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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02일 11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02일 11시 54분 KST

능동의 지혜

Jonathan Ernst / Reuters
huffpost

싱가포르의 역사적 만남 이후, 기대만큼 걱정도 많다. 가야 할 길이 멀고 해결해야 할 일이 적지 않아서다. 다만 이제 시작이다. 만남 이후 3주도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늘 달릴 수 없기에 자주 멈출 수 있다. 일시적인 멈춤의 순간에 조급한 기대, 오랜 편견, 어이없는 실망이 쏟아졌다. 과도함의 배후는 바로 ‘일방주의’다. 곧 북·미 양국은 약속의 이행을 시작한다. 이제 일방주의와 결별할 때다.

과거의 강압적 비핵화는 일방주의다. 싱가포르에서 북한과 미국은 신뢰구축과 능동적 비핵화를 합의했다. 일방주의가 아니라 상호주의의 문을 열었다. 안보 개념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일방안보는 나의 안보 강화가 상대를 자극해서 결과적으로 안보가 불안해지는 ‘안보 딜레마’를 낳았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한반도는 일방안보에서 공동안보로 전환했다.

비핵화의 속도도 일방적이지 않다. 안전보장 없이 비핵화를 촉진할 방법은 없다. 공동안보는 관계가 변해야 가능하다. 관계가 나빠지고 좋아지는 과정은 일방이 아니라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 한·미 양국은 군사훈련 중단을 결정했다. 일부에서는 안보의 약화를 걱정한다. 그런데 과연 자신은 무장을 유지하면서 상대만 무장을 해제하라는 주장이 가능할까?

일방주의는 대체로 수동형이다. 나는 변하지 않고 상대의 변화만 기다린다. 그래서 조건부다. 대부분 상대가 무엇을 해야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일방주의는 언제나 현상유지를 추구하고 변화를 거부한다. 그동안 분단체제는 수동의 벽 뒤에서 기생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상을 타파해야 한다. 수동이 아니라 능동의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변해야 상대도 변하고, 내가 움직여야 상대도 움직인다.

아무도 현재의 상황을 낙관하지 않는다. 누군들 애로와 난관을 모르겠는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의 지혜가 필요하다. 다만 수도 없이 열리는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토론문화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책토론이라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이념은 분열을 낳고, 해법은 합의를 키운다. 전문가라면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영 간 말싸움’은 토론이 아니다. 우리 방송사들도 선진국의 사례를 참조해서 토론 방식을 바꿀 때다.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는 방식은 과거 일방주의 시절의 사고다. 지금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다. ‘제재 때문에 경제협력이 어렵다’는 말도 ‘수동의 논리’다. 제재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평창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제재의 ‘포괄적 면제’가 이루어졌다. 선례를 찾아서 안전지대를 확인하고, 제재를 해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재 때문에 개성공단 재개가 어렵다고 말하기 전에, 개성공단을 재개하기 위한 방법을 만들 때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통일 시기를 포함해서 18년 동안 외무장관으로 일했던 한스디트리히 겐셔는 독일 통일을 ‘순간 포착의 지혜’로 설명한다. “아주 오랫동안 두터운 구름이 독일 통일이라는 별을 가렸다. 우리는 잠시 구름이 흩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통일이라는 별을 낚아챘다.” 한반도의 평화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역사에서 적대관계를 자연치유한 사례는 없다. 우리는 비핵화와 평화체제,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의 기회를 잡았다. 수동의 논리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별을 따야 한다.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능동의 지혜가 필요하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