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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노무현 사찰’ 경찰보고 받았다

사찰한 게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도 있었다.

  • 백승호
  • 입력 2018.03.22 09:53
  • 수정 2018.03.22 09:54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 초기 경찰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찰 문건을 받아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대통령은 또 재임 기간 내내 국가인권위원회를 포함해 정치·종교·문화예술계에서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인사들의 사찰 정보도 받아봤다. 경찰이 전국 3300여명의 정보경찰을 활용해 ‘정권 친위대’처럼 움직인 것이다.

21일 한겨레 취재 결과, 검찰은 지난 1월25일 이 전 대통령 소유였던 서울 서초구 영포빌딩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3395건의 대통령기록물을 확보했고, 이 중엔 정권 초기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경찰의 사찰 정보가 담긴 60여건의 문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2008년 11월 노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2.0 사이트를 개설한 이유가 정치·사회적 이슈화를 시도하려는 것이라는 내용,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소유 골프장에서 라운딩했다는 등의 자세한 동정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문건이 작성됐던 당시는 ‘이명박 청와대’가 노 전 대통령 쪽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등 강하게 압박하고 있을 때였다.

경찰은 또 같은 해 말 국가인권위가 경찰에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경찰이 과도하게 무력을 행사했다’고 경고하자, 인권위를 ‘좌편향’으로 몰아세우며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물론 경찰의 불법사찰 보고서가 국가정보원 보고서처럼 분석적이거나 기획성 전략이 담기진 않았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 흩어진 정보경찰(지난해 기준 3357명)을 동원해 현장감이 가미된 구체적 내용을 담았다. 무엇보다 ‘치안정보 수집’ 범위를 넘어선 불법사찰의 성격이 강한 탓에 보고서 작성행위 자체의 불법 소지도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보고서에 법적·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민감한 자료가 다수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명박 청와대’의 불법사찰 전모에 대한 수사 필요성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결혼식 참석 등 일정 ‘깨알보고’

이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2008년 말 경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정치사이트 관련 현황’을 보고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퇴임 뒤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간 노 전 대통령이 개설한 토론 웹사이트인 ‘민주주의 2.0’에 하루 평균 82건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는 현황과 노 전 대통령이 이를 통해 정치·사회적 이슈화를 시도한다는 분석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방문객과의 만남 횟수를 1일 3회에서 1회로 줄이는 대신 만남 시간을 늘린 점과, 이 자리에서 방문객들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까지 자세히 적어놓았다고 한다. 과거 검찰의 국정원 수사 결과와 꿰맞춰 보면, 경찰이 현장보고서를 올리고 국정원이 ‘민주주의 2.0’에 반박 글 800여건을 올리는 등 심리전을 펼치는 공조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뉴스1

 

 

사찰한 게 아니면 알 수 없는 노 전 대통령의 개인 일정도 깨알같이 파악했다고 한다. 가령 노 전 대통령이 그해 11월23일 낮 12시30분 사돈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한 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있는 충북 충주시로 내려가 하루 동안 머물렀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그곳에서 노 전 대통령이 강 회장과 라운딩을 한 뒤 휴식을 취했다며 세밀한 상황을 담았다.

11월25~26일에는 논산 젓갈시장 등을 방문하고 이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을 만나 정치적 결집을 시도했다는 내용 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검찰 수사대상에 오른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11월24일 바다낚시를 간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는 지역 소식도 보고서에 들어있다고 한다. 이런 불법사찰 내용은 보고서에 담겨 오롯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 전 대통령이 사찰정보를 거부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조국·안경환 등 인권위원 면면도 분석

경찰은 또 2008년 말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념적으로 좌편향성이 있다며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가 2008년 10월 ‘경찰이 촛불집회 진압과정에서 과도한 무력을 사용해 인권을 침해했다’고 결론 내리고, 당시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어청수 경찰청장에 대한 ‘경고’를 권고한 것을 두고 “좌편향성 인사가 광우병 대책위원회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경찰은 상임·비상임 위원들의 성향을 보수·중도·진보로 나눠 면면을 분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경환 위원장은 ‘중도’로 평가하며 김칠준 사무총장에게 일을 맡기고 국제기구 협력에 주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상임위원인 조국 교수는 ‘송두율 교수 무죄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 교수선언에 참여하고 촛불시위 조사에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강한 진보성향으로 분류했다. 각종 세미나나 토론회에 시민단체 쪽 대표로 자주 참여한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김 사무총장은 불법집회 사건을 무료변론하고, 촛불시위에 개인적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등 문제적 인물이라고 지목했다. 경찰은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처에도 진보·좌파가 다수 포진해 있고, 별정계약직(52명)도 진보적 활동을 한 이력이 있다”며 “인권위원 후임 인선 때 이념적 편향이 있는 사람은 걸러내고, 반정부 성향 직원들은 감축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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