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높은 빈민가: 죽은 거인(사진)

2015-10-16     김병철

개발업자(다비드 브릴렘버그)의 이름을 딴 이 빌딩은 유명 건축가 엔리케 고메스와 카라카스철도공사의 합작품이다. 헬기장까지 갖춘 부유층 호텔인 45층짜리 중심타워와 19층짜리 고위직 거주용 빌딩.

이 두 건물의 부속물인 19층짜리 엘리베이터 동과 10층짜리 주차장, 30m 높이의 아트리움(하늘이 통하는 회랑형 마당)까지 다섯 구조물이 겹겹 둘러쳐진 초호화 ‘복합 재정금융센터’. 1990년 착공 때만 해도 석유 활황을 타고 베네수엘라의 번성하는 경제력의 상징이었던 빌딩단지다.

그렇게 십수년, 그 빌딩은 ‘죽은 거인’이라 불렸다. 마감 안 된 콘크리트 계단을 드러낸 채 빌딩은 텅 비어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떼지어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그날 당직 경비 두명은 무장을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무단 점유’는 토레 다비드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직형 무허가 거주지로 탈바꿈시켰다. 2009년 200여가구로 늘더니 현재 750여가구, 3000여 주민이 사는 마을이 됐다.

주민들은 층층이 칸을 나누어 벽을 만들고 집을 가꾸었다. 당번을 두어 청소를 하고, 자체 방범활동을 하고, 전기세도 공평하게 나눠 낸다. 몇 층마다 잡화점도 생겨나고, 심지어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가구도 있다. 회랑형 아트리움은 공동체의 체육공간이자 휴식장소가 되었으며, 복도는 주민들이 소통하는 골목이 되었다.

지은이들은 토레 다비드가 오늘날 누군가에겐 건물을 누더기로 만든 ‘카라카스의 오점’으로 여겨지지만, 적어도 지금 오갈 데 없는 이들에겐 “안전한 천국이자 자신감의 원천인 집”이 되어주고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토레 다비드를 ‘빈민가’라 보지 않는다. 유엔의 정의를 보면 빈민가는 ‘기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춘 시설이 결핍된 거주 환경, 식수·위생시설의 결핍, 강제추방에서 자유로운 안정된 거주권의 결핍’까지 세 요건이 중요한데, 토레 다비드는 아직 정부의 공식 인정을 받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빼고는 빈민가 요건에 들어맞지 않는다.

이 책을 지은 이는 스위스·베네수엘라·미국 기반의 건축디자인집단 어반싱크탱크와 스위스 취리히공과대학 팀이다. 이들은 2011년부터 토레 다비드 주민들과 접촉하여 이 수직형 무단점유 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협력해 왔다. 이를테면 건물 내 남는 공간에 수경 재배 녹지 가꾸기, 급수시설과 쓰레기 배출 시설의 개선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2년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 버스는 일반 마을버스처럼 아침저녁 통행량이 많은 시간대와 한가한 낮시간대의 배차 간격을 달리한다. ‘토레 다비드의 실험’은 비록 무단 거주 지역일지언정 공동체가 살아 숨쉬는 마을로, 도시 속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음을, 적어도 지금까지는,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토레 다비드

김마림 옮김/미메시스·2만8000원

관련기사 : 세계 최고층 빈민빌딩 결국 강제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