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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마이 네임' : 촬영 중에 갑자기 관계하는 신 찍어야 한다는 감독 말을 거절할 배우가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

배우가 자유롭게 ‘싫다’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넷플릭스 '마이 네임'
넷플릭스 '마이 네임' ⓒ넷플릭스 제공

10월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마이 네임’은 아버지를 세상을 떠나게 한 범인을 찾기 위해 조직에 들어간 ‘지우’(한소희 분)가 새로운 이름으로 경찰에 잠입한 후 마주한 냉혹한 진실과 복수를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 ‘지우’역을 맡은 한소희는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드라마를 시청한 사람들이 품는 비슷한 의문점이 있다. 바로 안보현과 한소희의 ‘개연성 없는 잠자리 장면’이다. 

극 후반부에 등장한 장면은 복수극에서 지우라는 캐릭터가 끌고 온 개연성을 무너트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 해당 신에는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사전 대본에는 없던 내용이었으며 배우들은 이 사실을 중반부까지 촬영을 마치고 7~8회(마지막회) 대본이 수정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넷플릭스 '마이 네임'
넷플릭스 '마이 네임' ⓒ넷플릭스 제공

한소희는 지난 20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러브신이 뜬금없다는 반응이 있는데 어떻게 몰입했나”라는 질문에 “촬영하는 도중 찍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인터뷰가 공개된 후 시청자들은 수정된 내용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김진민 감독을 비판했다. 앞서 김진민 감독은 인터뷰에서 러브신에 대해 “꼭 필요했던 장면”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해당 장면이 극의 흐름에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촬영 도중 합의했다고 해도 ‘강요’의 뉘앙스는 지워지지 않는다. 촬영 중반이 넘어간 시점, 이 장면을 반드시 찍어야 한다는 감독의 말을 거절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특히 여성 배우가 현장에서 불편함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산업 내에 자리 잡은 권력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에밀리아 클라크
에밀리아 클라크 ⓒHBO '왕좌의 게임'

러브신 작업은 더 정교해져야 한다

해외 상황 역시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을 연기한 에밀리아 클라크는 관련 장면을 찍기가 무서웠다고 전한 바 있다. ‘왕좌의 게임’에서는 관련 장면이 많을 뿐더러 수위 또한 높다. 

클라크는 팟캐스트 ’암체어 엑스퍼트′에 출연해 “첫 번째 시즌에서 나는 내가 뭘 하는지 이게 다 뭔지 하나도 몰랐다”라며 “많은 제작진 앞에서 아무 것도 입지 못한 채 서 있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거다. 내가 뭘 하려는 건지, 나한테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아무것도 몰랐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떤 장면인지를 떠나, 내겐 필요한 걸 요구할 자격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당시 클라크는 20대 초반, 신인이었다.

에밀리아 클라크
에밀리아 클라크 ⓒVera AndersonWireImage

또한 그는 ‘데일리 메일’ 인터뷰에서 러브신은 더 미묘하고 정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 장면들은 단지 관객을 더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며 “사람들이 영화나 TV에서 보는 대부분의 관계하는 장면은 사실 불필요하다. 특히 영화에서는 미묘한 묘사가 더 낫다”고 덧붙였다.

 

민감한 촬영 시 배우를 보호하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러브신 등 친밀한 장면을 찍을 때 강요된 동의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촬영 현장에도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영화계 미투 운동 이후,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신체 접촉이 있는 장면을 강요받거나, 촬영장 분위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리하여 등장한 직업이 바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다. 현장에서 민감한 장면을 촬영하는 배우를 신체적·정신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자료 사진
자료 사진 ⓒgorodenkoff via Getty Images/iStockphoto

미국에서는 HBO가 2018년부터 제작하는 드라마·영화 전 작품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기용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넷플릭스는 ‘오티스의 비밀상담소′, ‘브리저튼’ 등 일부 작품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기용하고 있다.

이들은 촬영 전, 어떤 상황과 분위기에서 키스하는가, 키스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혀를 넣는가, 신체 접촉은 어느 정도인가, 카메라의 앵글은 어디를 잡는가 등을 확인한다. 감독의 의사와 배우의 의지가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의논한다. 

건조한 언어로 연기의 방향을 풀어주기도 한다. 배우 출신이자 2017년 연구그룹 시어트릭 인티머시 에듀케이션(Theatric Intimacy Education)의 공동 설립자인 페이스는 BBC 뉴스 코리아에 “배우에게 ‘파트너를 어루만져라‘고 연기를 지시하는 게 아니라, ‘파트너 얼굴 옆면에 피부를 닿게 하라’는 식으로 한다”고 전했다.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의 에이미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의 에이미 ⓒ넷플릭스

 

자유롭게 ‘싫다’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

영국 고등학교를 무대로 십대들의 첫 경험, 친구 및 연인 관계, 커밍아웃, 젠더 이슈 등을 다룬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촬영 현장에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항상 상주한다. 드라마에서 에이미로 출연 중인 배우 에이미 루 우드는 콜라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통해  촬영 현장에서 ‘확실한 동의’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밝혔다.  

담당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오브라이언은 에이미가 처음 관계하는 장면을 찍기 전, 대본 내용에 동의하냐고 물었다. ‘아마도 괜찮을 것 같다‘는 에이미 답에 오브라이언은 즉시 정색하며 “민감한 촬영 전 ‘아마도 괜찮을 것 같다’라는 말은 ‘NO(아니오)‘와 동의어다. 또 ‘아마도 편할 것 같아‘ 등의 애매한 말도 ‘싫다‘나 비동의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진짜 동의’하지 않은 걸 대충 둘러대고 하게 되면 나중에 후회하기 때문이다”고 조언했다.

또한 오브라이언은 “단지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매한 답을 하는 거라면 그만둬야 한다. 확실한 ‘Yes(예)’만이 확실한 동의다. 이는 모든 민감한 장면에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에이미 또한 “배우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촬영 상황이 편한지 아니면 불편한지 알 수 있다. 모든 배우가 촬영 현장에서 자유롭게 ‘그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모모코 니시야마
모모코 니시야마 ⓒ모모코 니시야마

미국, 영국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아시아권에서는 생소한 직업군이다. 그중 일본에서 활동 중이고 할리우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모모코 니시야마는 허프포스트에 “이 일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마다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파악하고 촬영 전 동의를 구하는 거다”라며 “배우가 하기 싫은 장면이 있다면 자유롭게 ‘싫다’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제작에까지 개입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회의적인 목소리에 대해서는 “우리의 역할은 감독 의도를 파악하고 배우와 적절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지 제작을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 제작 현장에서도 하루 빨리 이들을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이소윤 에디터 : soyoon.lee@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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