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트럼프의 음모 이론이 미국에서 그토록 인기있는 이유

  • 허완
  • 입력 2016.10.03 07:21
  • 수정 2016.10.03 07:29
Republican presidential candidate Donald Trump speaks at a rally, Saturday, Oct. 1, 2016, in Manheim, Pa. (AP Photo/John Locher)
Republican presidential candidate Donald Trump speaks at a rally, Saturday, Oct. 1, 2016, in Manheim, Pa. (AP Photo/John Locher) ⓒASSOCIATED PRESS

“나는 언제라도 정치꾼들 대신 제독과 장군들을 선택하겠다. 정치꾼들이 지난 10년 동안 그들의 지식으로 우리의 나라를 아주 잘도 이끌어 왔다는 것을 나는 안다.”

— 도널드 트럼프, 1차 대선 토론, 2016년 9월 26일

진보주의자들을 미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아닌 곳에서 태어났다? 미국인의 42%,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58%가 실직 상태다? 테드 크루즈의 아버지가 케네디 암살에 연루되었다? 이런 터무니 없는 주장들, 트럼프가 했던 다른 말들 중 약 5분의 1을 Politifact에서는 ‘꽁무니에 불이 붙은 Pants on Fire’ 등급 거짓말로 분류한다.

그러나 가장 최근 여론 조사에서도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실 이 분야에서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10% 앞서고 있다. 얼마 전부터 기사에서마저도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거짓말쟁이라고 부르고 있는 뉴욕타임스 등의 언론인들과 전문가들이 트럼프의 말을 아무리 정정해도 그 폭은 줄어들지 않는다. 트럼프는 역사상 가장 부정직한 대선 후보임이 너무나 명백한데도, 진실 설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어찌 된 일일까? 내 해석은 다음과 같다. 다수의 미국인들은 과학자, 역사가, 언론인, 싱크탱크의 정책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거대한 음모 집단이 미국에서 무엇이 ‘사실’로 받아들여 지는지를 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트럼프는 음모에 맞서는 영웅적 반항자다. 그리고 트럼프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전문가들의 시도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이 음모 집단의 일부라는 인상이 강해질 뿐이다.

트럼프는 거대한 음모 집단에 맞서는 영웅적 반항자를 대표한다.

거대한 음모론에 대한 믿음은 좌우할 것 없이 널리 퍼져 있다. 작은 예들을 들자면, 케네디는 정부 고위급이 이끄는 음모 집단에 의해 암살 당했는데, 어쩌면 린든 존슨이 배후일지 모른다. 기후 변화는 좌파 과학자들이 지어낸 사기다. AIDS는 소수 집단, 게이, 마약 남용자들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퍼뜨린 병이다. 오바마케어는 미국의 자유를 파괴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9/11은 내부 소행이거나, 이스라엘이 감행한 위장 작전이었다. 과학자들은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숨기려 노력했다.

내가 언급한 각 주제의 전문가들은 저런 이야기들이 완전히 거짓이라고 한다. 즉, 저 이야기들이 참이려면 우리 기존 사회(대학, 싱크탱크, 연구실, 명망있는 언론사)의 엄청난 부분이 우리 모두를 속이려는 거대한 시도의 일부이거나 음모에 속아 넘어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지극히 믿기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기존 사회를 부정하는 반항자들을 믿을 이유도 없다. 그들은 어디서 사실을 알아냈단 말인가? 그들은 어떻게 의사들보다 약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범죄와 보안 위반을 수사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보다 범죄와 안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좌파 역시 우파와 마찬가지로 잘 넘어간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주류 언론’을 공격하는 좌파 교수들, ‘대안’ 뉴스 매체에서 어두운 목소리로 대기업 본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실대로 말해주는 건 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음모 이론을 퍼뜨리는데 있어서는 기후 변화를 비웃는 사람들, 빈스 포스터가 클린턴 부부에 의해 살해 당했다고 우기는 사람들과 똑같이 책임이 있다.

왜 미국인들은 자료 수집에 대한 음모론에 그토록 이끌리는 것일까? 왜 명망 있는 학자와 언론인들이 기본적인 사실들조차 모르고 있다고 쉽게 믿어 버리는 걸까?

미국이 건국될 때부터 우리는 전문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무척 꺼려했다.

답은 여러 가지다. 과학적인 성경 비판에 겁을 먹거나 분개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은 모든 현대 과학이 기만적이거나 착각이라고 반응한다. 진화를 폐기하고 나면 기후 변화 역시 사기라거나, 버락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기는 쉽다.

그리고 주류 매체가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아 좌절한 소수 집단이 있다. 실제 은폐 사건의 피해자들이 있다(시카고 시는 칼을 가지고 있던 10대 소년 라콴 맥도널드가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영상 공개를 1년 이상 거부했다. 환경 보호국은 디트로이트 수돗물의 납 성분에 대해 침묵했다.). 그들은 뉴스 보도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미국인 전체를 학술 전문가들에 대한 음모론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열렬한 믿음이다. 미국이 건국될 때부터 우리는 전문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무척 꺼려했다. 모든 걸 직접 알아내는 쪽을 선호했다. 전문가를 부정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는 영국을 거부하는 것과 비슷한 반항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누가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것이 싫은 것만큼이나 누가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라고 시키는 걸 싫어한다.

위대한 역사가 고든 우드는 미국은 영국에 대한 반란 이후 ‘인식론적 위기’를 겪었다고 지적했다. 어디에서나, 심지어 의학에서도 ‘엘리트들의 의견에 대한 공격과 평범한 판단에 대한 찬양’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모든 것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 학자들의 시각 못지 않다, 모든 걸 직접 판단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드는 그 결과 미국이 P.T. 바넘 같은 ‘사기꾼들, 신용 사기꾼들, 협잡꾼들’의 먹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 앞에 제시된 어떤 생각이나 물건의 진실 내지 신용도를 직접 판단할 수 있다는 자신에 찬’, 또한 자신의 판단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을 불신하는 미국인들은 엉터리 물건을 파는 사기꾼들의 쉬운 표적이었다.

엉터리 물건을 전문가들에 대한 음모론과 함께 묶어 팔면 더 잘 팔린다. 권위있는 학자와 언론인들은 자신들의 무신론이나 협동조합주의를 밀어붙이려고 손 잡은 잘난 척하는 엘리트들이라는 생각은 미국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혁명적 서사구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전문가들이 언제나 무시와 조롱을 당하는 사회는 어리석은 사회이기도 하다.

물론 저명한 전문가들에 대한 의심은 아주 좋을 수 있다. 현대 과학과 철학은 데카르트와 갈릴레오 같은 인물들이 당시 가톨릭 교회가 강요하던, 널리 받아들여지던 지혜를 부정하고 스스로 진실을 추구하면서 태어났다. 그리고 지식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험대에 오를 수 있는 사회는 활기찬 사회, 도그마와 편견이 쉽게 뒤집힐 수 있는 사회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언제나 무시와 조롱을 당하는 사회는 어리석은 사회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아는 것 대부분을 권위있는 전문가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지식을 안다는 주장에 날카로운 의문을 던지는 법, 뒷받침하는 증거를 이해하면서 사상을 분석하는 법 역시 권위있는 전문가들에게 배운다. 그 어떤 권위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사려깊은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배우는 단계를 건너뛰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치에 맞는 주장과 타당하지 않은 주장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아이러닉하게도, 이 단계에서 회의론은 잘 속아넘어가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럴듯함과 그럴듯하지 않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쉽게 속는다.

예전에는 ‘권위에 의문을 품어라 Question Authority’라는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육업에 종사하는 우리들 역시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비판적 사고’의 중심이라고 했다. 그러나 ‘권위에 의문을 품어라’는 말 만으로는 좋은 슬로건이 아니다. ‘전문 지식을 존중하라 Respect Expertise’ 같은 말이 함께 있어야 한다. 전문 지식을 존중하지 않으면 우리는 좋은 질문을 만들 수조차 없다. 우리는 정보를 꼼꼼히 살피는 능력조차 없는 사람이 된다.

지식을 모으는 것은 사회적인 과정이다. 노동은 분할되어, 연구의 각 영역에 있는 사람은 그 특정 영역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주장해도 정당하다. 물론 그들 모두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전문 지식이 없는 우리들이 틀렸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러한 전문 지식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를 속이려는 음모론을 꿰뚫어 보는 강하고 영리한 개인주의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바보가 된다. P. T. 바넘에게 속을 수 있다.

혹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의 블로그 This Is Why Trump’s Conspiracy Theories Are So Popular In America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필자는 일리노이-시카고대 철학 교수로, 정치 철학과 종교 철학 등을 연구해왔습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국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음모론 #미국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