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입장에서는 기업승계 과정이 단순 지원을 넘어 인수금융, 자문, 기업가치 평가 등 새로운 기업금융 수익 기반이 될 수 있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올해 6월 '생산적 기업승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소기업의 경영권 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수요를 은행의 새로운 사업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기업금융 전문가로 꼽히는 정 행장이 시중은행들의 기업금융 경쟁 속에서 첫 연임 심사를 받는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에 맞춰 은행들이 관련 조직과 지원 프로그램을 늘리는 가운데, 중소기업 분야에서 쌓은 정 행장의 경험이 우리은행의 영업 확대 방향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은행은 정 행장 취임 이후 자본비율을 높이며 실적 확대의 기반을 쌓았고, 올해는 기업대출을 늘리며 영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다만 반기, 연간 수익성이 악화 추세에 있는 만큼 확보한 자본 여력과 기업금융 경험을 수익 회복으로 연결하는 일이 임기 말 주요 과제로 남아있다.
'기업금융 전문가'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연임 심사를 앞두고 있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시중은행들 기업금융 강화, 중소기업 전략과 영업 현장 거친 정진완
6일 금융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우리금융지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는 지난달 30일 차기 우리은행장 선임을 위한 경영승계 절차를 시작했다. 정 행장의 임기는 올해 12월31일까지다.
금융권에서는 정 행장의 연임 가도에서 가장 커다란 무기는 바로 정 행장의 기업금융 전문성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은행권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 목표인 생산적 금융 전환을 뒷받침하는 한편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의 주요 축으로 기업금융 부문이 새로운 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1월 성장금융추진본부를 신설해 지원 업종과 기업을 선별하고 비금융 컨설팅 등을 강화하도록 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말 여신그룹 안에 생산포용금융부를 신설해 관련 제도 설계와 운영, 리스크 관리를 맡겼다. 하나은행은 올해 5월 기술보증기금과 기업승계·인수합병 금융지원 협약을 맺고, 중소기업을 인수하는 기업의 운전·시설자금 지원에 나섰다.
정 행장은 이 분야에서 본점 전략 수립과 영업 현장을 모두 거친 이력을 갖고 있다. 중소기업전략부장과 삼성동금융센터장, 본점영업부 본부장 등을 지냈고, 은행장 선임 직전에는 중소기업그룹 부행장을 맡았다.
우리금융지주 자추위도 2024년 정 행장을 은행장 후보로 추천하면서 중소기업금융 분야의 경험과 전문성을 평가했다. 기업문화 혁신과 함께 기업금융 중심의 영업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을 선임 배경으로 제시했다.
◆ 자본비율 높아진 우리은행, '1기 미션'은 달성했다
지난해 취임한 정 행장의 첫 임기 주요 과제는 자본 관리였다. 우리금융그룹이 증권·보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주력 계열사인 우리은행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이런 경영목표에 따라 위험가중자산을 관리하고 대출 구성을 조정했다.
우리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CET1비율)은 자체 공시 기준 정 행장의 취임 직전인 2024년 말 13.05%에서 지난해 말 14.13%, 올해 6월 말 15.38%로 높아졌다. 이는 위험가중자산에 비해 보통주자본을 얼마나 확보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비율이 높아지면 대출 등 자산을 늘릴 여력도 커진다.
금융감독원의 발표 자료 기준으로 보면 올해 6월 말 기준 4대 은행 가운데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상승한 곳은 우리은행이 유일하다.
우리은행은 14.21%에서 15.35%로 1.14%포인트 올랐다. 반면 KB국민은행은 15.35%에서 14.65%로 0.70%포인트, 신한은행은 15.57%에서 14.95%로 0.62%포인트, 하나은행은 16.49%에서 15.95%로 0.54%포인트 각각 하락했다.
자본비율 개선에는 자산 재편과 함께 회계·위험평가상의 변화도 작용했다. 우리금융그룹은 올해 유형자산 재평가 효과를 반영했고, 우리은행은 내부 신용평가모형 변경 승인을 받아 위험가중자산 부담을 낮췄다.
◆ '순이익 감소' 추세 속 올해 2분기 반등, 기업금융·자산관리로 회복세 잇는다
정 행장 취임 이후 감소한 순이익을 다시 성장세로 돌려놓는 것은 정 행장에게 남아있는 과제다.
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1조373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9% 감소했다. 정 행장의 취임 첫 해였던 2025년 연간 실적을 보더라도 순이익이 2024년 3조0393억 원에서 2025년 2조5896억 원으로 감소했다.
다만 2026년 2분기만 놓고 보면 순이익은 8421억 원으로 1분기보다 58% 넘게 증가했다.
우리금융지주는 기업금융 중심의 자산 확대와 자산관리(WM) 사업 호조로 은행 영업수익이 개선됐고, 판매관리비와 대손비용 감소도 2분기 이익 회복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자 수익성은 개선됐다. 상반기 누적 순이자마진(NIM)은 1.51%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07%포인트 높아졌다. 자산관리 부문에서는 수익증권과 신탁 수수료가 각각 88.0%, 70.6% 늘었다.
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기업대출은 지난해 말보다 4% 이상 증가했다. 다만 차주별 흐름은 달랐다. 올해 6월 말 대기업대출은 지난해 같은 시점보다 20.1%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대출은 1.7% 줄었다. 자산 구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중심으로 대출이 확대된 것이다.
우리은행은 하반기 중소기업 여신도 다시 늘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인공지능(AI)·바이오·방산 등 첨단전략산업을 지원하는 'K-Tech' 프로그램을 통해 대기업뿐 아니라 협력사와 중견·중소·벤처기업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기업 고객의 승계 수요를 새 사업으로 연결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2월 기업승계지원센터를 신설했고, 6월에는 향후 5년간 3조 원 이상을 기업승계 금융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가족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가업승계뿐 아니라 제3자 인수·합병(M&A)과 경영진 인수 등을 지원하면서 인수금융과 자문 등으로 수익 기반을 넓히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대출이 확대되는 국면에서 건전성을 관리하는 것은 과제로 남아 있다. 우리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지난해 말 0.31%에서 올해 6월 말 0.39%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기업대출의 고정이하여신비율도 0.43%에서 0.53%로 상승했다.
그룹이 은행에 주문하는 경영 방향도 수익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7월 하반기 그룹 경영전략 워크숍에서 은행의 핵심예금과 기업금융, 자산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비용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수익력 회복과 비은행 경쟁력 강화를 하반기 핵심 과제로 함께 제시한 것이다.
◆ '내부통제 보완'도 계속, 자추위 "경영능력 기반 평가"
내부통제 강화는 정 행장이 취임할 때부터 역량을 기울였던 과제다. 잇따른 금융사고로 신뢰가 흔들린 상황에서 정 행장은 2024년 은행장 후보로 추천된 뒤 내부통제 혁신과 기업문화 재정비를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영업점 핵심성과지표(KPI)에서 내부통제 위반 등에 따라 총점 1000점 가운데 최대 400점을 감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업 실적과 함께 소비자보호와 준법 여부를 영업점 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다만 외부 업체를 통한 고객정보 관리에서는 보완 과제가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3일 외부 개발업체가 보관하던 개인정보 1만7551건이 유출됐다고 밝혔다. 2024년 대체불가토큰(NFT) 플랫폼 구축 사업 과정에서 제공했던 고객 연계정보(CI)와 닉네임이었다.
우리은행은 당시 개발업체의 개인정보 관리 현황을 전수 조사해 미흡한 부분을 시정하고, 은행 자체의 개인정보 보호체계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도 데이터와 AI 활용 확대에 맞춰 정보관리 전 과정을 점검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정 행장의 첫 연임 심사는 은행 자체의 경영성과 점검 역할이 확대된 절차 안에서 진행된다.
우리금융지주는 이번부터 우리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에 경영성과 점검 절차를 신설했다. 외부 전문기관도 참여해 시장의 관점에서 경영성과를 검증하고, 승계 절차의 주요 단계별 기준과 절차도 사전에 마련하기로 했다.
우리금융지주 자추위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승계 절차 개시를 발표하면서 "대폭 개선된 절차를 기반으로 승계절차를 충실히 운영해 경영능력에 기반한 적임자를 대표로 선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