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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그룹은 수십 년 만의 경영체제 변화라는 중대한 변곡점에서 2026년을 출발했다.

HD현대그룹은 1988년 현재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정치활동을 본격화한 뒤부터 공식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정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이 승진해 총수에 오르며 37년 만에 오너경영체제를 부활시킨 것이다.

[K-밸류업 리포트] HD현대 정기선 오너 경영제체 37년 만에 이뤘지만 '진짜 승계'는 아직, 아버지 정몽준 지분 승계 '난제'로
오너경영체제를 재개한 HD현대그룹의 정기선 회장이 지배력 강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HD현대

HD현대는 그룹의 뿌리인 조선업이 이른바 '슈퍼 사이클'을 맞이하며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을 필두로 역대급 실적을 창출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오너경영체제로 전환에서 부담을 덜 수 있는 적기라는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또 다른 3대 핵심 사업 축인 정유와 건설기계 부문에서는 정 회장의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를 넘어 정 회장의 진짜 과제는 지배력 강화에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 회장은 지주사 HD현대의 지분이 그리 높지 않다는 지배구조상의 약점을 보유하고 있다. 지주사의 지분율을 높이는 일은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풀기 어려운 마지막 난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정기선의 강한 리더십, 책임경영으로 추진력 높인다

18일 HD현대에 따르면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명예회장은 28일을 만료일로 HD현대 사내이사에서 물러난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 2019년 그룹 회장까지 오른 전문경영인이 물러나고 공식적으로 HD현대그룹에 오너3세 정기선 회장의 체제가 들어서는 것이다.

날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확고한 오너경영체제는 '책임경영' 측면에서 장점을 지닌다. 오너의 메시지 아래 사업전략의 일관성을 지니고 확실한 투자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 회장은 HD현대와 HD한국조선해양에서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에서는 미등기임원에 올라있고 HD현대사이트솔루션 대표이사에도 오를 예정이다. 지주사와 조선, 에너지에 이어 건설기계까지 3대 핵심 사업에 모두 리더십을 갖고 책임경영에 나설 채비를 갖춘 셈이다.

정 회장은 2013년 부장, 2014년 상무 승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잔뼈 굵은 전문경영인들과 함께 경영역량을 쌓아왔다. 지주사 대표이사에 오르기 이전까지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 경영지원실장, 계열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 등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경영수업을 착실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17일 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한 뒤 5개월여 동안 바쁜 날들을 보냈다. 지난해 12월 첫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2030년 매출 100조 원이라는 공격적인 목표를 내걸었고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합병도 직접 챙겼다. 이밖에 해외 일정도 다수 소화했다. 출발부터 '강한 리더십'으로 오너체제 장점에 걸맞은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총수로서 맞은 첫해인 올해 신년사에서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발을 내디딜 때는 본능적으로 실패의 두려움을 생각하게 된다"며 "그러나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주저 없이 논의하고 실행해볼 문화를 만들고 조직의 창의성과 도전을 가로막는 매너리즘과 관성에는 단호히 맞서겠다"며 구성원들에 강도 높은 실행력을 요구했다.

◆ 잘 나가는 조선-아직은 회복이 필요한 정유·건설기계, 호재와 과제 상존

증권업계의 분석을 종합하면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연결기준 매출 33조 원, 영업이익 5조4천억 원 안팎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와 비교해 매출은 10%, 영업이익은 40% 뛰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갱신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수주잔고 591억2700만 달러(약 87조9천억 원)를 들고 있다.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3년 치 일감을 확보한 것으로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 입지 등을 중심으로 향후 수년 동안 조선업 슈퍼사이클을 탈 준비를 마친 셈이다.

전력기기 호황을 타고 HD현대일렉트릭도 올해 매출 4조 원대에서 무려 영업이익 '1조 클럽'을 바라는 작지만 강한 계열사로 조선 부문과 함께 정 회장의 경영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정 회장의 과제는 다른 핵심 축인 에너지 부문의 HD현대오일뱅크와 건설기계사의 반등을 달성해야 한다는 점이 꼽힌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영업이익 474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80% 이상 오른 이익을 창출했지만 30조 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고려하면 곳곳에 과제가 산적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미국-이란 전쟁에서 불거진 정유업의 불확실성을 친환경 전환으로 극복해야 하는 점, 석유화학 사업부문은 업계 구조개편을 통해 반전의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 등이 과제로 꼽힌다.

건설기계 부문은 두 사업회사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의 합병 이후 첫해라는 의미가 크다. 글로벌 업황 회복세에 맞춰 두 회사의 시너지를 낸다는 측면에서 실질적 성과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올해부터 건설기계 중간지주사 HD현대사이트솔루션 대표에 올라 사업을 직접 챙기게 된다.

정 회장은 친환경 선박 기술 경쟁력 확보, 스마트조선소로 전환, AX(인공지능 전환) 등 회사의 미래 중장기 체질개선에 나서야 하는 숙제도 오너경영인으로서 짊어지고 있다. 정 회장이 과거 지주사 경영지원실장을 맡으며 그룹의 신사업뿐 아니라 AI, 디지털 전환을 총괄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부분도 정 회장의 실질적 공과로 분류된다.

◆ 진짜 승계는 아직, 정몽준 이사장의 26.6% 받기 위한 대규모 실탄확보는 어떻게

오랜 기간 그룹 전반의 경영에 참여하면서 큰 잡음 없이 총수에 오른 정 회장이지만 승계와 관련해 마지막 허들이 남아 있다. 바로 지주사 HD현대 지배력을 높이는 것이다. 지배구조 최상단에 확실한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승계를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오너가 그룹에 변수 없이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한 지분율은 최소 20% 이상, 안정권은 30%로 여겨진다.

현재 정 회장은 HD현대 주식 483만7985주를 들고 있다. 지분율은 6.12%로 아직 지분까지 승계가 완성됐다고 보기에는 크게 부족한 수치다.

아버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보유한 HD현대 주식은 2101만1330주(26.60%)다. 아버지의 주식을 증여 등의 방법으로 취득한다면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는 문제없는 수준이지만 이를 위해 현금이 대거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18일 종가(27만5500원) 기준으로 정 이사장이 들고 있는 HD현대 주식의 가치는 5조7886억 원에 이른다. 현행 증여·상속세법에 따른 최대 세율 60%를 적용하면 세금 납부를 위해 필요한 자금만 3조 원이 훌쩍 넘어간다.

정 회장은 현재 HD현대 주식 이외에는 다른 계열사 주식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HD현대의 배당이 주요 자금줄인 셈인데 배당금만으로는 정 이사장의 HD현대 주식을 물려 받기도, 직접 HD현대 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을 높이기에도 크게 부족한 것으로 분석된다.

HD현대는 지난해 1, 2, 3분기 각각 900원, 결산배당으로 1300원을 합쳐 1주당 4천 원을 배당했다. 정 회장이 배당금으로 수령하는 금액은 194억 원가량이다. 앞으로 배당이 크게 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지분 확대 재원에 모자라는 규모다.

HD현대그룹은 정 회장이 오너경영체제를 갖췄고 형제끼리의 지분 다툼 등이 없다. 굳이 지분 승계에 급하게 나서야 할 필요가 당장은 적다는 의미다. 다만 결국 HD현대 지분율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서 정 회장의 고민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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