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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19일 10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19일 10시 54분 KST

어떤 공정성인가?

두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huffpost

대학입시에서도, 공무원이나 신입사원 채용에서도,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에서도, 심지어 남북 단일팀 논의에서도 문제는 ‘공정성’이었다. 구직자 응답자의 88.3%가 ‘구직활동을 하면서 채용 공정성을 의심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취업포털 커리어), 여론조사 응답자의 3분의 2가 ‘부모와 학교, 교사, 입학사정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불공정한 전형’이라는 데 동의했다(송기석 의원실)고 하니, 이제 공정성은 다수 국민이 체감하는 사회문제로 떠오른 듯하다.

공정성이 시대를 불문하고 추구해야 할 중요한 사회적 가치라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은 주로 기회균등, 특히 입시·채용에서 부당한 요소의 배제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각광을 받았던 ‘시험’과는 달리, 서류·면접 등 새로운 선발·평가 방식에는 권력이나 재력에 의한 부당한 요소들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근 몇년 동안 실제로 각종 채용·입시 비리가 연달아 터짐으로써 그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성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공정성과 계층이동의 상징이었던 학력고사나 고시 제도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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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먼저 공정성이 입시·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요소의 배제로만 이해될 수는 없다. 정의론의 대가 롤스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직위와 직책이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한”에서만 정당화된다고 말했다. “유사한 능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유사한 인생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공정성을 추구하려면 절차에서 부당한 요소의 배제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정한 기회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사회경제적 지위, 운, 신분 등으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를 해소해야 하며,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사후에라도 그 불평등을 ‘보정’해야 한다. 한국 현실에서는 사교육 등으로 인한 기회균등의 불평등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고, 각종 기회균등 선발제도 등 사후적 보정 장치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을 얘기하지 않고 논하는 ‘공정성’이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정성이 다른 가치에 우선하는 절대선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다. 만약 형식적 절차의 준수라는 의미로 축소된 공정성만 추구한다면, ‘객관식 시험’이 단연 최고다. 주관식 시험은 물론이고, 조별 과제 평가, 수업 참여도에 따른 가산점, 중고교에서 개별 학생들의 비교과 활동에 대한 평가, 채용 시 서류·면접 전형 등 그 어떤 것도 객관식 시험의 공정성을 능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객관식 시험 수준의 공정성이 확보될 때까지 이들 제도의 시행을 전면 유보해야 할까, 아니면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하여 시행해 나가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들을 병행해야 할까?

일련의 입시·채용 비리가 최소한의 공정성마저 훼손한 것에 대한 분노는 누가 뭐래도 정당하다. 그런 의미에서 공정성은 여전히 중요한 시대적 가치이다. 하지만 공정성의 의미를 형식적 기회균등으로 협소하게 축소시켜 놓고, 그걸 유일한 탈출구로 삼을 수는 없다. 공정성 이외의 다른 사회적 가치들에 눈감을 수도 없다. 공정성의 지향은 옳다. 하지만 ‘어떤 공정성인가’라는 질문도 동시에 제기되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