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구조전환, 어떻게 할 것인가 | 장수명 교수 인터뷰

기본적으로 고등학교의 직업계열교육과 전문대학 개혁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건 명확한 것 같다. 전문대학은 고용기금을 가지고 운영되는 폴리텍 모형이 있으니 잘 들여다보고, 제조업 위주로만 협소하게 구성된 부분은 보완해야 한다. 두 번째는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을 실질적으로 현격하게 낮추고,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소수 계층 우대 정책)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저소득층 자녀일지라도 학업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좋은 지방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자. 지방대학도 살리고 교육 불평등도 해소할 수 있다.

2015-11-18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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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의 깃발을 올렸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때로는 병증을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교육이 우리사회의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도려내고 다른 무엇으로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교육은 사회의 반영인 동시에, 사회의 모습을 통해 그 공동체의 교육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다는 뜻이리라. 지금 한국교육의 위기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진 것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옳다. 그렇다면 위기의 한국사회를 구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 역시 '교육'을 통한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①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

② 하연섭 연세대 교수

③ 정성식 교사

④ 이기정 교사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던 무렵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교육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공교육 예산의 대부분을 지역 재산세로 충당하는 미국은 부자동네와 빈민지역의 교육격차가 심각했지만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어떤 적극적 대처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장 교수의 눈에는 강대국 미국이 아니라 가난한 가정 아이는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활력을 잃어가는 미국사회가 보였다. 이후, 발전된 국가 중에서 다른 교육모형을 가진 곳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노동연구원 프로젝트로 교육개혁의 핀란드 모형을 연구했고, 2013년에는 헬싱키 행동과학대학에서 1년 동안 연구교수로 머물며 핀란드 교육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이번 인터뷰에서 장수명 교수는 핀란드 사례를 곁들여 가며 인적자원과 교육정책에 대한 평소의 소신을 담담히 풀어냈다.

-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정원 축소를 위해 대학구조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방향이 맞다고 보나?

첫째, 학령인구 감소와 관계없이 대학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교수-학생 비율 제고나 일정 규모의 교수 연구 집단 확보가 중요하다. 물리학의 임계질량 같은 것이다.

셋째,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다. 각 지역이 경제나 사회적 발전을 동시에 이뤄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혁신역량이다. 그 핵심이 고등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 대학구조전환은 필요한데,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학령인구 감소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학구조전환의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 정부는 대학-노동시장 미스매치를 해소한다며 이공계열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과거에 비해 산업구조 변화의 주기가 짧아진 것 같다. 대학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인력을 공급한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고 바람직한 것인가?

연구와 교육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독일식 훔볼트 전통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등교육이 직업적 연계를 가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로스쿨이나 의과대학처럼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대학이 있지만, 지식을 축적하고 혁신적 이론을 재생산해내는 대학 고유의 역할 또한 있는 것이다. 어디다 방점을 찍을 것인가는 개별 대학의 특성, 건학이념, 사회로부터 요청 받는 임무 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흥미롭게도 영국이나 미국은 대학의 상아탑 역할을 강조하고, 그에 비해 북유럽 국가들은 산업과의 연계를 더 강조하는 실용적 경향이 있다.

- 학제에 따른 역할 분리는 어떤가? 예를 들면 직업교육은 전문대와 폴리텍 대학 등이 담당하고, 4년제 대학 이상은 연구 목적을 가진 학생이 진학하도록 한다든지.

그런데 우리는 모든 대학이 경쟁한다. 전문대학도 대학교라는 이름을 쓰고, 이름만 봐서는 어떤 과정인지 알 수가 없다. 4년제 대학도 미용학과 같은 직업교육 학과를 만든다. 정부가 이 부분은 조정해야 한다.

- 대·중소기업 업종 분리를 하듯이?

그런데 우리는 사립이 70% 이상이라 정부가 개입하기 굉장히 어렵다.

- 우리는 사립대학에도 많은 공공기금이 들어가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조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는 것인가?

그래서 제가 사립대학의 자발적인 준국공립화를 주장해왔다. 공익자금을 대거 받아들이고, 정부가 투자를 하고, 그럼으로써 대학을 준공립화 시키는 것이다. 특히 전문대를 보면, 미국도 커뮤니티칼리지는 공립이다. 최근에는 오바마가 학비를 없애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전문대학일수록 사립이 더 많다. 우리 고등교육은 저소득층에 더 불리한 구조인 셈이다.

- 지금의 노동시장 미스매치 현상은 산업수요와의 미스매치라기보다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누구든 교육 투자 대비 터무니없이 낮은 급여를 받는 곳에는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 일부에서는 고학력화로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학력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 대학을 그만 가야 한다고 얘기하기 보다는 일자리를 잡으면서 교육을 하고, 교육을 하면서 일자리를 잡는 형식의 평생교육 개념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핀란드 같은 경우 대부분 학교를 다니면서 일자리를 갖고 있다.

- 우리는 대학 진학 시 전공보다 대학 간판을 먼저 따진다. 그렇다 보니 전공과 취업이 따로 논다. 졸업 전부터 무슨 일을 할지 다시 고민해야 하고, 취업 준비 기간도 길다. 정부나 산업계도 어느 분야 인력이 얼마나 공급될지 예상할 수 없다. 말씀하신 것처럼 일·학습 병행제가 자리 잡으면 이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까?

- 학력과 대학서열에 따른 급여 수준의 차이에 대한 연구도 하셨다. 학력이 높아야 급여를 잘 받는다는 것이 확연하게 보이더라. 이런 구조 속에서 고등학교 졸업만 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과거에는 "나는 기름밥 먹지만 내 자식은 펜대 굴리며 살아야지"하는 부모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시시한 대학 나와서 취직도 잘 안 되는데 기술 배워라"하는 부모도 많아진 느낌이다.

- 정부는 직업훈련을 위해 산학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기업은 오히려 학교에 건물을 지어 달라고 하면 마음이 편한데, 산학협력 하자고 하면 부담이 된다는 얘기를 한다. 한 쪽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산학협력이 잘 될까?

미국은 R&D 중심인 데 반해 유럽은 R&D뿐 아니라 직업훈련 쪽으로도 광범위하게 산학협력이 이뤄진다.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라고 하는, 노동조합과 기업연합체가 함께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내가 키운 좋은 인력을 남이 데려가 버린다 생각하면, 누가 훈련을 시키려고 하겠나. 그래서 이것을 일종의 공동 자원으로 보고, 함께 훈련시켜 채용하는 것이다.

- 취업준비생들로부터 "요즘 기업은 신입을 안 뽑고 경력직만 원한다"는 하소연을 듣는다. 그 경력은 어디서 쌓나. 결국은 중소기업이다.

- 갈 길이 멀다.

- 최근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결과 발표 이후, 평가방식에 대한 불만이나 신뢰성 문제 등이 불거졌다.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

둘째, 지금처럼 교육부가 어느 날 교수들을 모아서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의 고등교육평가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핀란드는 대학을 평가하는 위원회를 구성할 때 다른 나라 교수들도 많이 넣는다. 현장을 방문해보고 여러 가지 항목을 검토하고 권고하는 질적 평가를 한다. 평가를 인센티브와 연결시키지도 않는다. 물론, 취업률을 평가에 포함시키는 나라가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동종 취업률을 따져야 한다. 대학이나 학과의 목적, 전공에 부합하는 교육을 했느냐를 평가해야 한다.

- 대학 평가기관이 따로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유럽이나 어느 나라나 자체평가를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외부에서 이러 이런 기준을 주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프로세스는 곤란하다.

- 국민 세금이 대학에 투입되는 만큼 분명히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그러나 총장직선제 폐지 등 정권의 입맛에 맞는 조건을 평가항목에 넣어 통제 도구로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교육개발원 같은 기존 기관에서 이 역할을 할 수는 없나?

- 교원대와 사범대가 별도로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핀란드에서 교직은 석사과정으로 학습기간이 길고, 대체로 복수전공을 한다. 중등교육과정을 다양하게 제공하려면 한 과목만 가지고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 교원양성을 별도 대학이나 단과대로 분리해놓았기 때문에 다른 학문과의 교류가 이뤄지기 어렵고, 교육학의 틀 속에서만 교육을 접근하는 시각을 갖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도 핀란드에 이어 세계적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보이고 있다. 우수한 교사자원의 덕도 있다. 한국의 혁신학교가 가능했던 이유도 우수하고 헌신적인 교원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학부 수준의 교육만으로는 이런 교원을 길러내기 어렵다. 그래서 교원양성전문대학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대학원까지 따로 만들지 않더라고 5년이면 5년 쭉 배우고 훈련하게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 그 정도면 교수 수준 같다.

-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 문화가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경쟁을 불러오고 있다. 그래서 '국·공립대 공동선발제' 같은 입시 단계에서의 평준화 방안을 제시하는 분도 있다. '대학평준화' 바람직한가? 실현 가능할까?

대학 서열상으로 따지면 지방대의 수준이 굉장히 낮다. 여기서 연구와 산학협력을 해서는 최고의 혁신기업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각 지역에 양질의 대학이 있어야 한다. 학생 선발에서도 연구중심대학은 달라야 한다. 정원에 맞춰 모두 뽑는 게 아니라 일정 등급 이상의 지원 기준을 두고 부합하는 사람만 뽑으면 된다. 그러면 수준은 몇 년 안에 좋아진다.

- 정원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절대적인 입학 기준을 두고 덜 뽑을 수도 있다? 대학들이 대부분 등록금으로 재원을 충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재원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겠다.

- 과거에는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지역 이름만 대면 떠오르는 지방명문대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경쟁력을 잃고 지방거점국립대학이라는 명칭만 남았다. 지역에서 어떤 거점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다.

거점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역의 연구역량이 결집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예를 들어 대구에 있는 노동경제학자를 다 합쳐봐야 여섯 명도 안 될 텐데, 이들이 각자 연구도 하고 석·박사를 길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거점대학 안에서 하나의 학문적 공동체를 구성해 연구도 하고 박사과정도 함께 기를 수 있도록 만들자. 그러면 그 분야만큼은 여느 수도권 명문대 못지않은 수준을 갖출 수 있다.

- 지방대의 역할에 대해 강조해오셨다. 교육정책 담론이 수도권 지식인과 중앙 언론을 위주로 형성되는 만큼, 지방대학의 의미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적다. 그래서 지방대 살리기를 이야기하면 지역이기주의로 오해하기도 한다.

- 그렇게만 되면, 비싼 집값을 내면서 서울에 살 필요가 없다. (웃음)

솔직히 지금은 정치인도 관료도 서울의 명문대를 갔다가 내려와야 고위직이 된다. 판사, 검사, 교수, 다 그렇다. 그나마 지방출신들이 차별 없이 활동하는 데가 교사, 의사 정도다. 지방이 식민지다. 이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지역사회와 다 유리되어 있다. 지배자 같다. 우리는 법정에서 재판받아야 되는 사람이고 누구는 판결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관리 대상이 되고 누구는 관리자가 된다. 누구는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사람이 되고 우리는 그 사람한테 이익을 청원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건 아니지 않나.

- 교육개혁에서 재정과 추진동력은 한정된 자원이다. 차등을 두고 실행한다면 어디에 좀 더 방점을 찍어야 할까?

두 번째는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을 실질적으로 현격하게 낮추고,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소수 계층 우대 정책)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저소득층 자녀일지라도 학업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좋은 지방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자. 지방대학도 살리고 교육 불평등도 해소할 수 있다.

- 높은 교육열만큼이나 욕을 많이 먹는 것이 교육부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교육부의 관료주의에 대한 불만과 반감이 커서 교육부 축소론도 나온다.

초중등교육의 실천적인 핵심은 시도교육청이 하고, 평가와 진단은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제공할 수 있다. 고등교육부문에서는 국가고등교육연구평가원을 만들어 연구와 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교육부가 재정을 어떻게 지원할지 조정하면 된다.

- 학교교육과 직업훈련의 연결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 거버넌스는 무엇일까? 90년대 교육부와 노동부를 통합한 영국처럼 관할 부처를 통합하는 방안이 얘기된 적도 있다.

- 매 정부마다 교육개혁을 추진했지만, 우리 교육이 크게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교육정책의 철학 부재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교육개혁을 접근해야 할까? 기본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까?

이것을 기본으로, 고등교육 영역에서는 뭘 할 거고 초중등교육 영역에서는 뭘 할 거냐는 또 다르다. 초중등교육에서는 시민적 자질을 키워주고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류의 중요한 특징이 바로 호기심이다. 그걸 체험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경제적 능력을 강화해가는 의미에서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어느 공동체든 자기를 재생산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터뷰 및 정리: 최해선 선임연구원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