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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9일 12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29일 14시 12분 KST

스타워즈 | 흑인과 여성이 주연인 블록버스터 영화가 주는 의의

지난주에 한창 화제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을 보았다. 나야 이 시리즈의 오랜 팬이니까 한 장면 장면마다 열광을 하면서 재미있게 보았고 전작의 주역인 한 솔로, 레아, 루크가 나왔을 땐 거의 울 뻔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이 에피소드 7이 시리즈를 부활시킨 훌륭한 작품이라고 스스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금 친구들이나 주요 SNS에서도 이 스타워즈 에피소드 7에 대한 이야기가 뜨겁다. 어떤 사람은 정말 재미없어서 지루했다느니 말이 많은데 우리나라가 SF의 불모지인 만큼 썩 좋은 평가가 나오진 않을 거 같다고 예전부터 생각하긴 했으니 뭐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 좀 다른 이야기다. 이번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의 주연은 여느 블록버스터 영화들과는 좀 많이 달랐다. 이야기의 주가 되는 주연은 핀과 레이로 이 두 캐릭터의 배우는 흑인 배우인 존 보예가와 여성 배우인 데이지 리들리다. 이거 대단하지 않은가?

무엇이 대단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기억을 되돌려 그간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흑인과 여성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떠올려 보자. 항상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백인 남성이었고 여성은 그저 몸매를 부각시키거나 백인 남성 주인공의 도움을 받거나 구출받는 역할이었으며 흑인은 그저 개그 캐릭터 혹은 영화에서 제일 먼저 죽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스타워즈 에피소드 7은 그런 캐릭터 구도를 완전히 반전시켜서 흑인과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이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끌어나가게 했다.

star wars

더군다나 흑인과 여성캐릭터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들에게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캐릭터성까지 부여했다. 그 대표적인 예이자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바로 퍼스트 오더의 공습에서 탈출하려고 할 때 핀이 레이의 손을 잡고 뛰려고 하자 레이가 그 손을 계속 뿌리치는 장면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들이 여자 캐릭터의 손을 잡고 같이 뛰는 모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레이는 그런 손을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 뛰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 마이...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이 보여도 정말 대단하다 싶은 것은 암묵적인 차별을 정면으로 뒤집은 배역과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당장 개봉 전에 광선검을 든 핀의 스틸컷과 예고편이 공개되자 몇몇 머저리들은 '흑인 캐릭터가 광선검을 들다니 말이 안된다', '설정에 맞지 않는다', '흑인이 나온 스타워즈를 보이콧하겠다'라며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란 것을 커밍아웃할 정도였다.

요새야 흑인과 여성이 주연인 영화들이 좀 보이긴 해도 블록버스터 레벨에서 흑인과 여성에게 주역을 주고 백인 남성은 그 주변부를 차지한 영화를 보기란 여전히 어렵다. 백인 남성이 주역이 아니면 보고 싶지 않다는 암묵적인 차별이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도전은 놀라운 부분이며 칭찬할 만하다 할 수 있다. 물론 독립적이고 강력한 여성 캐릭터는 이미 올해 중반에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가 보여준 바 있지만 여기에 흑인 캐릭터까지 주역으로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이번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처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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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우리 중에 블록버스터의 주역을 백인 남자가 맡는 것에 의문을 가져본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백인 남자만이 주연을 맡고 핵심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본 사람은 굉장히 드물 것이다. 왜냐면 늘 그래왔으니까. 이 글을 쓰는 나도 이번 <깨어난 포스>를 보다 보니 눈에 띄어서 생각해보게 된 것이지 그 이전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차별이란 게 별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에 인식이 되지 않으면 그것을 차별이라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왜냐면 늘 그래왔기 때문에 이것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차별은 도처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차별을 우리가 차별이라 느끼지 않는 것은 '늘 그래왔기 때문'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200년 전 까지만 해도 흑인이 노예로 일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늘 그래왔었으니까. 100년 전 까지만 해도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고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것은 허용했다간 사회가 무너지고 국가가 무너질 아주 큰일 날 일이었다. 왜냐하면 여성이 투표권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그 이전까지 여성은 남편의 소유물에 불과했었기 때문이다.

올 한해 헐리우드를 달궜던 'Equal Pay Act'도 마찬가지다. 소니 해킹사태로 드러난 남녀 배우의 임금차가 드러나면서 제니퍼 로렌스 등의 배우들이 앞장 서서 이에 대해 비판하고 나선 것인데 할리우드 급여 담당자들은 아마 이 일이 터지기 전까지 아무런 문제를 못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의 주류에 속한데다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세상은 별 차별 없이 제법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의심을 가지고 시각을 달리 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 그때부터 그 동안 내가 인지도 하지 못하고 있던 보이지 않던 차별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것이 스타워즈라는 시리즈였기에 가능했던 큰 변화가 아닌가 싶다. 스타워즈란 거대 팬덤을 깔고 있는 영화이기에 내용에서 일정 이상의 퀄리티만 낼 수 있다면 팬들로 하여금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시도가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를 본 팬이라면 당연히 다음 에피소드 8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며 에피소드 8에서 활약을 펼칠 핀과 레이의 모습(더불어 루크 스카이워커의 모습도)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란 바로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암묵적으로 차별을 통해 주지 않았던 핵심 배역을 마이너리티라 할 수 있는 이들도 맡게 되고 그것이 우리의 눈에 익숙해지게 되면서 결국에 보이지 않았던 암묵적 차별도 점점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은 그에 대해 인식을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스타워즈의 이번 새 시리즈, 깨어난 포스는 그런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던 것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배역이자 그러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성공시켰다는 점은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게 만들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에피소드 7은 바로 그런 영화다.


덧붙임. 그럼에도 불구하고(더군다나 내가 스타워즈의 골수팬임에도 불구하고) 올 한해 최고의 영화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였고 최고의 캐릭터 또한 퓨리오사라고 생각함을 고백한다. 퓨리오사는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강한 캐릭터 그 자체였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