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4년 05월 16일 05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7월 16일 14시 12분 KST

어느 장례식

모든 사람은 언젠가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이렇게 보편적 사건인 죽음을 기억하는 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규례를 담고 있지 않은 듯하다. 자식이 상주가 되는 장례제도는 결혼한 사람, 그것도 자식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고안되어 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처럼 세상에 오는 순서대로 가는 것도 아닌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는 상주가 아니라 죄인이 된다. 조문객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해야 하고, 밤을 새우며 빈소를 지켜야 하는 관습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만큼 유족의 마음에는 여유가 남아 있지 않다.

한 살 위의 처남이 세상을 떠났다. 아내도 자식도 없이 떠난 이름 없는 범부(凡夫) 의 오십 년 생애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형과 조카가 상주가 되고, 팔십을 넘긴 늙은 부모는 죄인이라도 된 듯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다. 늙은 부모가 다니던 교회에서 교인들이 찾아와 생전에 교회 문 앞에도 가보지 않았던 망자(亡者)를 위하여 예배를 진행한다.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 바로 옆에는 큰 방이 있고, 유족들은 이곳에서 이틀 밤을 노숙하듯 잠을 청한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이렇게 보편적 사건인 죽음을 기억하는 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규례를 담고 있지 않은 듯하다. 자식이 상주가 되는 장례제도는 결혼한 사람, 그것도 자식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고안되어 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처럼 세상에 오는 순서대로 가는 것도 아닌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는 상주가 아니라 죄인이 된다. 조문객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해야 하고, 밤을 새우며 빈소를 지켜야 하는 관습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만큼 유족의 마음에는 여유가 남아 있지 않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지병이 있던 처남은 5년 전 자신의 장례를 위하여 상조회에 가입해 놓았다. 그가 이미 완불한 수백만원의 회비로 장례절차는 상조회에서 나온 직원이 진행한다. 장례가 다 끝나고 장례식장 사용에 소요된 또 다른 수백만원은 빈소를 찾은 조문객의 부의금(賻儀金)으로 충당된다. 죽음의 의식을 진행하기 위하여 이렇게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돈이 없으면 제대로 죽을 수도 없을 것 같다는 불편한 상념이 스친다. 죽음의 의식마저 상업화된 현실 때문에 망자에게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는 산 자들의 부담은 커져만 간다. 죽음이 누구나 경험해야 할 보편적 사건이라면 사회보험을 만들어서라도 장례의 절차와 비용을 합리화하여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장례의식이 보장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식이 없이 떠난 아들을 생각하여 늙은 부모는 화장(火葬)을 선택했다. 시립 화장시설에서 6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한 시간 반쯤 걸린 화장이 끝나자 범부의 몸은 한 줌 재로 남는다. 생전에 망자가 좋아했던 바다에 유골을 뿌리고자 했던 계획은 불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취소되었다. 화장한 유골은 표지를 남기기 원하면 작은 함에 담아 안장한 뒤 묘비를 만들거나 추모관이라고도 부르는 납골당에 안치하면 된다는 직원의 설명을 듣는다. 표지마저 남기기 원하지 않는다면 나무 밑에 유골함을 안장하는 수목장(樹木葬)을 선택하거나 화장시설 뒤에 위치한 산에 흩뿌려야 된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유족들은 수목장을 선택하고 망자를 가슴에 묻기로 결정한다. 세상에 올 때는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오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모두 다른 모습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상조회 직원이 안내한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은 뒤 유족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헤어졌다. 생전에 오빠가 혼자 지내던 아파트를 자신이 정리해야 된다며 아내는 늙은 어머니와 서둘러 나간다. 집을 정리하고 돌아온 아내는 자신의 질병을 견디며 혼자 살아온 오빠의 고단한 삶을 회상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회한이 밀려온 듯 소리 내어 운다. 아픈 몸을 누이던 작은 아파트를 조카들의 학비로 사용해 달라는 유언이 담긴 핸드폰 메시지를 읽으며 아내는 또 다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이들과 함께 저녁 늦게 집으로 올라오는 기차에서도 아내는 연신 눈물을 훔친다. 망자는 한 줌 재로 남았지만 산 자들의 슬픔은 태산보다 크다. 죽음의 의식을 바라보며 삶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해져야 하겠다는 다짐도 조만간 바쁜 일상에 묻혀 잊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