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오른 뒤 처음으로 단행한 인사에서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
HD현대그룹은 모든 계열사들이 고루 호실적을 거두면서 올해도 역대 최대 실적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회장은 변화를 최소화하고 경영의 지속성을 강조한 인사를 실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의 역할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HD현대그룹에서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전문경영인 부회장이 다시 등장한 데 이어 올해도 부회장의 역할이 커지는 흐름이 나타난다.
정 회장은 오너경영인으로서 그룹의 중장기 발전에 더욱 골몰하는 한편 신뢰할 만한 전문경영인들을 부회장으로 세워 주요 사업들의 성과를 높이는 친정체제 안착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사진)이 2026년 사장단 인사에서 '안정'에 방점을 찍은 가운데 부회장단 역할을 강화하며 친정체제 안착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
8일 HD현대그룹 안팎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HD현대그룹은 올해 사장단 인사에서 그룹 이름을 바꾼 뒤 가장 적은 수의 리더십 변화를 단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HD현대그룹은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부회장을 조선사업 총괄 부회장으로 선임하는 등 모두 4명을 대상으로 전날 사장단 인사를 실시했다.
이는 HD현대로 그룹 공식명칭을 변경한 2022년 말 이후 이뤄진 인사에서 변화의 폭이 가장 적은 것이다. HD현대그룹은 2022년 12월26일 50주년 비전 선포식을 열고 기존 현대중공업그룹에서 그룹 이름을 바꿨다.
이후 HD현대그룹에서는 올해보다 많은 수의 사장단 인사가 진행돼 왔다. 2023년도에는 정기선 회장이 당시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내용을 포함해 모두 7명이 승진하거나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이어 2024년에도 HD현대그룹은 정 회장이 1년 만에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고 조석 HD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것을 포함한 6명의 인사를 실시했다.
정 회장이 총수에 오른 지난해 인사에서는 변화의 폭이 가장 컸다. 정 회장의 승진, 권오갑 HD현대그룹 회장의 명예회장 추대와 함께 모두 10명의 인사가 이뤄졌다.
올해 인사는 HD현대그룹이 정 회장 체제 1년 차를 맞이해 처음으로 진행된 것이다. 정 회장의 초기 경영 향방을 확인한다는 의미가 큰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 회장은 변화보다는 안정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적은 변화 폭과 더불어 예년보다 빠른 시기에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는 점도 신속하게 리더십을 안착시켜 현재의 긍정적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HD현대그룹은 2023년과 2024년에는 11월, 지난해에는 올해보다 열흘 늦은 시점에 사장단 인사를 실시했다.
정 회장이 올해 HD현대그룹 인사에서 안정 기조를 가져갈 수 있었던 데는 대부분 계열사가 거두고 있는 우수한 실적이 뒷받침하고 있다.
HD현대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올해 상반기 실적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사이트솔루션, HD건설기계 등 중간 지주사 및 사업회사 모두 매출과 영업이익을 개선했다. 올해 1분기까지 영업손실을 봤던 HD현대로보틱스도 2분기 영업이익 10억 원으로 흑자전환하면서 반등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에 HD현대그룹은 올해도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주요 계열사 실적을 포함하는 지주사 HD현대의 상반기 연결기준 실적은 매출 42조113억 원, 영업이익 6조9594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매출은 22%, 영업이익은 187% 뛰었다. 특히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이미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6조996억 원을 넘어섰다.
다만 올해 HD현대그룹 사장단 인사에서는 과거와 다른 미묘한 변화도 감지된다. 부회장단의 역할이 다시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인사에서 이상균 부회장은 조선사업 총괄 부회장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HD현대그룹은 조선 부문에 총괄 체제를 신설하면서 계열사들의 역량을 포괄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고 여기에서 이 총괄 부회장이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HD현대그룹에서는 경영승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2023년 인사를 기점으로 부회장직을 맡은 전문경영인이 사라졌다.
정 회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2023년 말 가삼현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부회장과 한영석 HD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이 용퇴하면서 HD현대그룹 부회장단은 해체됐다.
앞서 정 회장이 4년 만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던 2021년 말 인사에서는 가삼현·한영석 사장과 함께 강달호 HD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 손동연 HD건설기계 대표이사 사장이 동시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 회장이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당시 경험 많은 전문경영인 부회장 4명이 오너경영체제 전환을 위한 보좌역할을 담당하게 된 셈이다. 반면 정 회장이 부회장에 오르며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이 해체된 것은 강력한 오너경영체제를 세우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HD현대그룹은 지난해 정 회장이 총수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전문경영인 부회장 제도를 부활시켰고 이들의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정 회장이 지난해 말 인사를 기점으로 37년 만에 공식적으로 그룹의 오너경영체제를 확립한 만큼 친정체제를 다지고 오너로서 역할에 점차 집중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이 지주사 대표로서 각 사업을 전반적으로 챙기면서도 그룹의 중장기 청사진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쏟고 믿을 만한 전문경영인을 앞세워 세부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력을 높이는 그림인 것이다.
본격적으로 전문경영인 부회장단이 다시 가동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10월 인사에서 이상균 사장은 HD현대중공업 대표를 유지하면서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조영철 HD현대사이트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은 지주사 대표로 내정되면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앞서 2024년 11월 인사에서도 조석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지만 곧바로 이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HD현대일렉트릭 사내이사직을 내려놓고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했다.
HD현대 관계자는 전날 올해 사장단 인사와 관련해 “그룹의 핵심사업인 조선사업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현장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며 “세계 최고의 조선업 위상을 지켜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끊임없는 경쟁력 강화 노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