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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1일 12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31일 14시 12분 KST

헌법재판소가 놓친 것

헌법재판소가 놓친 것이 한 가지 있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고민했던 지역의 평등한 대표성이다. 단순히 인구수에 비례하여 대표를 선출하게 되면 인구수가 많은 지역의 이해관계는 국가의사 결정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반면에 인구수가 적은 지역의 이해관계는 그렇지 못하게 된다.

연합뉴스

18세기 말, 북미 대륙의 영국 식민지들이 모여 통일된 미합중국을 건설하고자 헌법을 만들면서 가장 걱정한 것은 인구수가 적은 주(state)들의 이익이 충분히 대표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고안해낸 것이 양원제다. 미국의 의회(Congress)는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의 경우 인구수에 비례하여 의원을 선출하고, 상원(Senate)의 경우 인구수와 상관없이 동일한 수의 의원을 선출한다. 각 주의 이해관계가 국가의사 결정과정에서 평등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각 주가 동일한 수의 의원으로 대표되는 상원제도를 고안한 것이다. 예컨대 현재 하원의원수는 인구수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가 53명이고 인구수가 적은 알래스카나 델라웨어는 1명에 불과하지만 모든 주의 상원의원수는 동일하게 2명이다.

헌법재판소는 선거구의 인구수에서 최대선거구와 최소선거구의 비율이 2:1을 넘어서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하였다. 전체 인구수를 선거구수로 나누어 한 선거구의 평균인구수를 100으로 환산했을 때 상하의 편차가 33.3퍼센트, 다시 말해 최대선거구는 133.3, 최소선거구는 66.7을 넘지 않아서 양쪽의 비율이 적어도 2:1을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헌법재판소가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선거권의 평등이다.

평등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공식에 따라 비교대상이 동일하면 동등한 대우를 하고, 비교대상이 상이하면 차등적 대우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19세 이상의 성인은 선거권을 가지는데 적어도 선거권의 부여에서 선거권자는 차이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선거권은 누구에게나 한 표다. 하지만 인구수가 10만인 선거구와 30만인 선거구에 사는 주민이 행사하는 선거권의 실질적 가치는 3배의 차이가 난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인구밀도를 고려하여 절충점으로 2:1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됐든 선거권의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선거구의 인구수가 거의 같아질 수 있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놓친 것이 한 가지 있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고민했던 지역의 평등한 대표성이다. 단순히 인구수에 비례하여 대표를 선출하게 되면 인구수가 많은 지역의 이해관계는 국가의사 결정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반면에 인구수가 적은 지역의 이해관계는 그렇지 못하게 된다. 국가 전체에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를 평등하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인구비례에 따라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지역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평등하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의 인구수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지역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평등의 논리를 일관되게 유지하려면 지역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상원의 설치를 전제조건으로 달았어야 한다.

한국 헌법상 상원은 없지만 지방자치제도가 보장되어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분산이라는 의미에서 완전한 권력분립을 실현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중요한 의사결정권한은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방자치단체의 독립성은 미국이나 독일과 같은 연방국가에서 각 주가 가지는 독립성과 비교할 수 없다. 연방국가가 아닌 국가에서 지역의 이익은 충분히 대표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연방국가가 아닌 일본도 지역의 이익이 대표될 수 있도록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을 가지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선거구의 인구비율이 2:1이 넘지 않도록 요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고, 심지어 1:1에 가까울수록 이상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한 선거구에서 2~3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는 투표의 실질적 가치를 불평등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동의할 수 없다. 어쨌든 인구비례에 따른 선거구획정의 대전제는 인구수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모든 지역의 이익이 평등하게 대표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안은 지역의 이익을 평등하게 대표하는 양원제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