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오면 수십 포기의 김치를 담그고, 명절이면 고기와 과일을 한가득 장만하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먹을 만큼 사고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은 덜어내려는 소비가 늘고 있다.
김치는 직접 담그는 대신 '포장 김치'를 사고, 명절 음식도 필요한 만큼만 소포장으로 사거나 밀키트로 간편하게 준비한다.
포장김치 가운데 소용량 제품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컬리 홈페이지 갈무리
김치 시장에서 이런 변화가 가장 뚜렷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2025년 직접 김장을 하겠다는 응답은 62.3%로 전년보다 2.2%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상품김치를 구매하겠다는 응답은 32.5%로 3.0%포인트 증가했다. 4인 가구 기준 김장용 배추 구매량도 평년 21.2포기에서 18.3포기로 줄었다. 김치를 직접 담가 김치냉장고를 가득 채우기 보다 당장 먹을 만큼만 구매하는 가구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장철을 앞두고 완제품 김치를 찾는 수요도 확인된다. 신세계라이브쇼핑이 최근 판매한 조선호텔 겉절이 김치는 목표 판매량을 20% 초과하며 준비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판매되는 같은 제품으로 일반 홈쇼핑이나 대형마트 김치보다 가격대가 높지만 준비 물량이 모두 팔렸다.
포장김치를 고를 때도 대용량보다 소용량 제품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컬리에 따르면 올해 7~9월 포장김치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증가했다. 이 가운데 100g~1kg대 소용량 제품 거래액은 39% 늘어 전체 증가율을 웃돌았다. 2~4kg대 중간용량 제품은 26%, 5~10kg대 대용량 제품은 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포장김치 상품 수도 28% 늘었다.
명절 음식도 한꺼번에 많이 장만하기보다 필요한 양만 사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올해 추석을 앞두고 판매되는 산적용 우둔살과 양지는 과거 600g 이상 단위에서 200~300g 진공 포장으로 소분돼 판매되고 있다. 사과와 배도 5개·10개씩 담은 대용량 대신 3개들이나 낱개 상품이 등장했다. 전·나물·고기 등을 묶은 차례상 밀키트도 3~4인용 기준으로 판매되고 있다.
직접 음식을 만드는 대신 간편식으로 명절 상차림을 준비하는 소비도 늘고 있다. 컬리에 따르면 올해 설 직전 1주일간 떡국·전·불고기 등 명절 식품 밀키트 상품 수는 지난해보다 48% 증가했다. 이마트도 피코크 설 제사용품을 지난해 48종에서 올해 60종으로 확대했고, 롯데마트 역시 명절 식품 밀키트 상품 수를 올해 31% 늘렸다. 실제 이마트 피코크 전류 매출은 지난해 설에 전년보다 43% 증가했고, 튀김류 매출은 세 배 이상 늘었다.
추석에도 간편식 수요는 이어졌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추석 수산 간편 선물세트 물량을 지난해 명절보다 2배 늘렸고, HMR 선물세트 물량도 직전 명절보다 40% 확대했다. 반조리·밀키트 등 간편식 선물세트 매출은 명절마다 평균 30% 이상 증가했다. 차례상 자체도 간소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6년 추석 조사에서 올해 차례를 지낼 계획이라고 답한 가구는 27.3%였으며, 차례를 지내는 가구 가운데 50.9%는 상차림을 간소화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소비 방식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온라인 식품 구매가 일상화된 환경도 있다. 필요한 식품을 대량으로 미리 사두기보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양을 주문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8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4조2118억 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7.3% 증가했다. 음·식료품 거래액은 3조5430억 원으로 9.8%, 농축수산물은 1조3482억 원으로 15.4% 늘었다. 모바일 농축수산물 거래액도 18.4% 증가했다.
소비자가 필요한 만큼 구매하는 흐름은 도매시장에도 변화를 만들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국비 21억 원을 포함한 총 70억 원을 투입해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 저온창고와 소분·포장 작업공간을 갖춘 상품화 시설을 조성한다. 1인 가구와 밀키트 업체 등의 소분·재포장 수요가 늘었지만 시장 안에 작업공간이 부족했던 데 따른 것이다. 대량으로 반입한 농산물을 거래처 주문에 맞춰 나누고 포장해 출고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