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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에 두 번 버림받은 김희중의 ‘영화같은 21년'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2012년 7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제 재임 중에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달라 하는 것이 저의 오늘의 입장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서울 강남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격에 나섰습니다. 최근의 검찰 수사가 ‘처음부터 자신을 향한 것’이라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죠. 짜맞추기 정치보복 수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나에게 물어라”라고 했지만, 정작 ‘국정원 특수활동비’나 ‘다스’ 등 구체적 의혹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죠. 참모들 역시 “궁금한 점은 아마 내일 이후에 저희들이 소상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애매한 말로 즉답을 피했습니다. (▶관련 기사: [뉴스AS] “나에게 물어라” 했지만…대답 없이 떠난 MB)

이 전 대통령은 이럴거면 왜 자청해서 기자회견을 했을까요? 이 전 대통령이 급박하게 기자회견을 연 건 ‘MB의 성골 집사’라고 불리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김 전 실장이 이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2011년 10월 국정원 특활비를 달러로 바꿔 10만달러(1억여원) 정도를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머물고 있는) 관저 직원에게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는 등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 중이라는 겁니다. (▶관련 기사 : “MB 갑작스런 기자회견은 ‘키맨’ 김희중 진술때문이다”)

■ 15년간 MB만 바라본 ‘집사 중의 집사’ 김희중

하루 아침에 뜨거운 관심 대상이 된 김희중 전 부속실장은 어떤 인물일까요? 김 전 실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여러 권력 실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에 사무실을 두고 대통령의 일정과 면담 등을 조정합니다. 대통령의 개인적인 일도 보좌하곤 하는데요. 그래서 김희중 전 부속실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이라고 불렸습니다.

김 전 실장은 1997년 비서관으로 당시 초선의원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 때 김 전 실장의 나이 39살. 이후 15년 동안 이 전 대통령의 참모이자 비서로 일해 왔죠.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에는 수행비서였고, 청와대 입성 뒤에는 제1부속실장이 됐으니까요. ‘영원한 비서관’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한때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도 김 전 실장을 “집사 중의 집사, 성골집사”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 문고리 권력은 ‘돈의 유혹’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 2012년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 뒤 추락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인출 사건을 시작으로 터진 저축은행 연쇄 부실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한때 높은 이자를 내걸고 서민들의 자금을 빨아들였던 저축은행은, 2011년 일부 저축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으로 선정되면서 각종 비리도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축은행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많은 대출을 해줬는데, 2008년 금융위기와 부동산 침체를 겪으면서 상당수의 대출이 계속해서 연체되기 시작한 겁니다.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8개 저축은행이 2011년 영업정지 됐습니다. 일부 저축은행은 영업정지를 피하기 위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왔죠. 김 전 실장이 연루된 건 솔로몬저축은행이었습니다.

김 전 실장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경영진단 및 부문검사와 관련해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에게 부탁해 솔로몬저축은행에 대한 검사기준을 완화해주고, 향후 솔로몬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받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2011년 8월 말부터 2012년 1월까지 3차례에 걸쳐 1억8000만원을 받았습니다.

임석 회장은 저축은행 사태의 핵심이었는데요. 임 회장은 솔로몬저축은행 구명로비를 벌이며 김 전 실장 뿐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징역 1년2개월 확정·만기출소)에게도 현금 3억원을 건넸죠. (▶관련기사: ‘만사형통’ 이상득, 징역 2년 선고에 법정서 ‘휘청’)

임 회장의 전방위적인 로비 덕이었을까요? 실제 솔로몬저축은행은 2011년 9월 영업정지 ‘유예’를 받았습니다. 그 사이 솔로몬저축은행의 부채는 2000억원 더 늘어났습니다. (▶관련 기사: 저축은-금융위-정치권 뇌물 커넥션 금융당국 상시감시로 ‘피눈물’ 막을까)

김 전 실장은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졌을 때 바로 사표를 냈습니다. “언론보도처럼 금품을 수수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로 내 이름이 거론된 것과 관련해 도의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면서요. 이렇게 그는 처음에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청와대 실세가 비리에 연루됐지만,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처음 언론보도가 나왔을 때 ‘진상조사를 하겠다’고는 했지만 김 전 실장이 사표를 내자 이를 곧장 수리하곤 “민간인이라 진상조사를 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죠.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이에 걸맞은 조처를 취하는 게 상식적인 데도 대충 넘어간 겁니다. (▶관련 기사: ‘문고리 권력’ 김희중, 저축은행 의혹 사표에…민간인 신분 돼 진상조사 못한다는 청와대)

청와대가 침묵하는 사이 김 전 실장은 구속기소됐습니다. 1심 법원은 2012년 11월 징역 1년3개월 형을 선고했습니다. 징역 2년을 구형한 검찰도 항소하지 않고, 김 전 실장도 항소하지 않아 형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곧 대통령 선거가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도 3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던 시점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설(2월10일)을 전후로 특별사면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당시 밝혔는데요. 김 전 실장이 이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 초 MB의 마지막 특별사면에 김희중 전 비서실장이 포함될 거라는 언론보도.

■ 김희중, 배신감에 돌아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특별사면 직전, 김희중 전 부속실장도 특별사면에 포함될 거란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 전 실장이 1심에서 징역형을 받고 항소를 포기한 건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을 사면해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대거 포함된 특별 사면 명단에 김희중 전 부속실장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관련 기사: 정권말 특별사면 노려 항소 포기할까)

김 전 실장 구속 이후 가족은 변변한 수입이 없었다고 합니다. 부인은 아이들과 함께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지만, 이들을 챙겨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결국 2013년 9월 김 전 실장의 만기 출소를 1개월 앞두고 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시 영월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 전 실장은 귀휴(복역 중에 있는 사람에게 일정기간 주어지는 휴가)를 받아 문상객들을 맞았습니다.

‘김 전 실장이 복역 중 부인상을 당했는데 문상을 가야하느냐.’ MB 쪽에서는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아무도 문상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조화조차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두언 전 의원은 “김 전 실장으로서는 너무나 철저하게 배신감을 느꼈을거다. 한이 맺혔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 “국정원 특활비 1억, 김윤옥 여사 명품 구입”

MB 국정원의 특활비 상납을 확인한 검찰이 지난 12일 김희중 전 비서실장을 소환하자 김 전 실장은 모든 걸 다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성실히 조사를 받았고요. (검찰에서) 궁금해하시는 점이 많아서…나름대로 잘 설명 드렸습니다.” 밤샘 조사를 마치고 나온 김 전 실장은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정두언 전 의원은 18일 '중앙일보'와 한 통화에서 “김 전 실장이 검찰에 모든 것을 털어놓기 전 내게 ‘더이상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고 문자를 보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김희중 전 실장은 검찰에서 ‘국정원 특활비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알았을 뿐 아니라, 그 비용이 환전 돼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 전달됐으며 명품 구입에 사용됐다’는 구체적 내용까지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금을 관리한 15년 핵심 측근이 아는 것이 이것 뿐일까요? 최근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인 것으로 의심받는 다스의 비자금도 수사하고 있습니다. 김 전 실장은 다스 관련해서도 핵심 증언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박홍근 “국정원 특활비 1억, 김윤옥 여사 명품 구입에 사용”)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선다면 그건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 때문일 거라는 보도가 우세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댓글공작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잇따르면서 ‘국정원 수사 딱 한칸만 올라가면 MB’라는 보도도 나왔죠.

사태는 검찰이 국정원 특활비가 청와대에 상납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급변했습니다. 화이트리스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가 국정원 간부들로부터 박근혜 정부 시절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시서관 등 문고리 권력 3인방에게 뒷돈을 상납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검찰은 “자체적으로 수사를 하던 중 단서를 포착해 수사에 착수하게 됐다”고 설명했죠.

우선 검찰은 지난 4일 국정원 특활비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뇌물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이후 1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집사’로 꼽히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며 MB 국정원의 특활비 수사를 시작했죠. 그리고 지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구속됐습니다. (▶관련 기사: ‘원세훈 국정원’ 특활비 좇다 ‘MB 집사’에 유입 포착)

검찰은 김희중 전 비서실장에게 많은 진술을 받아냈을 겁니다. 어쩌면 ‘결정적 증거’까지 확보했을 수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생각보다 빨리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 특활비 수사 급물살…MB소환, 올림픽 전으로 당겨질듯)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치부를 모두 알고 있는 최측근 인사를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냉정하게 내쳤습니다. 이젠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제 재임 중에 일어난 모든 일 (중략) 나에게 물어달라”고 했으니, 직접 물어봐야겠지요.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조사에 응할까요? 이제 정말 딱 한 계단 남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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