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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게이였다" 중년에 남편의 커밍아웃을 경험한 여성들의 수기 3

  • 박수진
  • 입력 2016.09.06 11:00
  • 수정 2024.03.22 14:58
ⓒGetty Images

드라마 '그레이스 & 프랭키'는 결혼 40여년 만에 남편이 게이이며 동성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70대 여성들의 이야기다. 유쾌한 드라마지만, 실제로는 중년을 넘긴 부부에게 배우자의 커밍아웃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일이다.

1986년 이런 이들을 위해 생긴 단체, '스트레이트(이성애자) 배우자 네트워크'의 설립자 아미티 피어스 벅스턴은 "동성애자인 배우자, 이성애자인 배우자 둘 다 피해자"라고 말한다. 그는 결혼 25년째에 남편의 커밍아웃을 겪고 이 단체를 만들었다. 같은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단체다.

벅스턴은 "나이가 들면 새로운 삶을 재구성 할 시간이 없다"며 중년 이상 나이에 겪을 경우 더 힘든 일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지금까지 본 바에 의하면 3분의 1은 화가 난 채 즉각 이혼하며, 3분의 1은 천천히 절차에 따라 이혼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는 배우자가 동성애자라는 사실 자체보다는 배신감과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속았다는 느낌이 강할 수록 분노는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 심리학자 킴벌리 마젤라의 설명이다.

실제로 그가 조사한 결과, 중년에 배우자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 경우의 3분의 2는 스스로 고백한 것이 아니라 불륜, 포르노 등 단서들로 배우자가 알아냈다. 이렇게 스스로 밝히지 않는 데는 종교적 신념, 사회적 제약 등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배우자와 이혼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경험을 겪은 3명의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1. 87세, Amity

우리는 두 아이가 있었다. 결혼 생활은 좋았지만, 남편은 점점 멀어졌다. 남편은 조기 퇴직 후 여행이나 혼자 하는 취미를 많이 즐겼지만, 거기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심각하지 않은 수술을 받을 일이 있었는데, 문병 간 내게 남편은 마취에서 깨지 않은 상태로 "할 말이 있어, 난 게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막장드라마라도 찍는 거야?"라고 답했다.

남편은 카톨릭이었고, 종교에서 가르치는 바에 따라 동성 애인과 헤어지고 나와 결혼했다. 그는 완전히 성실한 결혼 생활을 했다.

먼저 충격이 찾아오고 그 후에 불신이 찾아온다. 현실을 직시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내가 성적인 매력이 충분히 없었다는 건가? 섹스 테크닉이 부족했나? 내 인생이 누군가의 거짓말의 일부가 된 거라면, 난 누군가?"

결혼이 남편에게 감옥 같은 날이었다는 것은 그에 반해 훨씬 명확한 진실이었다. 남편은 "더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라고 말했고, 나는 "아니, 살 수 있어!"라고 답했다.

그 대화를 나눈 다음날 그는 자살했다. 진짜 자신으로 살지 못한 삶이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는 물론 엄청나게 울었다. 자신의 인생을 거짓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절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과 결혼한 동성애자 남편들이 모두 같은 괴로움을 겪는다.

2. 51세, Susan

약 10년 간의 결혼 생활 중, 나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바에서 춤 추는 것에 대한 통화를 하는 걸 들었고, 상대가 남자인 걸 알아냈다. 함께 휴가를 떠난 어느 날 밤 나는 술기운에 남편에게 그 일에 대해 물었다. 남편은 술기운에 "나는 언제나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몇 년에 걸쳐 여러 번 그에게 물었고, 남편은 그때마다 화를 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머릿 속에 계속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결혼에 종지부를 찍​​을 용기를 가지는 데 다시 10년 정도 걸렸다.

2015년, 나는 용기를 가지고 물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결혼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 남편의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 답을 듣는 순간, 분노의 감정이 나를 덮쳤고 나는 남편을 싫어하게 됐다. 그러나 동시에 그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많이 들었다.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말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커밍 아웃은 내 자신의 자존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20년 동안 함께 산 그에 대해 이렇게 모르다니, 내가 뭐가 잘못된 걸까?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한편으로는 내게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게 없나? 하며 나를 돌아보는 생각도 했다.

아이들에게는 우리는 아쉽게도 함께 휴가를 보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경험이 그에게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는 완전히 커밍아웃한 게 아니었다. 동성애자라는 단어 대신 남자에 관심이 있다고만 말했다. 두려운 만큼 어려운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3. 70대, Judith

내 경험은 많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그가 동성애자라는 걸 알았다면 알고 있었다. 이상한 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빠져 결혼한 것이다.

1966년, 결혼 전날 남편이 말했다. "할 말이 있어. 너가 아니었다면 나는 동성애자로 살았을 거야." 1966년에는 게이란 세상에 없는 존재였다. 나 역시 실제로 아는 게이는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그게 노이로제 같은 거냐고 물었고, 남편은 부분적으로는 그렇다고 말했다. 남편은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중이었다. 나는 치료를 더 받아보라고 말했다.

어쨌든 그는 내게 청혼했고 우리는 결혼했다. 나는 그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남자를 떠올린다는 것도 몰랐다.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불안정했다.

그가 마침내 내게 말했을 때 나는 끔찍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는 페미니스트이며 동성애자들의 인권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막 그런 활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당신의 용기가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여자와 잤다면 나는 황폐해졌을 것이다. 남편의 인생에서 단 한 명의 여자라는 것이 위안이 되는 면도 있었다. 어쨌든 이별은 이별이었다.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는 내가 딸을 낳기 전까지는 계속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의 위치에 있었다. 남편이 1986년에 에이즈로 사망할 때까지 우리는 잘 지냈다. 나의 젊은 시절 전체, 젊은 시절의 열정 전체가 그와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걸 찾을 길은 없다.

*위 수기들은 명료성을 위해 줄고 편집됐습니다.

*허핑턴포스트US의 3 Women Share The Moment They Found Out Their Husbands Are Gay를 번역,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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