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작은 남성의 등에 올라탄 모습을 번쩍이는 금빛으로 표현한 풍자 조형물 '오렌지 역병(The Orange Plague)'이다.
6일(현지시각) 벨기에 출신 바르바라 본테 의원은 엑스(X, 옛 트위터)에 '벌거벗은 트럼프' 동상 사진을 올렸다(왼쪽).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의 헬기 착륙장에 마린원 헬리콥터를 타고 도착한 뒤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Barbara Bonte 엑스 계정/로이터/연합뉴스
6일(현지시각) 스페인 EFE통신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 등에 따르면 덴마크 조각가 옌스 갈스키외트의 '오렌지 역병'이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건물에 설치됐다.
유럽의회는 유럽연합(EU) 시민이 직접 선출한 의원들로 구성된 EU의 입법기관으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를 공식 소재지로 두고 정례 본회의를 개최한다.
높이 약 2.5m인 작품은 구리로 제작한 뒤 23K 금으로 도금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체구가 작은 남성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다. 한 손에는 정의를 상징하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기다란 골프채를 들었다. 골프채 옆에는 지구를 형상화한 골프공이 놓였다.
갈스키외트는 EFE에 이 작품이 덴마크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품의 의미를 두고 "초강대국이 작은 나라를 짓누르는 지금 세계의 모습, 힘을 가진 사람과 힘없는 사람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는 작은 남성이 누구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는 "유럽연합(EU)일 수도 있다"고 답했다.
작품에는 '불의의 왕(King of Injustice)'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붙었다. 동상의 받침대에는 "눈을 감고 저울을 든 '불의의 왕'은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한 남자의 등에 앉아 있다. 그는 내 무게에 짓눌려 가라앉고 있다. 나는 그를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의 등에서 내려오는 것만 빼고"라는 문구가 적혔다.
작품은 유럽의회 건물 두 곳을 잇는 통행량이 많은 길목에 자리 잡았다. DW에 따르면 '벌거벗은 트럼프'는 오는 8일까지 이곳에서 유럽의회 의원과 직원, 방문객들을 맞는다.
전시 모습은 온라인으로도 실시간 중계되고 있다. 갈스키외트 측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장을 생중계하는 한편, 작품의 메시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희망자들에게 조각상의 미니어처도 나눠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출신 좌파 성향 유럽의회 의원 페르 클라우센이 작가를 초청하면서 성사됐다.
클라우센 의원은 6일 자신이 소속된 덴마크 적녹동맹(Enhedslisten)의 EU 의정활동 홈페이지를 통해 "트럼프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이런 조각을 전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며 "우리는 두려움과 자기검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 조각이 유럽의회에 전시되는 것조차 견디지 못할 만큼 비판에 민감하다면 세계 무대에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 작품은 모든 사람, 특히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마주해야 할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동료 유럽의회 의원뿐 아니라 여러 EU 집행위원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럽의회는 이 작품을 전시하기에 매우 적절한 장소"라고 말했다.
작가인 갈스키외트 역시 작품을 둘러싼 반발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갈스키외트는 6일 스페인 매체 엘디아리오(elDiario.es)에 작품에 대한 항의가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에 "그렇다면 조각상을 스쿠터에 싣고 스트라스부르 시내를 돌아다니겠다"고 말했다.
한편, 동상 설치를 두고 일부 우파 의원의 반발도 나왔다. 벨기에 출신 바르바라 본테 의원은 6일 엑스(X, 옛 트위터)에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전 세계를 상대로 존엄성을 훈계하는 사람들이 우방국 대통령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벌거벗은 트럼프' 동상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작품은 지난해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등장했으며, 올해 2월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도 전시됐다. 올해 1월 덴마크에서 열린 그린란드 연대 시위에도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