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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센징, 짱깨 그리고 예멘 난민

  • 오기민
  • 입력 2018.06.29 15:47
  • 수정 2018.06.29 16:11
ⓒ뉴스1
ⓒhuffpost

핵무기와 전쟁의 가능성이 거론되던 일년 전, 소설가 한강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 작가의 언어가 가슴에 와 박혔다. 잠시동안 숨이 멎는 듯 했다. 그리고 오늘 예멘 난민을 보며 이 말을 다시 떠올렸다.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은 오랜 내전을 겪었다. 그들은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친지와 이웃을 잃었다. 아마도 죽음보다 큰 고통과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전쟁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칠 때, 이들은 이미 우리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한 세기 전, 일제에 의한 강제적 합병 이후 조선인의 외국으로의 이주가 크게 일어났다. 때론 강제적이었고 때론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다. 일본으로, 만주로, 연해주로, 하와이로, 태평양 건너 멕시코까지. 불행히도 망한 나라가 자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외국 땅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여전히 상투머리에 보따리를 짊어진 모습이었다. 행색은 초라하고 더러웠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와 낯선 땅에 주눅들어 있었으리라.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 언어는 그들을 더욱 위축 시켰을 것이다. 현지인들은 이렇게 불쑥 나타난 이방인의 모습에 불편함과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주한 조선인은 현지의 저임금노동력을 대체했다. 지역민의 경제적, 정치적 불만이 고조됐다. 현지인들이 처음 느꼈던 낯선 것을 대할 때의 불편과 거부는 멸시와 억압과 차별 그리고 혐오로 이어졌다.

“정어리가 생선인가, 찬밥도 밥인가, 조센징이 인간인가?”

일본으로 대거 이주한 조선인을 조롱하는 일본인의 흔한 표현이었다. 그들은 조선인을 더럽고, 지저분하며, 비도덕적인 야만인으로 바라봤다. 그들에게 조선인은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도둑질하고 해코지할 잠재적 범죄자였다. 목격담과 경험담이 쌓이고 과장된 각색이 진행되며, 편견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 간토 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도쿄, 요코하마 지역에 대화재가 뒤따랐다. 사망자만 10만여명에 실종자도 4만을 넘었다.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조센징이 방화했다”, “조센징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 “조센징의 배후에 사회주의자가 있다”. 그렇게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학살된 이가 6000명을 헤아렸다. 경제적 정치적 불만, 스스로에 대한 우월감, 타 민족에 대한 혐오가 낳은 참혹한 결과였다. 

일본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에는 많은 수의 중국인 화교들이 정착했다. 아편전쟁 이후 끊임없이 계속된 전쟁과 제국주의의 경제적 약탈로 인해 중국인의 대탈출이 이루어졌다. 특히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인접한 산둥성 지역은 수 년간 계속된 가뭄과 흉작으로 수많은 이들이 기아에 허덕였다. 그들은 이주한 조선인이 그랬듯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나 식민지 조선으로 이주했다. 이주한 화교 중 일부는 가게를 운영했고, 대다수는 조선인보다 더 열악한 임금을 받으며 조선 노동자의 일자리를 대체했다. 조선인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불만과 편견에 휩싸인 조선인들은 화교를 가르켜 ‘떼놈’이라 불렀다. 노골적인 혐오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1931년 만보산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일제의 토지 수탈에 못 견뎌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황폐한 땅을 개간해야 했다. 만보산 지역의 개간지를 두고 토착 중국인과 이주 조선인 간의 이해관계가 부딛쳤다. 양측의 폭력적인 분쟁으로 부상자가 발생했다.

만주침략을 준비하던 일제는 이 사건을 적극 활용했다. 조선과 중국간의 갈등은 일제의 만주침략과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조건이었다. 일제의 허위정보를 받아 쓴 국내 신문은 만보산 사건으로 중국인들에 의해 이주 조선인들이 살해 당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명백한 오보였다. 오보는 커질대로 커진 불만과 적대감에 불을 지폈다. 조선인은 분노했다. 경성, 부산, 평양, 개성, 대구, 군산… 전국방방곡곡에서 중국인 화교 사냥이 시작됐다. 화교의 가게로 몰려가 방화하고, 집단 린치를 가했다. 광기는 몇 일 동안 이어졌고 치안권을 갖고 있던 일제는 이를 방관했다. 보도에 따르면 127명의 화교가 사망했으며, 4백여명이 부상했다.

몰려든 조선인은 화교가 운영하는 가게를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불을 질렀다. 당시 가난한 화교들이 운영하는 가게 중에 영세한 호떡집이 적지 않았다. 이들 열악한 호떡집도 조선인의 분노를 피해갈 수 없었다. 조선인의 화교에 대한 경멸은 극악했다. 화재가 발생하자 호떡집 주인은 불타는 가게에서 장꿰(돈을 넣은 상자)를 꺼내기 위해 허둥댔다. 이를 구경하던 조선인은 이 절박한 행동마저 조롱하고 경멸했다. “호떡집에 불났다”는 표현은 여기서 유래했다. ‘짱깨’라는 표현 역시 ‘돈만 찾는 족속’이라는 의미의 악의적이고 경멸 가득한 표현이다. 폭동 이후 한때 6만명에 이르던 화교는 3만명으로 줄었다. 피난 왔던 화교의 절반이 조선인의 집단 린치를 피해 또다시 피난길에 오른 것이다.

한 세기 전쯤 벌어졌던 일이다. 광기의 시대였다.

그리고 지금… 불쑥 ‘예멘 난민’ 문제가 불거졌다. 제주도로 5백여명의 난민이 들어왔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난민 문제는 뉴스에서만 접했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들은 공개적인 첫 반응은 난민 거부였다. 난민을 거부하자는 청와대 민원이 50만을 넘겼다는 소식이다. 공개적인 대중집회도 준비되고 있단다. 놀랍도록 빠른 움직임이다. 즉각적이고 단호하며 대대적이다.

난민 문제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논의되어야 하고 올바른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논의가 시작도 되기 전, 합의에 도달하기도 전에 편견과 혐오가 벌써 넘쳐난다. 더 이상 국가의 보호가 불가능해진 이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찾아왔다면, 우선은 보호하려 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민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할텐데 라고 생각한 나의 생각은 어리섞었다. 하지만 이미 200만 외국인이 함께 살고 있는 나라에서 고작 549명에게 보여지는 이런 재빠른 거부감은 놀랍기만 하다. .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에는 편견과 차별이 존재한다. 그들은 예멘난민을 보며 테러의 공포를 떠올린다. 종교적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거리낌없이 예멘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로 규정된다. 예의 카더라 통신이 생겨나고 각색되고 과장되어 확대된다.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의 이슬람 바로알기 간증’ 같은 거짓 조작이 난무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목청 높은 극단주의자 곁엔 언제나 무책임한 정치인이 존재했다. 난민 문제를 다룬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에서 조차 예멘 난민 문제는 범죄 문제로 등치된다. 사회자가 얘기한다. “난민문제를 얘기하자면 이 범죄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기정사실로 단정된다.

어느새 난민 문제에 진지하게 고민해 볼 틈도 없이 편견과 공포를 강요 받는다. 아랍인에 대한 문화적, 도덕적 우월감을 전제한 채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를 쏟아낸다. 명백한 인종차별이다. 편견에 휩싸인 이들에게 자신과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고,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함께 할 수 없다는 의미일 뿐이다.

많은 아랍인이 테러리스트고 범죄자이며, 이것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주도에도착한 예멘 난민이 테러리스트라는 ‘객관적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제시되지 않는다. 객관적 사실은 없고 다만 언제나, 어디에나 그랬듯이 목청 높은 인종차별만이 존재한다. 과거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에게 그랬던 것 처럼, 이땅으로 이주해 온 화교에게 그랬던 것 처럼.

최근 일련의 조현병 환자의 사건 사고가 주목을 받았다. 그러자 일부에서 조현병 환자에 대해 격리를 포함한 강력한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그러나 조사결과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 범죄율의 10%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범죄의 잔혹함 역시 일반인의 그것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고 한다.

난민이라는 낯선 문제를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 동안 공간적으로, 현실적으로 거리가 먼 이야기인 까닭에 별다른 준비가 안된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논의의 출발을 편견으로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많은 유럽 출신의 젊은이들이 IS에 참여했다고 모든 유럽인을 테러리스트로 대하진 않는다. 아랍인의 누군가 테러리스트가 되었고, 아랍인의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단지 그 사람이 그러했을 뿐이다.

몇 해 전, 한국계 미국인 학생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했던 일로 떠들썩했었다. 사건이 벌어진 미국에서야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에서의 뜨거운 관심은 엉뚱했다. 한국은 미국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사건을 바라봤다. 국내에선 사건의 가해자가 한국계라는 것이 주목 받게 될까봐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어이없어 하던 차에 한 미국인의 인터뷰가 국내 방송에 소개됐다. “이해할 수 없네요. 그건 단지 그 남학생이 벌인 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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