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11월 11일 11시 47분 KST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이 부정선거 논란 속에 사임했다

사상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의 13년19개월 장기집권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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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ivia's President Evo Morales, center, speaks during a press conference at the military base in El Alto, Bolivia, Sunday, Nov. 10, 2019. Hours later Morales announced his resignation under mounting pressure from the military and the public after his re-election victory triggered weeks of fraud allegations and deadly protests. (AP Photo/Juan Karita)

라파스, 볼리비아 (AP) - 군부와 시민들로부터 압박을 받아왔던 에보 모랄레스(60) 볼리비아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사임을 발표했다.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선거가 부정선거 논란을 일으키며 몇 주 동안 극심한 시위가 벌어진 뒤의 일이다.

이날 사임 결정은 모랄레스가 선거 재실시를 제안하는 등 하루 동안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된 가운데 전격적으로 나왔다. 볼리비아 군의 수장이 TV에 나와 그의 사임을 촉구하자 위기는 급격하게 격화됐다.

모랄레스는 ”나는 내 사임서를 볼리비아 의회에 제출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형제 자매들에 대한 공격을 멈추기를, 방화와 공격을 중단할 것을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모랄레스가 사임 발표를 끝내기도 전에 라파스와 그밖의 다른 도시들의 시민들은 자동차 경적을 울렸고, 거리로 쏟아져나와 볼리비아 국기를 흔들고 불꽃놀이를 벌이며 환호했다.

누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모랄레스의 부통령 역시 사임했으며, 다음 계승자인 상원 의장도 물러났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원주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당선된 대통령이었으며, 볼리비아 역사상 최장기간인 13년9개월 동안 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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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ivia's President Evo Morales looks down during a press conference in La Paz, Bolivia, Sunday, Nov. 10, 2019. Morales is calling for new presidential elections and an overhaul of the electoral system Sunday after a preliminary report by the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found irregularities in the Oct. 20 elections. (AP Photo/Juan Karita)

 

그러나 지난달 선거에서 4선에 성공했다는 그의 주장은 소요 사태를 촉발했으며, 그의 지지자와 반대파가 충돌하면서 3명이 숨졌고 100명 넘는 부상자가 나왔다.

모랄레스의 사임 발표가 나오기 몇 시간 전,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는 초기 조사 보고서를 통해 10월20일에 열렸던 대선에서 ”무더기로 부정한 행위들이 관측”됐으며, 새로운 대선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모랄레스는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군 수장인 윌리엄스 칼리만 장군은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충돌 상황을 면밀히 살펴본 뒤, 우리는 볼리비아를 위해 평화가 회복되고 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대통령의 사임을 요청한다.” 칼리만 장군이 말했다.

모랄레스 사임 발표 직전에는 각료들의 줄사퇴가 이어졌다. 광물 및 탄화수소를 담당하는 두 명의 장관, 하원 의장, 친정부 성향 의원 세 명이 줄줄이 사임을 발표한 것이다. 그 중 일부는 야당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가족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OAS의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최고선거관리위원회 수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법무부는 사기 혐의로 법원 판사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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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ponents of Bolivia's President Evo Morales celebrate after he announced his resignation, in La Paz, Bolivia, Sunday, Nov. 10, 2019. (AP Photo/Juan Karita)

 

2006년에 남아메리카 최빈국인 볼리비아의 대통령에 처음 당선됐던 모랄레스는 원자재 주도의 경제 붐을 이끌었다. 코카나무 재배농 단체 지도자 출신인 그는 도로를 포장했고, 볼리비아 최초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냈으며, 인플레이션을 억제했다.

그러나 한 때 그의 동화같은 성공에 환호했던 사람들은 권력 이양을 주저하는 그의 모습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통령 임기 제한을 유지하는 국민투표 결과를 따르기를 거부하며 4선에 도전했다. 그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던 건 볼리비아 헌법재판소가 그와 같은 임기 제한을 불허한 덕분이었다.

10월20일 대선 이후 모랄레스는 야당 대표이자 전 대통령인 카를로스 메사와의 결선투표를 겨우 면할 만큼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그쳤음을 보여주는 공식 개표 결과도 나오기 전에 스스로 완전한 승리를 거뒀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개표 결과 발표가 24시간이나 지연되면서 투표 조작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OAS는 선거를 들여다보기 위해 조사팀을 파견했고, 새로운 선거위원회로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무더기로 부정한 행위들이 관측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득표수의 온전성을 장담하고 개표 결과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OAS가 밝혔다.

소요 사태가 계속되는 동안 시위대는 지역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에 불을 질렀고,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세워 볼리비아 곳곳을 마비시켰다.

모랄레스 사임 발표 전날인 9일, 대통령궁 바깥에 배치됐던 경찰 경비 병력이 철수하면서 그에 대한 압박은 더욱 고조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