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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중계 도중 패색이 짙어지거나 경기에 지게 되면 후다닥 멘트를 정리하고 장면을 전환시킨다.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들도 '문턱에서 좌절', '또 한 번 실패', '무릎을 꿇었다'처럼 자극적인 것으로 도배를 한다. 기대치라도 높았던 선수가 기대에 충족하지 못할 때는 감정도 추스르기 전에 마이크를 들이대고 대국민 사과를 강요하는 것 같은 장면도 연출한다.

  • 안승준
  • 입력 2016.08.16 12:30
  • 수정 2017.08.17 14:12
ⓒ연합뉴스

박수 받고 싶나요?

난 달리기에 관해선 그리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릴 적 체육대회 날을 떠올려 보면 50m 조별 달리기에서조차 내 역할은 그저 완주였던 것 같다.

조를 바꿔 달려도 총소리보다 살짝 일찍 출발하는 얕은 꾀를 부려봐도 내 앞의 친구들을 뒤로 보낸다는 건 운동장을 통째로 뒤집기 전에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일 년 빠르게 입학한 어린 나이로 핑계를 대보고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내 발육상태가 너무도 좋았다.

연습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워낙에도 뛰어노는 걸 좋아했지만 한 명이라도 이겨보겠다는 굳은 각오는 하루에도 동네를 몇 바퀴씩 뛰며 도는 강훈련을 감당하게 했다.

나름 줄도 매어 놓고 온 몸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희열까지 새기면서 마인드 컨트롤까지 한 걸 보면 과정만큼은 완벽했는데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공책 몇 권 정도가 최고의 상품이었음에도 달리고 또 달리고 젖 먹던 힘을 다했던 것은 오늘은 잘 뛰었다는 격려 한 마디를 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TV에서는 올림픽 중계가 한창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금메달 소식이 들려오고 감격스러운 장면들은 뉴스부터 예능 프로그램까지 수십번씩 반복재생으로 보여준다.

금메달리스트는 물론이고 그 가족과 지인들까지 인터뷰하고 사연들을 취재하느라 방송국의 인기프로그램들까지 결방 결정을 내리고 있는 듯하다.

나라를 대표하여 수년 간 땀을 흘린 그들에게 나도 늘 큰 박수와 함성을 보낸다.

나름의 보상과 격려가 따라오지만 내 맘 같아선 더 주고 싶은 맘까지 들 정도로 선수들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긍정에너지를 심어주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문득 어릴 적 체육대회 날이 떠올랐던 건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을 보면서였다.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 중 누구도 금메달 따고 싶지 않은 선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과가 다를 뿐이지 선수들의 노력이나 열정의 크기가 크게 차이 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언론의 생각은 나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중계 도중 패색이 짙어지거나 경기에 지게 되면 후다닥 멘트를 정리하고 장면을 전환시킨다.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들도 '문턱에서 좌절', '또 한 번 실패', '무릎을 꿇었다'처럼 자극적인 것으로 도배를 한다.

기대치라도 높았던 선수가 기대에 충족하지 못할 때는 감정도 추스르기 전에 마이크를 들이대고 대국민 사과를 강요하는 것 같은 장면도 연출한다.

축하받아야 할 선수가 축하받는 것은 당연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노력의 가치는 결과로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방송 모든 언론들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장면 똑같은 이야기들을 내보낼 때 한 군데에서만이라도 아름다운 노력의 과정을 소개해 주면 어떨까?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그리고 태극마크의 책임감을 짊어지고 올림픽에 도전하기까지 저마다 선수들에게는 멋진 이야기 감동스런 과정들이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흔하디 흔한 이야기로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라!'라고 하지 않는가?

그들의 과정들은 국민들에게는 또 다른 모양의 에너지를 선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국민들의 따뜻한 격려들 또한 선수들에겐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되리라 믿는다.

일등은 어느 순간에도 한 자리밖에 없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리는 우리 모두는 격려 받고 싶고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과정에 힘을 실어 주고 응원을 보낼 때 결국 그 박수는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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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안승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