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의 반은 여자로, 나머지 반은 남자로 살아온 청년이 있다

2016-11-10     박수진

이제 남자로만 살면 될 것 같았지만, 막상 무대를 떠난 그는 평소에도 여자 옷인 사리를 입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긴 치마를 입고 다니는 그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수군대고, 이상한 소문이 퍼지면서 남동생의 혼삿길도 막힌다. 남자는 치마를 벗는 대신 고향을 떠나 다른 배우와 2인조 극단을 만들어 다시 여자 연기를 시작하지만, 새로 정착한 마을에서도 '늙은 남자와 치마 입은 남자가 같이 산다'며 목숨의 위협까지 받는다.

2016년의 인도가 배경인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남자들만 출연하는 인도의 전통 춤 공연 '약샤가나(yakṣagāna)' 배우다. 우희 역만을 평생 연기하는 '패왕별희'의 데이처럼, 주인공 '하리'도 예쁜 외모와 연기로 인기가 높다. 결혼 압박을 받는 나이가 된 '하리'는 일상과 연기 사이의 괴리를 전보다 크게 느끼게 된다.

"나는 여자를 연기하는 남자일까, 남자를 연기하는 여자일까?"

'배우라면 누구나와 잔다'는 여자와 성관계를 가지면 좀 나아질까 싶어 찾아가 보지만, “진짜 여자처럼 예쁘다”는 그 여자의 말에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 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온다. 보통 남자와 보통 여자, 어느 모습으로도 편안하지 않았던 '하리'의 이야기를 자신의 감독 데뷔작 소재로 택한 아난야 까사라발리는 “인도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댄서 이야기(Chronicles of Hari)'를 처음 공개한 까사라발리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 주인공이 몸 담는 '약샤가나'는 어떤 공연인가?

약샤가나는 지금도 많이 공연한다. 최근에는 여자 배우들만으로 구성된 약샤가나 극단도 등장했다. 특이하게도 남녀 혼성 극단은 없다.

- 5살에 시작해 언제까지 같은 역할을 연기하나?

- 실화 속 주인공의 실제 이야기를 해 달라.

- 연기는 남자들만 할 수 있지만,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는 공연이다. 이중 다수를 차지하는 성인 여성 관객들이 여자 연기를 하는 주인공을 보며 공감하는 장면이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적인 데가 있다.

그들은 남자 연예인으로서도 인기가 많을 뿐 아니라, 여성 관객들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목소리'가 된다.

-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남자들만 무대에 서는 게 허용되는 전통극들이 있다.

= 알고 있다. 남자 배우만 출연하는 것도 그렇고, 무대, 의상 등 스타일도 비슷하다.

- 주인공은 무대 위에서는 조금이라도 남성적인 모습을 보이면 크게 혼이 나는데, 반대로 일상에서는 여성스러운 모습이 드러나면 바로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고 배척 당한다.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남녀 성 역할을 엄격하게 강조하면서, 무대 위에서의 '여장 남자'는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즐기는 이유가 뭔가?

- 인도 사회에서 남자에게 기대되는 남성성이란 뭔가?

이런 역할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이 기존 사회에 안정성을 준다. 그 안정성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모든 억압이 시작된다.

- 30세의 젊은 여성으로서, 직접 겪었던 성 차별은 어떤 게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길은 멀다. 내 또래, 내 친구들 역시 그런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순응하기를 요구 받는다.

내가 이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여자니까 아동용 영화를 만들어봐라”라거나 “힘든 거 하지 말고 더 가벼운 소재를 골라라”, 혹은 “'네 영역'에 있는 걸 해라” 라고 말했다. 굉장히 불쾌한 말들이었다. 나는 여자가 맞다. 하지만 나는 아동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난 이 영화가 하고 싶다고!

영화감독 아난야 까사라발리(Ananya KASARAVALLI)

- 인도의 LGBTQ는 상황이 어떤가?

- 가족에게 평생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거나,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집에서 쫓겨나는 경우에 대해 종종 듣는다.

(인식이 바뀌지 않아도) 제도가 먼저 그들을 인정하면 사람들이 더 쉽게 받아들인다.

- 트랜스젠더나 영화 속 주인공 같은 크로스드레서들의 경우는? 안심하고 거리를 다닐 수 있나?

물론 이런 변화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시골의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시골에서는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남성들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날이 하루 있다. 사원에서 하는 대형 축제 날, 마을 남자들은 사리를 입거나 혹은 나아가 여장을 하는 게 허용된다. 1년에 하루 열리는 작은 창 같은 것이다.

-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이 '형법 377조'를 가지고 동거하는 두 남자를 협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377조'의 내용은 뭔가?

*형법 조항 377

india gay

관련 기사: 2014년 12월 18일, '동성애 불법'의 사회에서 싸우는 인도 동성애자들의 삶

- 인도 내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 소식이 종종 들린다. 혐오범죄라고 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 그런 혐오범죄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들은 지금 어떤 도움을 받고 있나?

영화는 '하리'의 실종으로 끝난다. 죽었는지, 살았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어떤 결말도 제시되지 않는다. '하리'가 원한 것은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자든, 여자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어떤 옷을 입든 아무도 그걸로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관념이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싣습니다. 특히 아시아에서 사회가 강요하는 성 고정관념이 어떻게 개인을 압박하고, 장벽이 되는지 그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