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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8일 05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28일 14시 12분 KST

통일준비를 위한 오늘의 과제 | 남북관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한반도에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던 2010년 4월 3일, 탈북주민 리혁철은 연평도에서 배를 훔쳐서 북으로 탈출했다. 탈출시도 15분쯤 후 그 배 주인이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고 설득하니까 그는, "개OO야, 내가 거기 있었을 때 잘 해주었어야지..."라고 전화기에 대고 외쳤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탈북민들이 남쪽에서 어떻게 제대로 대우 못 받고 2등 시민으로 살고 있는지 그 고통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한국 주도의 통일은 북한주민들이 별로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탈북민에 대한 심도 깊고 체계적인 지원 사업은 시간 걸리고 생색 안 나지만 필수적인 통일준비 작업이다.

연합뉴스

1. 통일을 향한 구심력을 강화해나가야

현 국제정세는 상승 대국 중국과 기존 대국 미국 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국면이다. 이와 함께, 중국-일본 간의, 그리고 미국-러시아 간의 갈등 수위도 높다. 한반도의 통일을 주도할 당사자는 우리지만, 주변 4국들의 협조가 긴요하기 때문에 이들 간의 불신과 긴장은 통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예를 들어, 동맹국인 미국과 이웃 경제대국인 중국이 서로 협력하기보다 갈등한다면 한반도 통일을 놓고서도 상호간에 의심과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결국, 통일을 어렵게 만드는 국제정치적 원심력이 강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한다면 대국들 간의 갈등의 권력게임 속에서 남북한이 아무 생각 없이 표류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의 통일을 가능하게 해줄 한반도 내부차원의 구심력을 주도적으로 강화시켜나가야 한다. 즉 남과 북의 주민들 간에 연결고리가 두터워지고, 또 가능하다면 정치지도자들 간에도 협력이 이뤄져야 그러한 구심력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대북정책은 통일을 향한 한반도 내부의 구심력을 강화하여 현상유지 방향으로 작동하는 국제적 원심력을 압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다음과 같은 대북정책 방향이 바람직하다.

2. 이제는 경협이라는 한방요법을 동원하여 핵 중심 양방 처방을 보강해야

북한문제는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이다. 북한의 핵, 경제, 외교, 인권, 국제안보 문제들은 따로 노는 별개의 문제들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문제다. 어느 한 문제만 따로 떼어내 그것만 해결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북한 문제를 주로 안보문제로만 보고 협상을 해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그 사례가 1994년 10월의 제네바합의였다. 제네바합의는 1차 북핵위기를 동결시킨 미북 간의 합의였으나 핵이라는 안보차원 이외의 다른 영역에서, 특히 미북간 정치관계에서 질적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불신이 쌓이고 결국 2002년 2차위기가 재발한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 핵에만 집중하는 경제제재를 곁들인 협상은 북한이 앓고 있는 병의 겉으로 드러난 증세에만 집중하는 대증요법이자 양방요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간 그러한 양방요법이 제대로 듣지 않고 계속 증상이 악화되고 있다면 이제는 양방과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환자의 체질을 개선하는 한방처방을 추가적으로 시도할 수밖에 없다.

한방처방의 본질은 비 군사안보 영역에서 남북 간의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는 북한주민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목표이다. 이제까지 대북정책은 주로 북한 정부만을 상대로 해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디디고 서있는 인간존중의 기본적인 가치를 고려할 때 대북정책의 기본정신은 평화유지와 함께 북한 주민의 인간적 삶의 개선이어야 할 것이다. 안보분야에서 비핵화와 평화유지를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하되, 안보이외의 분야에서는 북한주민의 삶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상호협력 분야를 넓혀가자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이념 논쟁이 앞서고 가장 본질적인 목표인 북한 주민의 삶은 정작 뒤로 밀리는, 본말이 전도되는 양상이 전개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대북정책에서 북한 주민, 즉 '사람'의 측면이 크게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북한과 한국, 그리고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접촉의 면이 넓어지고 연계채널이 많아지도록 하는 지경학적(地經學的)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네트워크 안에 진입하여 그 안에 엮이어질수록 중장기적으로 북한 정치경제의 체질도 국제화될 것이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면 될수록 점차 국제적 행동기준과 규범을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해서도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의 북한 비핵화 외교의 핵심은 경제제재였다. 문제는 그러한 경제제재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제재의 핵심은 이미 존재하는 쌍방 간의 상호의존의 연결고리를 끊어 상대방이 그 혜택을 보지 못하게 피해를 주어서 그쪽의 정책을 바꾸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철저하게 고립되어왔기 때문에, 즉 서방측과의 상호의존의 연결고리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제재의 효과가 미약했던 것이다. 더구나 북한과 경제관계가 상대적으로 깊었던 중국은 북한의 체제유지가 우선 순위여서 대북 경제제재에는 미온적이었다.

이것이 리비아의 핵 포기나 최근 이란의 핵협상의 경우와 북한이 다른 이유이다. 리비아는 석유수출로 대외경제관계가 깊었기에 제재로 인한 비용이 핵개발로 인한 이득보다 커졌다고 판단하여 카다피(Muammar al Gaddafi)가 2003년 핵개발을 포기했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이란도 석유수출 등 대외경제관계가 넓고 깊어 경제제재의 효과가 컸고 그래서 온건파 대통령 하산 로우하니(Hassan Rouhani)가 2013년 대통령에 선출된 뒤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본격적인 핵협상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북한과 경제교류 심화를 통해 상호의존의 연결고리를 심화해나감으로써 비핵화를 위한 대북협상 레버리지를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최근 진행되어온 북한 내부의 변화가 이러한 지경학적 접근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북한 경제는 이미 상당한 대외의존형 경제로 변했고 무역이 없으면 북한 기업의 활동도 힘들고 그 경우 정부의 재정수입이 줄어 북한체제 유지가 힘든 상황에까지 와있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교수는 북한은 이미 "시장이 주민의 생명줄이요, 무역은 북한정권의 생명줄"인 상태에 까지 왔다고 진단한다. 그러한 사정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도 "발은 튼튼히 땅위에 디디되 눈은 세계를 향해야한다"고 말했을 것이고 김정은 제1위원장도 경제개발에 집중하려 하고 있다. 북한 사회내부의 이 같은 시장화 개방화의 동력을 더욱 키워주고 가속화시키는 방향으로, 그리하여 바깥세계와 경제적 상호의존의 네트워크 안에 북한이 엮어지도록 하는 것이 대북정책의 방향이어야 한다. 그 같은 상호의존의 네트워크가 강화될수록 어느 순간에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을 지키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바꾸어 말해 핵보유에 대한 북한당국의 손익계산도 달라지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구실로 북핵에 대해서 손 놓고 있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같은 맥락에서 대북정책의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그러한 대북정책은 원칙과 포용협력이 병행 조화되는 대북정책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북한당국이 시장경제원리를 경제제도와 관행에 더욱 반영하는 방향으로 경제협력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당국이 시장원리와 관행을 더욱 지키는 방향으로 협조하도록 하면서 개성공단과 유사한 프로젝트도 확대 추진하고 북한이 발표한 경제특구에도 투자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북한당국이 모니터링에 협력하도록 하면서 대북 식량지원 등 인도주의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비정치적이고 기술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중요한 환경협력, 북한 주민의 질병 구제를 위한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도 대대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미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북한 문제를 핵 문제로만, 즉 안보문제로만 국한시켜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미국 정계내의 보수파 의원들의 경우가 그랬는데 그 같은 접근법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 따라서 대북정책의 핵심중 하나는 어떻게 그동안 양방처방에만 집중해온 미국과 주변국들로 하여금 한방처방을 추가적으로 채택하도록 설득할 것이냐 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처럼 북핵문제를 미국 주도에 맡겨놓고 한국이 수동적으로 뒤따라가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이 주도해서 큰 대북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이것을 미중과 협의하면서 시행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나갈 수 있는 한국 정부의 국내정치적, 외교적 입지가 2013년 이래 상당히 강화되었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진보적 대북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보수적 대북정책을 경험한 이후 균형 잡힌 대북정책을 원하고 있다. 즉 국민들의 여론자체가 과거보다 균형을 갖고 중도 실용주의적 방향으로 수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정부의 경우 앞에서 설명한 지경학적 대북정책의 기조를 유지해가면서 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북한과 협상해나간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국내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었다고 말한 이유이다. 또한 외교적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2009년 이래 북한의 행태에 지쳐있을 뿐만 아니라 공화당 보수파들 때문에 과거 클린턴 정부에서처럼 전향적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나서기가 힘든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애초부터 남북한 협력을 촉구해왔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주도하는 남북협력을 환영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기회를 활용할 시간이 소진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에도 집권초기 2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놓쳐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현 정부도 아마 내년 상반기를 넘어서면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색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정치적 동력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금 정치적 결단을 내리고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우방과 협조를 모색하면서 남북관계를 주도해나갈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3. 통일이후 통합에 대비한 준비 작업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국 정부가 성공적 통일외교를 해서 정치적 제도적 통일을 이루어냈다고 하더라도, 그 후의 남북한 주민들 간의 통합이 원만히 이루어지지 못하면 그 통일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간의 통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최소한 한두 세대가 걸리는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통일을 원한다면 그러한 통합을 위한 사전 노력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지금 이 시점에서마저도 미비하기 짝이 없다.

그러한 통합을 위한 사전 준비노력은 여러 분야에서 시급하지만 우선 중요한 과제 하나만 들라면 그것은 탈북주민들의 한국 사회 정착에 대한 연구와 지원을 보다 체계적으로 강화해야한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2만 7천 탈북주민들의 취업지원, 교육지원, 심리적 적응 지원 등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져야만 한다. 이들이 전혀 체제가 다른 민주주의 시장경제하에서 어떻게 성공적으로 적응하도록 지원할 것인지 보다 지금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들을 개발해내야 할 것이다. 남북협력 사업에 쓰지 않고 남은 자금이 있다면 이를 이러한 부문에 집중 투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지역에서의 경력과 교육 경험 등을 고려하여 맞춤형 직업훈련, 취업지원 등이 필요하고, 대학입학 후에도 학력이 부족하여 공부를 따라가기 힘든 점을 고려하여 정부가 탈북청소년에 대한 특별 보충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던 2010년 4월 3일, 탈북주민 리혁철은 연평도에서 배를 훔쳐서 북으로 탈출했다. 탈출시도 15분쯤 후 그 배 주인이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고 설득하니까 그는, "개OO야, 내가 거기 있었을 때 잘 해주었어야지..."라고 전화기에 대고 외쳤다고 한다. 연세대 존 들러리(John Delury)교수가 권위 있는 학술잡지 포린어페어(Foreign Affairs)지 작년 7-8월호에서 인용한 이야기다. 북한 주민들은 탈북민들이 남쪽에서 어떻게 제대로 대우 못 받고 2등 시민으로 살고 있는지 그 고통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한국 주도의 통일은 북한주민들이 별로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탈북민에 대한 심도 깊고 체계적인 지원 사업은 시간 걸리고 생색 안 나지만 필수적인 통일준비 작업이다. 통일되면 2500만 북한주민이 동일한 과정을 거쳐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대박론'을 공허한 수사가 아니라 내용 있는 실천적 미래비전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이러한 일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를 제안한다.

<현대경제연구원주최, 한반도경제포럼, 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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