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인터뷰] 작곡가 진은숙이 서울시향을 떠난 이유를 직접 해명하다 -1

2018-01-24     백승호

진은숙은 2004년 그라베마이어상, 2005년 아놀드 쇤베르크상, 2010년에는 피에르 대공재단 음악상 등 최고 권위의 상을 잇달아 수상했으며 최근에는 아시아 최초로 '비후리 시벨리우스 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가 작곡한 곡은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를 통해 공연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상임 작곡가로 활동하는 등 '특혜논란'에 선 인물이다.

지난 2016년 정명훈에 이어 진은숙 작곡가까지 차례로 서울시향을 떠났다. 둘 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음악인이지만 그 끝은 좋지 못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말은 대체로 비슷하다. 고액연봉 논란, 자리 채우기 논란, 명성을 이용한 특혜 논란, 부도덕한 처신 등. (정명훈과 관련된 내용은 여기에서 자세히 알아볼수 있다)

아래는 “왜 그는 서울시향을 떠났는가?”, “서울시향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홍형진 소설가가 묻고 진은숙 작곡가가 답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사회 여러 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조리’들의 내막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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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홍형진 |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나는 당신의 사임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3일에 베를린 필이 당신의 신작을 연주했는데, 그날 실황이 담긴 디지털콘서트홀 영상에는 당신의 인터뷰도 있다. 거기서 당신은 인터뷰의 상당 부분을 서울시향의 성과와 미래를 홍보하는 데 할애했다. 적어도 몇 년은 더 함께할 분위기였다. 그래서 올 초의 사임 소식이 꽤 의외로 다가왔고, 어쩌면 급작스러운 계기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든다. 사임을 결정한 배경이 있나?

바깥에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작년 9월경에 시향을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래서 11월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아무도 모르게 신변을 정리했다. 언급한 베를린 필과의 비디오 인터뷰를 찍을 때도 이미 나는 연말에 시향을 떠나게 될 것을 알고 시향을 대외에 선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웃음)

언론에 밝힌 바와 같이 11월 서울 방문 때 사임을 발표하고 지인들에게 최소한의 인사라도 할까 고민했지만, 상임 작곡가로서의 계약이 남아있는 12월 31일까지는 시향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고 싶지 않았다. 또 성급한 사임 발표가 연말에 있을 시향의 2018년 예산 심의에 혹 영향을 끼칠까 하는 우려도 있어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내가 시향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극도로 복합적이라 언론을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수년간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떠난다는 결정은 스스로 했다. 공연기획자문과 상임 작곡가로서의 계약이 각각 9월 말과 12월 말로 종료됐다. 계약 연장을 비롯해 앞으로의 거취를 논의하고 결정할 권한이 있는 대표이사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사임을 결정한 것 같다.

홍형진 |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12년간 몸담은 곳을 떠나는 것이니만큼 생각이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시향을 떠난 지금의 심경은 어떠한가?

내 아들 리윤은 네다섯 살 때부터 내가 시향 일로 한국에 올 때마다 항상 동행했다. 그에게 시향은 엄마가 속해 있는 '변할 수 없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그동안 내가 시향을 떠날 것 같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엄마는 시향에 속한 사람 아니냐?"며 떠나는 것을 만류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며 마음을 접는 문자를 보내왔다.

(이날 베를린 필이 진은숙의 신작 ‘코로스 코르돈’을 연주했다. – 홍형진) 당시 내가 처한 현실과 베를린 필 연주라는 거창한 자리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스터 클래스를 비롯한 시향에서의 모든 일정과 베를린 필 연주까지 계획했던 대로 다 마치고 왔다. 그렇게 하기를 잘한 것 같다.

2005년 법인화 이후 10년간 많은 분이 자의 또는 타의로 시향을 떠나갔다. 그중 대다수가 시향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 심지어는 한에 맺혀 복수심을 불태우며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수년간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이 그렇게 시향을 떠나는 나의 모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겪은 어려움이 거꾸로 나로 하여금 이 어려운 상황을 잘 견뎌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했다.

홍형진 | 당신이 떠남으로써 서울시향은 예술감독, 대표이사에 이어 상임 작곡가까지 공석이 됐다. 자연히 리더십 부재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향 내부의 실제 분위기가 어떤지,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나름의 청사진은 갖고 있는 상황인지를 알고 싶다.

아무도 없는 현재 상황이 진정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그래서 그분이 임명되기 전에 시향을 떠난 것이다. 시향의 모든 향후 계획이나 미래의 청사진도 새로운 대표이사와 차기 상임 지휘자가 만드는 것이다. 나는 시향을 떠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이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홍형진 | 마이클 파인이 사임하며 공백이 생기자 그를 메우기 위해 1년 남짓 공연기획자문역도 겸직했다. 정기공연 전반의 기획을 관장하며 해외의 지휘자, 협연자와 긴밀하게 교류하는 중요한 포지션이다. 이 부분에서도 다시 공백이 생길 것으로 보이는데 대안이 마련된 상황인가? 이제 서울시향에는 국제적 명망과 네트워크를 가진 인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오래전부터 좀 더 폭넓은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동안 ‘아르스 노바’를 기획해오며 현대음악 분야가 좀 좁다고 느꼈을 뿐 아니라 나 자신도 클래식으로 음악에 입문했고 현재도 클래식을 더 많이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너무 힘들었음에도 최선을 다했다.

공연기획을 맡았을 때 어떻게 하면 시향이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된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질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의 비전이 있었고 다 같이 힘을 합하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어차피 나의 역할은 다음 상임 지휘자가 올 때까지 과도기를 채우는 것이었기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양질의 프로그램과 좋은 프로젝트로 몇 시즌 잘 해나가면 국제 음악계에 우리의 존재를 크게 부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공연기획에서 손을 놓아야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상임 작곡가로서 기획한 아르스 노바가 위축되는 것보다 오히려 공연기획자문역을 사임하는 것이 더욱 우려됐다. 전체 시즌 플랜을 꾸리는 것이 훨씬 광범위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홍형진 | 현재 해외에서 서울시향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저명한 예술감독과 상임 작곡가의 연이은 사임 같은 이슈가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오케스트라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나? 시향은 지휘자와 협연자를 섭외하는 것부터 해외 투어, 음반 발매 등에 이르기까지 해외 음악계와 긴밀하게 교류해야 한다. 자연히 평판과 이미지가 중요할 텐데 근래의 이슈가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된다.

지난 수년간의 논란과 정치적 공격, 그리고 그 결과물인 정명훈 전 감독의 사임은 국제 음악계에서 시향과 한국 음악계의 이미지를 크게 떨어뜨렸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시향에 남기로 결정했고 그동안 국제 음악계에서 시향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왔다. 국제 음악계가 나라는 작곡가에게 선사하는 믿음이 시향의 대외 이미지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다. 시벨리우스상을 받을 때도 베를린 필과 연주할 때도 나는 서울시향의 상임 작곡가로서 무대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형진 | 상임 작곡가로서 기획한 핵심 콘텐츠가 '아르스 노바' 다. 상설 현대음악 프로그램으로 교육, 훈련 등의 성격을 띠고 있다. 상임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을 내세우지 않는 콘텐츠라는 게 특징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기보다는) 청중에게 현대음악을 소개하고 악단을 조련했으며, 국내의 다른 작곡가에게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주고 유망한 전공자를 직접 지도했다. 이런 방향을 택한 이유나 취지를 알고 싶다.

10주년 기념 책자에 다 실려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다른 오케스트라의 상임 작곡가 임기는 3년이다’는 주장이 있는데 실제로 런던 필 등이 그렇게 운영한다. 3년 동안 상임 작곡가의 작품 여러 개를 정기 연주회에서 연주하고 매해 신작을 위촉해 초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상임 작곡가 제도는 시향에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진은숙 | 아르스 노바의 성과도 10주년 기념 책자에 상세히 실렸다. 그 성과란 앞서 이야기했듯 일반 청중에게 폭넓게 현대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젊은 작곡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들어보고 또 발표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그들이 아르스 노바를 통해 국제무대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작곡가가 이런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 서울시향 예산이나 제반 상황에 한계가 있고 외국에서의 기회 역시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어뒀다. 아르스 노바 연주회를 참관하고 마스터 클래스에 신청만 하면 됐다.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젊은 작곡가들이 받은 도움은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 작곡가에게 열려 있었다. 하지만 음악회에 오지 않고 마스터 클래스에도 신청하지 않는 사람을 내가 쫓아다니지는 않는다. 나는 그들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최소한 복권을 직접 사기는 해야 한다. (웃음)

(최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위촉 작곡가로 선정된 신동훈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나와 동료들이 진은숙이란 존재와 아르스 노바를 통해 누린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녀가 떠난 지금 난 한국의 후배 작곡가들을 생각한다. 진은숙의 부재는 무엇보다 작곡가를 꿈꾸는 어린 그들에게 재앙이고 저주다”라고 말했다. - 홍형진)

시향은 2005년부터 정명훈 전 감독의 지휘 아래 급성장해 국제무대에서 그 존재감을 키워왔다. 기존 레퍼토리로 쌓아 올린 눈부신 성과에 아르스 노바의 성과가 더해지면서 참신하고 진취적이며 미래의 비전을 가진 단체로 대외에 새겨졌다. 나는 이 점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의 업적이 아니라 서울시향의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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