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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없던 시절 무서운 이야기를 듣게 된 건 늘 여름이었다. 무서운 이야기의 첫 기억인 ‘빨간 휴지 파란 휴지’ 얘기를 들었던 날도 여름이었다. 낮에 등목을 하고 저녁에 수박을 먹었어도 밤까지 무덥던 날, 어머니가 ‘그냥 옛날얘기’를 할 때와는 다른 톤으로, 평소보다 한음 반 정도 낮은 목소리가 되어서 “엄마가 귀신이야기 해줄까”라면서 시작했던 이야기.

폭염에 더 생각나는 추억 속 도시괴담 4가지
ⓒdianazh via Getty Images

빨간 휴지 파란 휴지

한 초등학생이 선생님께 상으로 색종이를 받았다. 아이는 너무 기뻐서 어디를 가든 색종이를 지니고 다녔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색종이를 들고 갔는데 하필이면 화장실에 색종이가 빠져 버렸다! 발을 동동 구르던 아이가 색종이를 건지려고 손을 뻗다가 그만 화장실에 빠져 버렸다. 아무리 살려 달라고 외쳐도 아무도 들을 수 없었고, 아이는 결국 죽게 되었는데..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아이는 화장실 귀신이 되어서 화장실에 오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재래식 화장실을 소재로 한 이 괴담은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일본이 조금 차이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빨간 휴지를 택하면 죽고, 파란 휴지를 택하면 살아 남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어느 쪽을 택하든 죽는다. 빨간 종이를 선택하면 목이 잘리고, 파란 종이를 택하면 피가 모두 빨려서 죽는다. 

한국에서는 ”하얀 휴지 달라”고 답변하면 무사히 넘어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용납하지 않는다. 하얀 휴지를 선택하면 귀신에게 목이 졸려서 눈을 하얗게 치뜨게 되어 죽게 된다고. 이 괴담은 차츰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바뀌게 되면서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휴지를 달라고 하자 물을 내려버렸다) 정도로만 쓰이다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폭염에 더 생각나는 추억 속 도시괴담 4가지
ⓒMBC

홍콩할매귀신

1989년, MBC 뉴스데스크에 ‘홍콩귀신’ 소동이 보도됐다.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홍콩할매귀신 괴담을 다룬 내용이었다. 홍콩으로 여행 가던 어느 할머니가 비행기 사고를 당해 고양이와 한몸이 되며 원귀가 되었는데, 할머니가 홍콩할매귀신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할머니가 고양이가 한 몸이 된 이유는 고양이가 죽은 할머니를 살려내기 위해 자신의 영혼 절반을 나눠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소문이 한창 퍼질 무렵에는 해가 진 후 아이들이 거리에 나오지 않기도 했다.

홍콩, 비행기 사고, 아이들 살해. 각각의 키워드에는 당시의 사회상이 담겨 있다. 당시 한국에선 이국적이면서도 음울한 분위기의 정서가 지배적인 홍콩 느와르 영화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80년대에는 대형 비행기사고가 2건 발생하기도 했다. 1983년 소련군에 의해 대한항공 007편이 격추 당한 사건(사망 269명)과 1987년 김현희 KAL기 폭파 사건(사망 115명)이다. 또 80년대는 인신매매 관련 뉴스가 연일 뉴스에 보도된 시기이기도 했다. 자녀들의 인신매매를 걱정한 부모들이 아이들을 일찍 귀가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홍콩할매괴담을 유포시켰다는 ‘음모론’도 있다.

한 초등학교(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비명을 지른 일도 있었다. 홍콩할매가 옆반에 와서 애들을 잡아먹는 중이라는 거였다. 새파랗게 질린 아이도 있었고 엉엉 우는 아이도 있었다. 홍콩할매와 마주치게 됐을 때의 대처법(손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 손톱이 보이면 안 되므로 손등이 바닥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거나, 마지막 문자에는 반드시 ‘홍콩’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한다는 등)을 암기하듯이 되뇌이는 아이도 있었다.

홍콩할매를 만났을 때 살아남는 팁

- 할매에게 손톱·발톱이 보이면 바로 잡아먹힌다.

- 저녁에 돌아다녀도 죽는다.

- 할매와 이야기할 때 문장 끝에 ‘홍콩’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한다홍콩. 

- 화장실 4번째 칸으로 들어가 숨어도 죽는다.

- 창문 밖에서 할매가 불러도 대답해선 안되고, 창문을 열어서도 안된다.

- 전화벨이 4번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으면 죽는다.

- 등등..

50명에 달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올 때까지 일심동체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교실 밖으로 나서자 아이들은 울며불며 ”선생님 나가지마세요”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렇게 교무실 밖으로 나갔던 담임 선생님은 결국..

의기양양하게 돌아와서 아이들의 환호성을 받으셨다는.

이순신의 수염을 거꾸로 보면 ‘머리’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순신의 수염을 거꾸로 보면 ‘머리’처럼 보인다고 한다.

김민지 괴담

한국조폐공사 사장의 딸 김민지가 납치된 뒤 살해당했으나 범인은 끝내 잡히지 못했다. 그러자 조폐공사 사장은 죽은 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화폐의 도안에 김민지의 이름과 시체를 숨은그림 찾기 처럼 그려넣게 했다. 10원짜리 동전의 다보탑 문양을 90도로 세워서 보면 ‘김’이라는 성씨가, 500원짜리 학의 다리에는 꽁꽁 묶인 소녀의 팔이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김민지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자는 죽는다는 저주도 있었다.

화폐별 괴담 내용

10원화: 다보탑의 밑면을 옆으로 보면 ‘김’과 비슷하게 보인다.
50원화: 꺾여진 벼잎이 범행당시 사용한 도구인 ‘낫’이라고 한다.
100원화: 이순신의 수염을 거꾸로 보면 ‘머리’처럼 보인다고 한다.
500원화: 학의 다리가 꽁꽁 묶인 ‘팔’을 의미한다고 한다.
1000원권: 투호에서 아래로 비져나온 막대 끝에 ‘min’이라고 쓰여 있다.
5000원권: 뒷면에 한자로 ‘지(知)’ 자가 쓰여 있는 비석이 있다.
10000원권: 세종대왕이 입은 곤룡포에는 ‘다리’와 비슷한 것이 있다.

이 소문으로 곤욕을 치른 한국조폐공사는 결국 해명에 나섰다.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 김민지라는 이름을 가진 조폐공사 사장의 딸이 유괴납치된 사건은 없으며, 또한 화폐의 도안이라는 것이 사장 한 사람의 독단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폭염에 더 생각나는 추억 속 도시괴담 4가지
ⓒ영화 '여고괴담'

전교1등 귀신

전교 2등인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의 소원은 전교 1등. 그러나 죽어라 공부해도 전교 1등을 이길 수 없었다. 어느 날 2등이 1등을 학교 옥상으로 불러 밀어 떨어뜨린다. 그렇게 전교 1등을 죽이고, 2등은 학교에 혼자 남아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한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드르륵.. 콩! 콩! 콩!’ 그리고 이어지는 혼잣말. ”어? 여기 없네.”

2층이 공부하는 교실은 5층이었다. 이상한 소리는 1층에서부터 들려온다. 2층을 지나, 3층을 지나, 그리고 5층까지 다가온다. 2등은 공포에 질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책상 밑에 숨어 있었다. 2등의 교실문이 열린다. ‘드르륵..’

점점 더 또렷하게 크게 들려오는 콩! 콩! 콩! 콩! 콩! 소리. 그런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정적만 흐를 뿐이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 2등은 ‘이제 간 건가’ 싶어서 눈을 뜨고 말았는데,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1등 귀신이 거꾸로 선 채 2등의 얼굴 바로 앞에서 ”찾았다!”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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