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7월 26일 14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7월 26일 14시 53분 KST

[하하호] 워커밸 대신 ‘주객평등’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하하호 시리즈 6편

<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하하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하하호’는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소통 특급 번역기’입니다. 새로운 신조어나 외래어가 세대 간의 소통을 막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1910년 8월 29일부로 우리나라에 ‘왕’이 있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왕들이 너무나 많다. 정확히는 자신을 왕처럼 생각하는 고객들이다.

MBC
MBC 드라마 '시간' 캡처

고객을 지칭하는 나라별 표현을 살펴보면 미국은 ‘항상 옳다‘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신’으로 표현했고, 우리나라는 ‘왕’이라 불렀다. 명칭은 다르지만 각 나라에서 가장 중시하는 인물이나 가치관을 표현한 말이다. 전 세계 기업들이 고객 제일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왕’이라 표현할 만큼 고객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하는 사람이 계급상으로 고객보다 낮다는 의미가 암묵적으로 포함돼 있다. ‘언제나 낮은 자세에서’도 비슷한 말이다. 위와 아래가 구분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지 않다는 의미니까.

MBC 뉴스데스크
고객의 무리한 요구와 쿠팡이츠의 압박으로 50대 분식집 사장이 결국 숨졌다.

그 때문인지 과거에는 백화점 고객 횡포 사건이 1년에 몇 차례씩 뉴스거리가 되곤했다. 주 레퍼토리를 살펴보자면 ”너 내가 누군지 알아?”로 시작해 ”사장 나와”, ”본사에 연락해봐?”라는 협박성 발언으로 이어진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건 대부분 4가지로 압축된다. 교환, 환불, 대가성 선물, 특별 대우 등이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사한다. 다만 최근에는 휴대 전화의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고, 전자상거래의 활성화로 고객 횡포 사건의 무대가 비대면으로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
약 7,000원 가량의 연어초밥을 요청한 고객

최근 한 김밥 가게에 새우튀김의 색상을 이유로 주문 다음 날 전체 환불을 요구하며 4차례 전화를 하고 막말을 퍼부은 고객의 사례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연이어 무료로 연어 초밥을 부탁하며 평점 5개(만점)를 주겠다는 이도 있었다.

김밥 가게 사장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물론 고객만은 아니었다. 고객이 횡포를 부릴 수 있도록 내버려둔 배달 상거래 ‘쿠팡이츠‘측의 잘못도 분명해 보인다. ‘쿠팡이츠‘측에서 세 차례 전화를 해 점주를 압박했고 마지막 통화를 받다 주인이 쓰러진 다음까지도 ‘조심해 달라’고 재차 연락했던 비인간적인 대처 방식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

MBC 뉴스데스크, 뉴스1
6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새우튀김 갑질 방조 쿠팡이츠 불공정약관심사 청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쿠팡이츠 판매자용 약관의 불공정 조항 시정을 촉구하고 있다. 참여연대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점주는 쿠팡이츠의 불공정한 약관조항으로 불안정한 계약상 지위에 있다"고 밝히고, 불공정한 약관 조항들은 점주의 종속성을 더욱 심화 시키고 부추기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조항 시정을 촉구했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가 하는 점에 있다. 산업일보의 2019년 기사에 따르면 성신여자대학교 소비자 생활문화산업학과의 허경옥 교수는 ‘인터넷의 발달‘과 ‘현대인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꼽으며 ”과거에 비해 자신이 지불한 돈에 대한 가치와 인식이 달라진 것도 악성 소비자가 등장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보기도 했다. 한국감정노동인증원의 박종태 원장은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타인에 대해서도 존중해줘야 하는 정신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변화를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을 향상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법은 사회를 따라오기 때문에 근로자와 소비자 간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서로간의 적정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OBS
2015년 벌어진 인천 백화점 사건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에는 ‘워커밸’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워커밸은 직원과 소비자 간의 균형을 일컫는 용어로 근로자를 뜻하는 워커(Worker)와 소비자인 커스터머(Customer), 균형을 뜻하는 밸런스(Balance)의 합성어다. 다만, 워커밸의 좋은 의미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 위해서는 좀 더 쉬운 우리말로 바꿀 필요성이 제기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워커밸을 대신할 쉬운 우리말로 ‘주객평등’을 꼽았다.

소비자도 근로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며, 근로자와 소비자 사이의 감정적·태도적 균형을 일컫는 말로 국민 1천여 명을 상대로 진행한 문체부의 설문조사 결과 82.1%의 응답자가 워커밸을 ‘주객평등’으로 바꾸는 데 동의했다. 앞으로 ‘주객평등’이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 근로자가 간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가 확장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워커밸’→ ‘주객평등’

소비자도 근로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근로자와 소비자 사이의 감정적·태도적 균형을 일컫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