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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4일 14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11월 24일 15시 00분 KST

“5·18 원한 모두 잊겠다" 계엄군 총탄에 맞아 평생 후유증 시달린 유공자가 전두환 사망 당일, 세상을 떠났다

끝내 '전두환 사망' 소식을 듣지 못했다.

5·18구속부상자회 제공
고(故) 이광영씨

1980년 ‘5월 광주’ 학살 책임자인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숨진 날. 계엄군의 총탄에 하반신이 마비돼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 유공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0년간 고통과 통증 속에 살다가 23일 생을 마감한 고 이광영씨(68) 유서에는 ‘5·18에 대한 원한, 서운함을 모두 잊고 아버님 품으로 가고 싶다’라는 내용이 담겨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24일 전남 강진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쯤 강진군 군동면 한 저수지에서 이씨(68)가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지난 22일 오후 4시쯤 자택에 유서를 남기고 떠났고, 가족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유서에는 ‘통증이 심해져서 힘들고 괴롭다. 5·18에 대한 원한, 서운함을 모두 잊겠다. 아버지 품으로 가겠다. 가족에게 고맙다’는 내용이 쓰였다.

그는 같은날 전북 익산에 있는 거주지에서 고향인 강진 군동면 한 저수지까지 170여㎞를 직접 운전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타살 혐의가 없는 것으로 보고 사망 원인을 익사로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이렇게 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5·18 당시 부상당한 시민군을 돕다 척추관통상을 입은 이씨는 수십년간 통증이 심각해 하루에도 6번씩 통증 완화 주사를 맞았다. 그럼에도 이씨는 배우자와 함께 학교 부식을 납품하는 일을 하며 주로 운전을 도맡았고 만화 가게, 치킨집을 운영하는 등 생계를 유지했다.

이씨는 통증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10여년 전 광주를 떠나 강원도 태백에 있는 산속에서 생활하다 지난해부터 전북 익산에 있는 요양지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우울증 증세 등 지병은 없었고 가족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와 40년지기 친구인 조봉훈 5·18 구속부상자회 회원은 “80년 당시 승려 신분으로 전두환 일당의 학살을 목도하고 부상을 당한 시민군들을 병원으로 후송하는 활동을 하다 본인도 척추 관통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이어 “통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산으로 바다로 정처 없이 떠돌다가 일주일 전쯤에 전화가 왔다”며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황망하다”고 애통해했다.

MBC
1989년 2월 국회 광주 특위 청문회에서 고 이광영씨가 증언하고 있다.

이씨는 1980년 5월 당시 군 복무를 마치고 조계종 한 사찰의 승려로 생활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광주를 방문했다가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해 시위와 환자 이송에 동참했다. 광주 구시청 사거리에서 백운동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계엄군이 쏜 총에 척추를 맞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1988년 국회 광주 특위 청문회와 1995년 검찰 조사, 2019년 5월 13일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혐의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다. 재판에서 헬기 사격으로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여학생을 구조해 적십자병원으로 이송했다고 증언했다.

 

뉴스1 김동수 기자 kd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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