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규모 시위를 상징하는 장면이 광장을 밝힌 '촛불'이라면, 프랑스 시위의 오랜 풍경에는 길과 학교를 틀어막는 '봉쇄'(바리케이드)가 있다.
1968년 5월, 프랑스 대학생들은 낡은 교육과 권위에 맞서 대학을 점거했고 노동자들은 더 나은 노동조건을 요구하며 공장을 멈춰 세웠다. 반세기가 훌쩍 지난 2026년,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다시 '학교 봉쇄'에 나섰다. 이번엔 손에 스마트폰을 쥔 채다.
교문 막은 바리케이드, SNS 타고 전국으로
5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튀르고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학교 봉쇄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교감이 바리케이드 뒤에 서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봉쇄 시위는 이미 학교 담장을 넘어섰다. 6일(현지시각) 전국 시위에는 프랑스 내무부 추산 25만 6천 명, 주최 측 추산 45만 명이 참가했다. 고등학생뿐 아니라 대학생, 교사, 학부모, 노동조합까지 모두 합류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의 5일 보도를 보면, 이번 운동은 9월21일 파리 동쪽 교외 크레테유의 한 고등학교에서 처음 불이 붙었다. 학생들은 교사 부족에 항의하며 학교를 봉쇄했다. 열흘 만에 시위는 파리 교외에서 전국으로 번졌다. 비판의 목소리는 교사 부족부터 과밀 학급, 취가 나오는 낡은 시설, 대입 플랫폼 파르쿠르쉬프(Parcoursup)에 대한 불신까지 다양하다.
학생들은 학교 정문에 바퀴 달린 대형 쓰레기 수거함 등을 가져다 놓고 바리케이드를 쳤다. 봉쇄 장면과 경찰의 진압 장면은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타고 삽시간에 퍼졌다. 학교들이 봉쇄를 피해 원격수업을 실시하자 틱톡과 디스코드에 수업 링크를 공유하고 외부인이 접속해 수업을 방해하는 이른바 '사이버 봉쇄'까지 등장했다.
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학교 교육 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열린 가운데, 고등학생들과 교육 노조 조합원들이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파리 교외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수십 년 만에 전례 없는 규모로 번진 가운데, 경찰의 강경 진압은 학생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다.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진압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와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하고 대규모 연행이 이뤄졌다.
시위 현장과 소셜미디어에서는 "투표하기엔 너무 어리다면서 최루가스를 맞기엔 충분히 나이가 들었다", "곤봉 말고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를", "경찰은 우리를 보호하기보다 최루가스를 쏘러 온다", "당신들의 진압이 우리의 저항을 멈추지는 못한다" 등의 현수막과 구호가 잇따라 등장했다.
극우 반대부터 '68년 5월'까지, 정치로 번진 교실의 분노
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학교 교육 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열린 가운데, 고등학생과 교육 노조 조합원들의 시위가 끝날 무렵 충돌이 발생하자 프랑스 경찰이 개입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고등학생들이 주도하고 노동조합과 교사들이 동참한 전국적인 행동의 날 시위가 끝난 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 해산을 시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학생들의 시위를 바라보는 정부와 정치권의 시각은 어떨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9월30일 스페인 국빈 방문 중 학생 시위와 관련해 "젊은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때로는 분노를 듣고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프랑스 대통령실은 밝혔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은 "어떤 논쟁이나 두려움도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학교는 문을 열고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곳이지, 봉쇄하거나 쓰레기통을 태우기 위한 곳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시위가 격화하자 일부 사태를 '도시 폭력'으로 규정했고, 급진좌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와 연계된 세력이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전국적인 시위와 봉쇄 행동의 일환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파리 나시옹 광장에 시위대가 모이자 프랑스 공화국보안기동대(CRS) 소속 진압경찰이 시위대를 둘러싸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은 한층 강경했다. 르펜은 지난 1일 프랑스 뉴스 채널 LCI 인터뷰에서 일부 사태를 두고 "이제 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아니라 전문적인 이들이 조직한 폭동"이라고 주장하며, 새로운 '폭력 시위대 방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반대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국민연합과 극우 정치에 대한 반감도 표출되고 있다. 르몽드 6일 보도를 보면, 특히 파리 교외 학생들 사이에서 극우 집권에 대한 불안과 거부감이 확인됐다. 6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 시위에서는 "청년들은 국민전선(국민연합 옛 당명)에 엿을 날린다", "우리는 모두 반파시스트다"라는 구호가 등장했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2026년 10월이 새로운 68년 5월이 되기를", '투쟁의 결합' 이뤄질까?
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전국적인 시위와 봉쇄 행동의 일환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가운데, 파리 나시옹 광장에서 충돌이 발생하자 프랑스 경찰이 물대포를 쏘면서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위의 목소리는 교육 여건 개선을 넘어 프랑스 사회와 정치에 대한 문제 제기로도 번지고 있다. 반세기 전 '68년 5월'을 떠올리는 목소리도 시위 현장에서 나온다. 벨기에 일간 라 리브르의 6일 몽펠리에 현장 보도에 따르면,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2026년 10월이 새로운 68년 5월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 학생 역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 과거 투쟁의 사례로 68년 5월을 언급했다.
이번 시위를 단순한 10대들의 학교 봉쇄로만 보기 어려운 것은 학생들의 분노가 프랑스 사회 곳곳의 불만과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회운동이 하나의 전선에서 만나는 이른바 '투쟁의 결합'이 이뤄질 조짐까지 엿보인다.
시선은 오는 10월17일로 향한다. 생활비와 에너지 가격 등에 항의하는 행동이 예고된 가운데 학생들 사이에서도 봉쇄를 이어가 다른 세력과 연대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프랑스 공영방송 퓌블릭 세나는 학생과 노동조합, 2018년 유류세 인상 반대로 시작해 생활비 부담 등에 대한 항의로 확산한 '노란조끼' 운동 세력이 연대할 가능성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