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비리그 명문 코넬대학교가 2024년 불거진 집단 성폭행 의혹의 후폭풍에 휩싸였다. 대학 측의 사건 대응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 물결이 캠퍼스를 뒤덮은 데 이어, 교수진까지 대학 행정부를 향해 '불신임' 카드를 꺼내 들었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이타카의 코넬대학교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위한 정의' 집회에서 학생들이 캠퍼스를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이타카의 코넬대 캠퍼스에는 학생과 교수진, 지역사회 활동가 수백 명이 모여 집회와 행진을 벌였다. 시위 참가자는 1천 명 이상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대는 캠퍼스를 행진하며 "정의 없인 평화도 없다(No justice, no peace)", "하나의 투쟁, 하나의 싸움(One struggle, one fight)" 등의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은 "제인 도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e Doe)", "우리는 생존자들과 함께한다(We Stand for Survivors)"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대학 측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대학 측에 2024년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외부 독립 조사와 성폭력 사건의 독립적 심의, 일관된 징계 기준 마련, 교내 경찰의 성폭력·성희롱 신고 대응 교육 강화를 요구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마이클 코틀리코프 총장과 대학 행정부 관계자들의 사퇴도 촉구했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이타카에서 코넬대학교의 교내 성폭행 의혹 사건 대응을 규탄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논란의 중심에는 가명 '제인 도(Jane Doe)'로 알려진 여성의 성폭행 피해 주장이 있다. 도는 지난달 제기한 소송에서 20세였던 2024년 10월 코넬대 남학생 사교클럽 'Chi Phi(카이 파이)'에서 술과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판단이나 행동이 어려운 상태가 된 뒤 여러 회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도는 카이 파이 회원 7명과 해당 사교클럽 지부, 코넬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 발생 몇 주 뒤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해 대학 내부 조사와 수사기관의 조사가 진행됐지만 당시 지역 검찰은 형사 기소를 하지 않았다.
코넬대는 이후 카이 파이 지부를 폐쇄하고 관련 학생들에게 퇴학을 포함한 징계를 내렸다며 당시 신고에 적절히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이타카에서 코넬대학교의 교내 성폭행 의혹 사건 대응을 규탄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꽃을 들고 연대를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을 착용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특히 대학이 일부 가해 의혹 학생들에게 에세이 작성 등을 통해 징계를 경감받을 기회를 줬다는 주장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커졌다. 시위 현장에는 이를 겨냥해 "에세이 문장이 아니라 징역형을(Prison Sentences, not Topic Sentences)"이라는 피켓도 등장했다. 시위대는 사건 연루 사실이 확인되는 학생의 퇴학 또는 학위 취소를 요구했다.
논란은 학생 시위를 넘어 교수사회로도 확산하고 있다. CNN은 5일 코넬대 교수평의회 소속 교수들이 대학 행정부의 사건 대응을 문제 삼아 불신임 투표 결의안을 발의했다고 보도했다.
코넬대 노동사 교수이자 교수평의회 위원인 폴 오티즈에 따르면 결의안은 5일 저녁 교수위원회에 제출됐으며 검토를 거쳐 오는 14일 전체 교수평의회 회의 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이다. CNN은 투표권을 가진 교수평의회 의원이 75명 이상이며, 이 가운데 약 40명이 현재까지 불신임 투표 추진에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불신임 투표는 대학 지도부를 직접 해임하는 절차는 아니지만 교수사회가 현 행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표시한다는 점에서 대학 지도부에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오티즈 교수는 CNN에 수백 명의 학생과 동문, 교직원들이 교수진에게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이타카의 코넬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린 2024년 남학생 사교클럽 내 집단 성폭행 의혹 사건에 대한 대학 측의 대응을 규탄하는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연설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사건에 대한 수사도 다시 진행되고 있다.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지난 2일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을 특별검사로 임명해 재개된 형사수사를 맡겼다. 코틀리코프 총장 역시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대학의 2024년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외부 로펌의 독립적인 검토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생들은 캠퍼스에 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고, 교수진은 불신임 카드를 꺼냈으며, 뉴욕주는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2년 전 제기된 성폭행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이제 개별 사건을 넘어 코넬대의 성폭력 대응 시스템과 대학 행정부의 책임을 묻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