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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26일 07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26일 14시 12분 KST

과연 군사문화일까

군대는 상당히 변했는데도 사회의 부조리는 그대로거나 더 심화된다면 이를 '군사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십대, 이십대 초반, 그리고 여성들이 '군사문화'라고 불릴 만한 행위들을 하는 걸 순전히 예비역들을 보고 배웠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가 무슨 군대냐"란 표현은 여전히 관성적으로 사용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인간관계들이 군대생활에 집약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Shutterstock / Rafal Olkis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열위에 있는 사람을 다앙한 방식으로 괴롭힐 때 우리는 흔히 '군기잡다'라는 표현을 쓴다. 이 표현엔 우리 사회 다양한 영역의 각종 부조리의 근원이 군대라는 암묵적 합의가 숨어 있는 듯도 하다. 여기에 더해, 한국군의 부조리의 근원을 '대일본제국의 황군'으로 소급하면 사회부조리 일반을 일제 잔제의 탓으로 돌리는 완벽한(?) 논리가 생성된다.

군인들이 오랫동안 정치권력을 소유했고 여전히 성인 남성 일반이 징병의 의무를 지닌 나라에서 이런 견해에 선뜻 반론을 제기하기는 어렵다. 확실히 '군기잡다'나 '내리갈굼' 같은 표현과 현상은 한국의 '사회생활'에서 어디서나 발견되지만 역시 군생활 경험에서 그 전형성이 보인다. 군대를 만악의 근원으로 보는 시선이 심정적으로 강렬한 설득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이 손쉬운 설명에서 무언가 미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최초의 의구심은 바로 2000년대 중반에 경험한 그 군생활에서 자라났다. 한 고참이 대학에서 하던 것만큼 군대 후임들을 대할 수 없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군대는 상당히 변했는데도 사회의 부조리는 그대로거나 더 심화된다면 이를 '군사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십대, 이십대 초반, 그리고 여성들이 '군사문화'라고 불릴 만한 행위들을 하는 걸 순전히 예비역들을 보고 배웠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가 무슨 군대냐"란 표현은 여전히 관성적으로 사용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인간관계들이 군대생활에 집약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군생활은 시기별로 부대별로, 그리고 어떤 간부나 고참을 만나느냐에 따라 제각각이다. 그러나 징병제 사병들은 간부에 대해 오히려 간부사회 내부의 위계서열보다는 나은 수준의 자율성을 누리기도 한다. 복무기간을 채우면 나가기 때문에 꿀릴 게 없고 복무기간 중엔 나가라고 할 수도 없다. '큰 조직'에서 발휘되는 일말의 합리성이 발휘될 여지가 있다. 최근 들어 군내 사건·사고가 언론에 많이 부각됐지만, 사고자와 자살자를 합친 연간 사망자 수를 보면 문제가 극적으로 악화됐다기보다는 더 자주 보도되기 시작한 쪽에 가깝다. 2000년대 중반 100명대 초반으로까지 떨어진 연간 사망자 수는 보수정부하에서도 유지되는 중이다.

물론 방금 말한 '큰 조직'의 합리성은 소수 인원이 격리되어 생활하는 다양한 형태의 부대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문제는 군생활과 별개로 우리 사회의 다른 '사회생활' 역시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작은 규모의 독립된 조직에서 우위에 있는 이들의 권한은 섬뜩할 정도다. 그리고 정작 군대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까지는 개선되는 동안 이들의 질서는 요지부동이었다. 대학가 선배들의 패악질도 십여년 전에 비해 개선된 부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군대가 조직의 본보기였던 세상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나마 만들어진 공동체에 대한 환상이 존재했다. 국가권력이 가장 힘센 깡패 노릇을 할 때 우리는 독재자만 두려워하면 된다고 착각했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통합진보당처럼 그들이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집단을 해산하면서 그 환상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독재자와 군대가 물러앉은 곳에 들어선 것은 자신의 조그만 영역에서 어떻게든 사람을 뜯어먹어 이문을 남기려 드는 수많은 '갑'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 질서에서 우리가 '피해자'에 속한다는 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군기를 잡는다'. 그렇다면 이제 이것은 군사문화도 아닌 게 아닐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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