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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반역? 뉴욕타임스 '익명 기고문'이 남긴 질문들

"이것이야말로 헌법적 위기다"

  • 허완
  • 입력 2018.09.07 18:30
ⓒMark Wilson via Getty Images

미국 트럼프 정부의 고위관료가 익명으로 뉴욕타임스(NYT)에 보낸 글 ‘나는 트럼프 정부 내의 레지스탕스 중 하나다‘가 미국 정계를 흔들고 있다. 글쓴이의 신원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쏟아지고 있고, 주요 고위관료들은 앞다투어 ‘나는 그런 글을 쓰지 않았다’고 부인하느라 바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필자를 ”겁쟁이”라고 비난했고,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 비겁한 패배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나에게 물어보지 말고) 망해가는 뉴욕타임스 212-556-1234로 전화해서 그들에게 물어보라”고 힐난했다. NYT 독자들은 엇갈린 의견들을 보냈으며, 보수·진보 평론가들도 논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 모든 게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생각해보라.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고위공직자가 ‘사실 우리 대통령은 우리가 보기에도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고, 그가 사고를 치지 않도록 우리가 막고 있다’고 폭로하는 광경을. 죽기 전까지 이런 ‘드라마’를 현실에서 또 볼 수 있을까? 

ⓒNICHOLAS KAMM via Getty Images

 

그러나 조금 차분하게 따져 볼 필요도 있다. 이 사건은 가볍게 지나치기 힘든 여러 질문들을 남겼다. 이를테면, 

▲ (그게 누구든) 필자는 어떤 목적으로 이런 글을 썼을까? 미국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혹시 ‘어쨌든 나(=공화당?)는 할 일을 했다’는 알리바이는 아닌가?

▲ 선출되지 않은 공무원들이 자의적으로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해도 괜찮은 걸까? 그들의 행동은 누가, 어떻게 책임지는가? 

▲ 그렇게 대통령의 ‘상태’가 심각하다면, 왜 법에 규정된 합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는가? 이름을 밝히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했던 것은 아닌가? 이것은 사실상의 ‘쿠데타’가 아닌가?

▲ 이런 식의 ”조용한 저항”은 과연 지속될 수 있는 것인가? 트럼프의 ”잘못된 충동”이 오히려 더 증폭되는 건 아닐까?

▲ 비주류 출신인 트럼프의 정책에 훼방을 놓고 그를 무시하는 숨은 기득권, 이른바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있다고 믿는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먹잇감이 된 건 아닐까? 

ⓒSAUL LOEB via Getty Images

 

기고문의 의도가 뭔가?

보수 정치평론가로 활동해온 라메쉬 포누루는 블룸버그에 쓴 칼럼에서 이 기고문이 새롭게 폭로한 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무모한 결정을 내리고, 변덕스러운 기질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

그는 ”만약 트럼프의 측근들이 개인적 이득이나 망상에서 벗어나 이런 판단을 내렸다면, 분명 벌써 누군가는 원칙에 따라 공개적으로 사임했어야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애틀랜틱의 애덤 서워도 비슷한 논리를 폈다. 그는 ”이건 저항이 아니라 홍보전”이라고 깎아내렸다. 필자가 스스로를 ‘저항군‘으로 묘사했지만, 그 역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질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이용’해왔던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워싱턴의 가장 큰 공공연한 비밀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에 부적절(unfit)하다는 것이다. 그의 직원들도 알고 있다.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 미치 매코넬(공화당)도 알고 있다. 하원의장 폴 라이언(공화당)도 알고 있다. 그의 변호인들을 비롯해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원한다. 그게 고소득층 감세든, 사회안전망 약화든, 우파 연방 법관이든. 헌법은 심각하게 자격이 모자라는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두고 있지만, 그럴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걸 얻는 수단이 바로 트럼프이기 때문이다. (디애틀랜틱 9월6일)

ⓒKevin Lamarque / Reuters

 

기고문으로 뭐가 바뀔 것인가?

기고문의 의도에 대한 의문은 곧바로 그 효용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포누루는 이 기고문 자체가 공익에 기여하는 건 없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도 적었다. ″이건 대통령을 더 분노하게 만들 것이고, 그는 현명한 조언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믿지 않을 것이며 (트럼프에 대한) 그 누구의 생각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JS)은 사설에서 ”이 익명 기고자의 동기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지만, 기고문은 스스로 주장한 미덕과는 정반대의 영향을 이미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신원이 밝혀지면 트럼프는 일부러 필자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할 것이다. 필자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할 올바르고 더 효과적인 방법은 계속해서 조용히 정부 안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사임하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MANDEL NGAN via Getty Images

 

‘조용한 저항’은 바람직한가?

기고문에 언급된 ”저항”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원칙적으로 대통령의 지시를 거역하는 건 헌법 질서를 해치는 것이기 때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마크 티센은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면서 비밀스레 그의 권위를 약화시키면서도 동시에 자리를 유지하면서 충성스러운 측근인 것처럼 행세하는 옵션은 헌법에 없다”고 적었다.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들이 문서를 숨기거나 선출된 대통령의 적법한 지시를 수행하기를 거부하는 건 숭고한 게 아니다. 애국적인 것도 아니다. 이건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다.

만약 당신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공직자이며, 대통령이 하려는 어떤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한다면 당신에게는 그건 틀렸다고 대통령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리고 문제가 꽤 중대한 것이라면, 사임을 하고 미국 시민들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 설명해야 할 의무가 당신에게 있다. (워싱턴포스트 오피니언 9월6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던 데이비드 프럼은 현재의 상황을 ”헌법적 위기”로 규정했다.

″탄핵은 헌법적 장치다. 수정헌법 제25조도 헌법적 장치다. 자발적인 의회 증언에 이은 연쇄 사임은 헌법적 장치다.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사람들에 의한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공공연한 저항은, 이것이야말로 헌법적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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