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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운영자 김주원씨가 말하는 군의 대응 방식은 여전히 구시대적이다

제보자를 색출하거나, 고발 내용 자체를 의심하기에 바빴다.

코로나19 격리 장병이 받은 급식 사진.
코로나19 격리 장병이 받은 급식 사진. ⓒ한겨레/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제공

반찬으로 가득 차야 할 급식판 곳곳이 텅 비었다. 급식판 위엔 깍두기 2개와 나물 반찬이 전부였고, 또 다른 급식판엔 김치와 소량의 호박 볶음이 담겨있었다. 특정 부대만의 일이 아니었다. 육군과 공군, 특전사 예하부대 등에서 코로나19 격리장병들이 비슷한 식판을 받았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나왔다.

병사들은 인증샷을 찍어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페이스북 계정에 제보했다. 육대전 운영자는 4월 중순 제보 글을 올렸고, 곧 ‘부실급식’ 논란이 일었다. 결국 국방부 장관은 사과했고, 격리장병에게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겠다는 대책을 지난 7일 내놨다.

9일 ‘육대전’ 운영자 김주원(27)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방부가 빠르게 대책 마련에 나서 긍정적이라 본다”면서도 “단순히 (병사들이) 선호하는 품목을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예산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병사 1인당 급식비를 내년엔 1만500원(현재 8790원)으로 올리겠다는 국방부의 발표가 현실이 됐으면 한다는 ‘소박한 바람’을 비쳤다.

김씨가 운영하는 육대전 계정 팔로워 수는 이날 기준 15만1천여명(9일 오후 3시 기준)이다. 병사들의 애로사항이 담긴 제보가 하루 평균 5건 들어온다. 열악한 격리시설, 부사관의 병사 폭행, 코로나 후유증 치료 미흡, 훈련소 샤워 제한 등 대다수의 제보가 언론 보도로 소개됐고 군 간부들을 떨게 했다. 육대전의 공론화는 관련 부대장들의 사과와 대책 마련 발표로 연결됐다.

'육대전' 팔로워는 15만명을 넘었다.
'육대전' 팔로워는 15만명을 넘었다.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육대전이 처음부터 병사들의 ‘소원수리’를 위한 계정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다. 2016년 7월 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김씨는 군대 관련 정보 등을 공유하자는 생각에 이 계정을 만들었다. 처음엔 제보도 많지 않았고, 글을 올려도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김씨는 “지난해 2월에도 부실 식단 관련 제보를 올렸지만 지금처럼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쉽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군에 답답함을 느끼는 병사들은 언제나 외부 소통 창구를 찾는다. 지난해 7월부터 병사들이 일과 뒤 휴대폰 사용이 가능해지고 코로나19로 병영 생활에 여러 제한이 늘어나며 육대전은 현역 병사들의 강력한 ‘디지털 소원수리함’으로 떠올랐다. 육대전 계정을 팔로워하는 병사들의 수가 점차 늘었다. 김씨는 “제보 내용을 보면 군 내부 보고체계에 맞게 지휘관에게 말하거나 소원수리를 넣어도 해결이 안 돼 외부로 알리는 경우가 많다”며 “국방 헬프콜(1303)이나 국민신문고 등에 알려도 처리되지 않거나 익명이 유지될까 걱정하는 병사들이 육대전을 찾는다”고 말했다.

제보가 급격히 늘자 김씨는 게시글을 올리는 선정 기준도 마련했다. 모든 제보를 올릴 수 없어 근거가 충분하거나 사안이 심각하고 공론화가 시급한 제보를 우선 올린다. 김씨는 “지난 제 군 생활과 비교해보기도 하고 사회에서 용인할 수 있는 부분인가를 판단해 제보를 올린다. 법을 잘 알지 못해 제보 전달자로서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병사들과 육대전의 ‘협업’에 초기 군의 대응방식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었다. 육대전이 부실급식을 처음 공론화한 지난해 2월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관이 찾아와 김씨에게 “(문제)부대를 알아야 개선할 수 있다”며 제보자의 정보를 묻거나, 부실급식 논란이 커진 올해 5월초에는 군 관계자가 연락해 “사실 확인을 하고 올리는 것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육대전의 꾸준한 문제제기에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7일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격리장병 부실 급식에 사과했다.

군 간부들을 노심초사하게 한 장본인이지만 그는 여론의 주목에 조심스러워하며 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군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있으면 그걸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해요. 국방콜센터나 국민신문고 등에 들어간 소원 수리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할 것 같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6월 서울시에 인터넷신문 사업 등록을 마쳤다. 육대전 운영을 사익 추구가 아닌, 공익 차원의 활동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아울러 지난 4일에는 민간 비영리 임의단체 등록을 완료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병사들을 돕고, 이를 공익활동으로 발전시키려는 생각이다. 김씨는 “앞으로 외부에서 병사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계속 고민해 공익활동을 늘려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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