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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03일 11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03일 11시 23분 KST

4·3을 관광상품화 말라

‘그래도’가 지닌 치유의 힘

“미안하다고 하지 말걸 그랬다. 죄송하다고 하지 말걸 그랬다. 나는 내가 피스메이커(peacemaker)인 게 싫다.”

얼마 전 일기장에 내가 적은 말들이다. 내 안에서 갑자기 분출된 말들이라 당황스러웠다. 내 안에 ‘나는 내가 이러는 게 싫어’라는 감정이 오랫동안 쌓여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나는 나 자신이 정말 싫은 순간을 경험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는데, 60대 중반의 영문과 교수님과 젊은 영화평론가 한 분이 함께했다. 토론은 매우 재미있었는데, 문제는 제인 오스틴의 생애를 설명하는 영문과 교수님이 자꾸 제인 오스틴을 ‘노처녀’라고 비하하시는 대목이었다. 한 번이면 ‘실수겠지’ 하고 참으려 했는데, 네 번까지 반복되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왜 죄송하다고 말했을까

작가에게 왜 ‘노처녀’라는 딱지를 붙여야 하는가. 아니, 세상 누구도 ‘노처녀’라는 단어로 자신을 규정당해서는 안 된다. 니체나 고흐나 쇼펜하우어나 베토벤이 ‘노총각’이라는 이유로 비하된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제인 오스틴이 ‘경험’이 없어서 남녀 간의 성적 행위를 묘사하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고 하시니, 그 논리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제인 오스틴의 화두는 남녀 간의 성적 긴장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구체적인 행위의 묘사 없이도 사랑의 미묘한 심리전을 생생하게 묘사해낸 것이 제인 오스틴의 장점이라 생각했던 나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교수님, 제인 오스틴에게 ‘노처녀’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직도 ‘노처녀’라는 단어를 쓰셔서,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런 성차별적인 단어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화들짝 놀라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내가 한 방 먹었네요.” 나는 그런 반응을 원한 게 아니었다. 물론 내가 그 교수님이라고 해도 당황스럽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에게 내가 당했다’고 생각하는 교수님의 사고방식이 또 한 번 좌절을 안겨주었다. 한 방 먹이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쿨하게 인정하시면 족했다. ‘노처녀’라는 단어를 무심하게 쓴 건 자신의 불찰이었다고. 어쩌면 그 교수님은 ‘당신이 늘 옳습니다, 당신이 늘 최고입니다’라는 분위기 속에 살아오셨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젊은이의 도전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되신 것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교수님이 ‘상처받았다’고 느꼈고, 습관적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마음 상하게 해드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 뒤에 이 말을 꼭 덧붙이고 싶었지만, 교수님이 너무 ‘당했다’는 표정을 지으셔서 덧붙일 수 없었다. “하지만 ‘노처녀’라는 말은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꼭 하고 싶었지만,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가버리고 말았다.

토론 내내 교수님의 불편한 심기가 느껴져서 나 또한 좌불안석이었다. 그 시간이 끝나고 작별 인사를 할 때 또 한 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말았다. 정말 내 의도는 연장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내 정확한 의견을 전달해도, 그 의견 자체가 ‘젊은 여성 작가의 당돌한 도발’이 아니라 ‘누군가의 투명한 의견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교수님이 내 의견을 그야말로 쿨하게 받아들이고, ‘이제 노처녀라는 단어도, 노총각이라는 단어도 쓰지 맙시다’라고 멋지게 받아쳐주셨다면, 우리는 더 흥미로운 대화의 장으로 진입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야말로 노교수님에게 ‘찍히고’ 말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잘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과 기쁘게 이별하는 중이니까. 나는 내 진심을 바꾸거나 단장해서 남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해도 좋으니 내 진심이 전달만 되었으면 좋겠다.


4·3과 다크투어리즘

 

백승호
너븐숭이 기념관

나는 집에 돌아오면서 계속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걸, 죄송하다고 말하지 말걸, 나는 피스메이커가 아니야, 다시는 그렇게 비굴하게 죄송하다고 하지 않을 거야, 노처녀라는 말은 꼭 없어져야 해. 올드미스, 골드미스, 된장녀, 김치녀, 이딴 여성차별적인 단어들도 반드시 없어져야 해.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다보니 어느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마흔이 ‘불혹’이라고 이야기했던 <논어>의 주장에 별로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내 생각에 그런 확신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기꺼이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자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하다가는 다음 세대에도, 그다음 세대에도, ‘노처녀’라는 사악한 구시대의 단어가 남아 있을 테니까.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불혹’이란 이렇듯 굳이 더 권위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내 의견을 그저 내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당당하게 그러쥘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마흔을 넘어서며 내게 쏟아진 축복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해 그 어떤 권위의 힘도 빌리지 않기. 칭찬받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하기. 더 멋진 대단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타인의 말을 인용하지 않기.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이 내 나이 마흔의 힘이었다. 그 용기가 아직 부족해 부끄럽긴 하지만, 이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 한다.

 

‘그들과 나의 다름’을 생각하라

얼마 전 제주 4·3평화공원에 갔을 때도 나는 그렇게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마흔의 힘’을 느꼈다. 4·3평화공원 전시실에서 나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는 여행 패턴이 제주 여행의 또 다른 테마가 되고 있다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다크투어리즘을 여행상품으로 만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토록 참혹한, 여전히 완전히 이해받지 못한 4·3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4·3평화공원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4·3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너무나 반갑고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여행 트렌드에 4·3을 편승시키는 것은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다크투어리즘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답고 화사하고 ‘인증샷 찍고 싶은’ 분위기가 따로 있고, 심각하고 진지하며 우울하고 슬픈 역사적 현장이 따로 있는가.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그 수많은 오름들,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천진난만하게 인증샷을 찍었던 그 모든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학살의 현장이 숨어 있었다. 다크투어리즘의 장소는 결코 전형적인 관광명소들과 전혀 다른 곳이 아니며, ‘어두운 역사적 상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두부 자르듯 확연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어느새 제주 4·3평화공원을 다크투어리즘의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글을 열정적으로 쓰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오래 걸리고, 온갖 자료를 뒤졌을 것이고, 그러고도 확신이 생기지 않아 권위자의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이제는 ‘이게 과연 맞는 생각일까’ 고민하며 온갖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불혹과 일맥상통한다면, 나는 이런 ‘미혹되지 않음’이 참으로 좋다. 내 의견을 만들기 위해 온갖 참고 문헌을 끌어들이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피곤한 감정노동을 이제는 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예전보다 더 많이 책을 읽기는 하지만, 그 책들의 이야기에 ‘혹하기’보다는 ‘그들과 나의 다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어떤 위대한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설득당하기보다, 그와 대등하게 대화하고 싶어졌다.

얼마 전 켄트 M. 키스의 시 ‘역설적인 계명들’을 읽다가 ‘그래도’라는 접속사가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을 자아내는지를 깨달았다. “사람은 종종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라./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뭔가 이기적인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래도 베풀라./ 성공하면, 가짜 친구 몇 명과 진짜 적 몇 명이 생길 것이다. 그래도 성공하라./ 오늘 하는 좋은 일이 내일이면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기 쉽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돕고 나서 오히려 공격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도우라./ 세상에 당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내줘도 면박만 당할 것이다. 그래도 최고의 것을 내줘라.” 이 시를 읽다보니, 내 마음속에 숨어 있던 수많은 ‘그래도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 일제히 휴화산처럼 깨어나, 그동안 남의 눈치를 보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꼭꼭 숨겨오기만 했던 열정의 마그마가 폭발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가 지닌 치유의 힘

키스의 시를 읽으며 나는 ‘그래도’라는 접속사가 지닌 치유적 힘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그래도’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는 순간,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줘도 ‘그래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의 목록이 흔들리지 않는 순간, 우리는 ‘불혹’이 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이 당신의 의견을 비웃으며 ‘혹시 네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눈빛을 보내도, 그래도 거침없이 말하라. 당신이 떠올린 바로 그 첫 번째 생각을. 당신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길어올린 가장 당신다운 생각을. 온 세상이 당신의 꿈을 가로막아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라. 이제는 더 아름답고 더 대단한 것들에 혹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내가 스스로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으니까.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