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워너브라더스 인수에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신세계그룹의 쇼핑 공간에 '글로벌 IP(지식재산)'가 더해질 가능성이 생겼다.
하지만 유명 IP가 들어온다고 고객이 저절로 찾아오는 건 아니다. 고객들이 잠시 워너브라더스의 대표 IP인 해리포터나 DC를 보기 위해 화성 스타베이시티와 스타필드를 찾을 순 있겠지만, 해리포터와 DC가 단순 '장식품'에 그친다면 또 한번의 '투자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워너브러더스 인수 참여를 통해 글로벌 IP(지적재산) 사업에 나선다. ⓒ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은 지난 6일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추진하는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인수에 10억 달러(약 1조4천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신세계프라퍼티는 미국 현지 법인을 통해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측 투자기구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다. 이를 통해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추진하는 워너브러더스 인수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다.
유통업체의 콘텐츠 투자가 뜬금없는 선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늘 유통업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사업을 신세계그룹과 연결해왔다. 프로야구단을 사들인 뒤에는 야구장과 유통을 묶었고, 스타필드에는 쇼핑 외에 고객이 오래 머물 이유를 붙였다. 일찍이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IP 사업에도 나선 적이 있다. 이번에도 기존 유통업의 관행을 허물고 유통업과 콘텐츠사업을 묶어 새로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실제 신세계그룹은 이번 투자를 계기로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러더스의 인기 콘텐츠를 기존 유통사업에 결합해 사업 간 시너지를 내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번 투자는 신세계그룹의 공간 전략에 글로벌 IP를 더해 고객 경험과 집객력을 높이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신세계그룹은 그동안 쇼핑·문화·레저 사업에서 프로야구, 호텔, 테마파크까지 사업 범위를 계속 넓혀왔다.
특히 신세계그룹은 미션 임파서블·스타트렉·탑건 등 파라마운트 콘텐츠와 해리포터·왕좌의 게임 등 워너브러더스 IP를 테마파크와 스타필드 같은 오프라인 공간에 활용한다고 신세계 쪽은 밝혔다. 구체적으로 화성 스타베이시티에 들어설 테마파크에는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러더스의 주요 IP를 접목하고, 스타필드·스타필드마켓·스타필드빌리지에는 IP를 활용한 체험시설과 테마공간을 선보인다. 온라인에서는 HBO Max(에이치비오 맥스)와 파라마운트+(파라마운트 플러스)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신세계그룹 계열사의 연계도 추진한다.
이처럼 여러 콘텐츠와 사업을 하나의 공간에 묶어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방식은 신세계그룹이 꾸준히 시도해온 방식이다. 신세계프라퍼티는 스타필드를 중심으로 쇼핑·문화·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복합공간을 만들어왔고, 화성 국제테마파크와 동서울터미널 복합개발 등으로 공간 사업의 범위를 넓혀왔다. 최근에는 글로벌 부동산 개발회사 오코(OKO)그룹과 5억 달러(약 6800억 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만들고 아시아·북미 지역의 아만·자누 호텔과 레지던스 개발에도 나섰다. 해외 호텔 개발에서도 오코그룹의 개발 경험을 결합하며 새로운 영역에 필요한 전문성을 보완했다.
하지만 공간을 만드는 능력과 글로벌 IP를 실제 집객으로 연결하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간은 입지와 시설, 콘텐츠를 조합해 고객이 머물 이유를 만드는 사업이지만, 글로벌 IP는 유명세만으로 지속적 고객 방문과 소비를 보장하지 않는다. IP의 인지도를 실제 체험과 상품과 서비스로 풀어내고, 결국 고객이 다시 찾을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신세계그룹의 IP 사업 역량은 아직 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신세계푸드는 정 회장을 닮은 고릴라 캐릭터 ‘제이릴라’를 앞세워 베이커리와 패션, 골프웨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고, 캐릭터를 활용한 라이선싱도 시도한 적이 있다. 제이릴라를 전면에 내세운 프리미엄 베이커리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도 직접 운영했다.
다만 이 매장은 2024년 말 운영을 종료했다. 당시 신세계푸드는 수익성 강화와 베이커리 사업 재편을 이유로 들었다. 제이릴라 사업이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때 반짝하는 데 그친 것은 사실이다. 캐릭터 사업에서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워너브러더스 IP 사업은 제이릴라와 규모나 방식부터 다르다. 하지만 제이릴라 사례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IP는 이름을 알리는 것만으로 사업이 완성되지 않는다. 글로벌 IP를 활용할 기회를 얻은 뒤에도 고객이 실제로 찾아오고, 머물고, 소비하고, 무엇보다 다시 찾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 회장의 새로운 'IP사업' 도전이 성공할지 여부는 조만간 판가름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