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항공사인 콜롬비아의 아비앙카 항공이 10일(현지시각)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여객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정부 자금 지원마저 무산된 탓이다.
아비앙카 항공의 모회사인 아비앙카 홀딩스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영향”을 이유로 이날 미국 뉴욕남부파산법원에 ‘챕터 11’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챕터 11은 파산법원의 감독 하에 구조조정과 비용 감축 등을 통해 회생을 진행하는 제도다. 한국의 법정관리와 유사하다.
당장 회사의 문을 닫거나 파산하는 것도, 영업을 중단하는 것도 아니지만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아비앙카 항공의 파산보호 신청은 전 세계 항공 업계가 처해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아비앙카 항공은 라이트 형제가 인류 역사상 첫 동력 비행을 성공시킨 지 불과 16년 뒤인 1919년에 설립됐으며, 역사가 더 오래된 항공사는 네덜란드의 KLM 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항공 업계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각국의 여행 제한 조치로 여객 수요가 급격히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영향에 대처하고 있는 아비앙카는 우리의 100년 역사상 가장 어려운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앙코 판데르베르프 CEO가 밝혔다. ”우리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수순으로서 이 절차에 돌입하게 됐다.”
그는 자사 항공편에 대한 여객 수요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는 1년에서 1년 반이 더 넘게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칠레의 라탐(LATAM) 항공에 이어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아비앙카 항공은 코로나19의 여파로 글로벌 여객 수송량이 90% 감소해 총 3140억달러(약 383조원)에 달하는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자료를 소개했다.
아비앙카 항공은 3월 말부터 정기 여객편을 운항하지 못하고 있으며 2만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은 무급휴직에 들어간 상태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에 따라 매출은 80%나 감소했다. 아비앙카는 지난해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의 27개국 76개 노선에 취항해 3000만명 넘는 승객을 수송하면서 46억달러(약 5조6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비앙카 항공은 그동안 콜롬비아 정부에 구제금융이 아닌 긴급 대출의 형태로 지원을 요청해왔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10일에 만기가 돌아온 6500만달러(792억원) 규모의 채무 상환금을 막지 못했다.
아비앙카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12월에도 채무 재조정 등을 통한 자금난 개선을 모색할 만큼 취약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기준 부채는 73억달러(약 8조9200억원)에 달했다.
비교적 견실한 전 세계 주요 항공사들의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세계 최대 항공사로 꼽히는 미국 델타 항공은 하루에만 3억5000만~4억달러(약 4870억원)를 임금과 항공기 임차료 및 정비비 등으로 지출하고 있는 반면 국내선 탑승객은 평균 23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47년 연속으로 흑자를 기록해왔던 중장거리 국내 노선 전문 사우스웨스트 항공도 6월까지는 하루 평균 3000만~3500만달러(약 427억원)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항공사들은 직원들에 대한 무급 휴직이나 정리해고를 실시하고 있고, 광고비 등의 지출을 줄이고 있다. 또 ‘놀고 있는’ 여객기를 화물기로 임시 편성해 의료 장비 수송에 투입하는 등 매출을 짜낼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국의 여행 제한 조치가 완화되더라도 여객 수요가 곧바로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감염 우려로 한동안은 여행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