속 와이어
Harry Jun
김진식, ‘돌의 무게’, 스크래치 스테인리스 스틸, 보령 천연석, 금속 와이어

김진식 - '돌의 무게'

김진식의 ‘돌의 무게’는 돌이라는 사물을 촉각적인 감각이 아니라 시각적인 감각으로 치환해 느끼는 데 초점을 맞춘 작업이다. 쉽게 말하면 금속으로 만든 구조물 위에 돌을 설치하고, 이를 바라봤을 때 작업(특히 돌)의 안정감과 불안감을 눈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실제 가장 중심이 되는 맨 왼쪽 작업(프로토 타입)은 기다란 금속 구조물의 늘씬한 비례와 무거운 자연석이 서로 물리적으로 맞닿은 걸 ‘인지’했을 때 느끼는 불안감과 눈으로 몇 초 보고 나서 곧 몰려오는 안정감의 대조가 탁월하다. 밸런스를 굉장히 잘 잡았다는 느낌.

하지만 역시 이 작업도 문제가 있다. 4개의 시리즈로 늘어나면서 콘셉트와 실제 작업 간의 긴밀한 연결성이 흐트러졌다. 물론 작가 자신은 여러 가지 이유를 말했지만, 순차적으로 낮아지는 금속 구조물과 무게는 거의 동일한 무거운 자연석이 결합하며 선사하는 ‘돌의 무게’의 감각이 처음에 의도했던 시각 감각의 안정감과 불안감 어디에도 균질하게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또한 왼쪽부터 차례로 잡지, 스케치북, CD, 책을 수납할 수 있어 기능성을 놓치지 않은 아트 퍼니처를 지향했다는 특성에 공감하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참고로 동시대가 아닌, 100년 뒤에 자신의 작업이 평가되길 바란다는 작가의 발화는 언젠가 제대로 깊게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욕구를 자극했다.

Harry Jun
박신영, ‘인식’, 가변크기, 폴리에스테르 코팅한 직물에 UV 인쇄
Sophis Gallery
박신영, ‘인식’, UV 인쇄 전 원본 이미지
Sophis Gallery
박신영, ‘인식’, UV 인쇄 전 원본 이미지

박신영 - ‘인식’

작가는 동일한 산을 피사체로 두고 여름의 모습은 원경으로, 겨울의 모습은 근경으로 찍어 서로 대비시켰다. 같은 장소를 원경과 근경으로 구분해 찍은 결과물에 관람객이 인식의 혼란을 느끼는 게 핵심 콘셉트였다.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근경으로 찍은 부분을 원경 사진에서 제대로, 눈에 띄게 ‘인식’할 수 없다는 사실. 적어도 인식의 혼란을 주려면 기준점이 존재해야 하는데, 관람객이 근경과 원경이란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포인트 지점 설정이 명확하게 안 돼서 콘셉트 구현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는 계절마다 트래킹 코스가 달라서 같은 지점을 찍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럴 거면 애초에 같은 지점을 트래킹 할 수 있는 코스를 골랐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오히려 다른 지점에서 ‘인식’의 혼란이 나타나며 내게 굉장한 흥미를 안겨준 면이 있었으니, 바로 계절성이다. 여름에 찍은 사진은 자세히 보면 집 주변이 깨끗하고 산에 있는 만년설이 일부 녹아 제 민낯을 내보인다. 반면 겨울에 찍은 사진은 만년설이 가득하다. 이를 흑백으로 프린트함으로써 관람자는 자세히 보면 볼수록 계절성에서 오는 인식의 혼란을 인지하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즉 기본 콘셉트에서 지향한 바는 실패했으나, 작업이 본래 지닌 계절이란 특성으로 최종 목표를 성취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한 성공을 거둔 작업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 중 가장 마음에 든 작업으로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Harry Jun
성정기, ‘의자’, 스테인리스 스틸
Harry Jun
성정기, ‘의자’, 스테인리스 스틸

성정기 - ‘의자’

2개의 금빛 의자가 전시장에 나란히 놓여있다. 그런데 묘하다. 하나는 의자의 요소를 최대한 기하학적으로 풀어냈고, 또 하나는 같은 의자에서 등을 지지하고, 엉덩이를 지지하는 판의 일부를 제거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실제 의자를 사용하면 무게 중심이 몰리거나 자주 접촉하는 부분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 에센셜한 요소만 남기고 다른 부분은 제거함으로써 의자 같지 않지만, 의자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런 콘셉트는 흥미로웠으나 개인적으로 의자의 전형이 왜 이렇게 구현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지속됐다. 의자는 앉을 수 있는 무언가다. 보통 다리는 4개이지만 3개, 2개, 1개, 혹은 없을 수도 있다. 등판도 존재 유무를 확신할 수 없으며 앉는 부분이 꼭 평면일 필요도 없다. 전체가 유기적인 곡선으로 연결되어 한 몸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전혀 생각지 못한 조형을 추구할 수도 있다.

즉 직선과 평면으로 구현한 성정기의 의자는 주관적인 미감을 적용한 작가 개인의 아키타입일 것이다. 그래서 오래 앉아 있기에 힘겨워 보이는, 아름다운 오브제에 가까운 의자를 기준 삼아 실제 의자를 앉는 습관에 근거해 의자의 개념을 바꾸는 시도는 서로 결이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차라리 우리에게 친근한 학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실제 데이터에 기반하여 자주 쓰이지 않는 부분을 제거했다고 하면 훨씬 와닿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작가는 개념을 이용해 인식에 파장을 주는 것이 목표였기에 그런 실질적인 상황보다 의자라고 인지할 수 있는 ‘무언가’로도 충분히 만족했을 테지만 말이다.

Harry Jun
이상필, ‘편집된 장면’, 단채널 비디오 (총 3점)
Harry Jun
이상필, ‘편집된 장면’, 종이에 잉크젯 프린트 (총 3점)

이상필 - ‘편집된 장면’

작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처음 공간에 들어갈 때 마주치는 3개의 사진 프린트 물. 흐릿한 모습에 사물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공간의 안쪽으로 진입하면 3개의 스마트폰이 각각 이어폰을 갖추고 관람객을 기다린다. 스마트폰에는 이미지가 하나씩 떠 있다. 회색 암석, 지평선이 보이는 푸른 바다, 그리고 층층이 쌓인 돌의 군락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게 이미지가 아니라 비디오라는 데 있다. 피사체에 대한 초점을 맞춰놓고 계속 찍은 것을 편집한 것이다. 그래서 돌에 관련된 비디오에는 영겁의 멈춤만 있지만 바다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아마 같은 바닷가에서 서로 다른 피사체를 찍은 걸로 추정되는 이 세 작업에는 사운드가 함께 붙어 10분이라는 러닝타임에 맞게 계속 다른 소리가 난다.

작가는 말한다. “사진이나 영상은 피사체를 이미 선택한다는 점에서 1차 편집이다. 찍은 영상을 후처리하면(영상뿐 아니라 사운드도 각 작업마다 균질한 소리를 낼 수 있게 편집했다) 곧 2차 편집이다. 그리고 이 장면을 마치 근시가 온 눈으로 바라본 것처럼 같은 강도의 필터로 흐릿한 효과를 낸 사진 작업은 3차 편집이 된다.” 결국 모든 것은 편집된 장면이라는 뜻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콘셉트에 시원해지다가도 몇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연 편집된 장면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상과 사진, 사운드를 모두 사용해야만 했을까? 콘셉트를 푸는 방법론과 그 대상에서 좀 더 독특한 작가의 개성과 선택의 안목을 보여줄 순 없었을까?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멀찍이 떨어져 설치한 스마트폰과 사진의 실제 거리감이 관객의 이해와 몰입을 저해하는 심리적인 거리감, 나아가 이해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도하진 않을까? 오프닝이라는 제약 상 이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전시의 주제인 ‘잔류감각’은 그 멋진 어휘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전시에 출품한 작업에서 뚜렷이 느낄 수 없었다. 기획을 담당한 김진식 작가가 의도한 것을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초기의 자극이 지나간 후 생성되는 재편집된 감각이 여실히 보이는 작업이 있다면 꼭 말해달라. 그 놓친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 전시장을 다시 방문할 의향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이 리뷰는 전시 오프닝 때 모든 참여 작가와 대화한 것을 기초로 작성했다. 즉 작가와의 ‘유사-대면 인터뷰’를 통해 정보를 습득했고, 리뷰에 대한 정보는 보도자료가 아닌 작가의 어록과 설명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혹 내가 틀린 부분이 있다면 꼭 알려주길 바란다.

이번 <잔류 감각> 에 대한 글이 진정성 있고 투명한 의견 개진이라는 개인적 믿음과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솔직하게 풀어낸 전시 리뷰의 출발점이 되길 바라본다.

이번 전시는 9월 27일까지 계속된다.

Sophis Gallery
전시 공식 포스터

<잔류 감각 After-sensation>

2018. 08. 30 - 2018. 09. 27

소피스 갤러리 Sophis Gallery

서울시 강남구 역삼로 218 지하 1층

관람 무료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