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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7일 07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7일 14시 12분 KST

두산 '20대 명퇴 사태'가 의미하는 것

doosancapital

모든 일에는 트리거가 있기 마련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조짐은 2007년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였지만 그 거대한 불황의 시작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에서 비롯되었다.

마찬가지로 두산 그룹이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실제로 과거 기사를 보면 평사원-대리급의 명퇴도 받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이 유독 지금에서야 이슈화가 된 것에는 트리거가 지금에서야 당겨졌기 때문이다. 그 트리거는 블라인드란 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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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라는 앱이 무엇이냐면 동일 그룹, 동일 회사 종사자간의 커뮤니티 앱이라고 보면 된다. 그 안에서 같은 회사 사람들끼리 익명으로 여러가지를 이야기 하고 노는 곳인데 익명의 특성상 회사에 대한 다양한 불만들과 먹고 사는 이야기들이 주로 오르내리는 편이다. 사실 사내 인트라넷의 익명게시판들이 껍데기만 익명이란 것을 감안하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인 셈이다.

이번 두산의 명퇴(사실상 강제퇴직)에 신입사원까지 포함하는 규모로 시행을 하자 이에 당연히 젊은 사원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블라인드 앱에서 제대로 폭발한 것이다. 회사의 윗선 노땅들이야 이런 앱의 존재 자체도 모르기 때문에 과거에 그래왔던 것처럼 진행을 해버리면 파편화된 개인들이 불만을 가져도 어차피 크게 공론화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진행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로 시대가 바뀌었다. 사내 비밀게시판이야 불만 글 게시자 찾아내서 불만을 누르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다 사내게시판이라는 특성상 외부로 공론화 되기가 어렵지만 블라인드는 진짜 익명이고 회사가 손쓸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오퍼레이션 리스크, 그 중에서도 평판 리스크가 크게 증가하게 된 셈이다.

특히나 신입 직원들까지 명퇴 대상이란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이고 공분을 사기에 딱 좋은 소재거리다. 하지만 이전까지 이슈화가 되지 않았던 것은 몇몇 언론에서만 작게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고 기사의 특성상 굉장히 건조하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크게 화제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위의 저 캡쳐가 돌아다니게 되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저 블라인드의 캡처 속에서는 퇴직 대상자들의 불안과 분노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그것을 읽는 사람도 그 감정에 공감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캡처가 빠른 전파가 특징인 SNS와 어우러져 수많은 사람에게 노출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다 같이 분노하게 됨으로 정말 엄청나게 이슈화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그룹 회장님이 활발한 SNS 활동과 소통을 통해 본인과 그룹 인지도를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한국 기업문화 특유의 권위주의로 불합리한 지시를 하고 불만이야 적당히 찍어누르고 쉬쉬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나 블라인드와 같은 기업의 관리 영역 밖에 있는 익명커뮤니티의 존재는 이러한 불만을 컨트롤 할 수 없게 만든 셈이다.

과거까지만 해도 기업의 평판리스크는 고객들만 적당히 커버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직원들이 기업에 대해 가지는 생각도 그대로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만큼 임원급 이상들은 고민이 늘어나게 되었다. 과거처럼 권위주의로 찍어 누르다간 역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퇴직 사태로 두산은 그간 쌓아온 기업 이미지를 크게 깎아먹었다. 이제 와서 공론화 되니까 신입사원은 희망퇴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기사를 발표했지만 정말 딱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렇게 퇴직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과연 제외된 신입사원들이 좋아할까? 이렇게 쉽게 버려질 수 있단 것을 알게 된 이상 하루라도 빨리 그곳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한 이렇게나 쉽게 버려질 수 있단 것을 모두가 알게 된 이상 누가 그 회사를 가고 싶어할까? 가더라도 최대한 빨리 발판삼아 그곳을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두산은 비용절감 해보고자 신입사원까지 퇴직 대상을 넓힌 것이겠지만 그 비용 좀 깎아보자고 이미지를 무너뜨렸으며 직원들의 로열티도 무너뜨렸고 모두가 기피하는 기업으로 꼽히게 생겼다.

모르긴 몰라도 이 여파로 두산 그룹은 장기적으로 잠재 성장성을 다 깎아먹지 않았을까 싶다. 성장의 3대축은 자본, 노동, 혁신인데 뛰어난 노동을 탈출하게 만들 유인을 만든 것도 모자라 유입을 기피할 유인 또한 만들었으니 한동안 제대로 굴러가긴 어렵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그간 평판 리스크는 비교적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다. 아무리 개인미디어의 발달로 개인의 발언력과 영향력이 커졌다 하더라도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며 기업 입장에서는 적당한 입막음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이때까진 신경 쓰지도 않고 있었던 내부 평판 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과거처럼 내부 일은 내부자만 알고 넘어가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두산 그룹은 경영뿐만 아니라 리스크 관리에서도 처참한 실패를 기록한 셈이다.

덧붙여 이것은 두산그룹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회사의 고위직들은 휘하의 직원들이 회사에 애정도 없고 야근을 기피하고 회식문화를 싫어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본인들이야 회사가 본인의 인생을 책임져주고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게 했으니 자신들과 같지 않은 휘하 '요즘 직원'들에 불만이 많은 거겠지만 명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한 지금의 직원들은 그 정도로 회사에 애정을 가질 이유가 적기 때문에 그것을 따를 유인이 적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기업에 들어가면 '적어도 10년은 다닐 수 있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적어도 차과장급은 되어야 대상 범위에 들어갈 테니 못해도 10년은 회사가 책임져 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온 것이다. 그러나 두산의 이번 퇴직 사태는 사람들에게 '1년조차 보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란 것을 머리 속에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걸로 '요즘 직원'들은 전보다 더 개인 커리어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회사가 직원을 초개처럼 내칠 수 있단 것을 안 이상 '팀의 단합'이 명분인 회식은 불필요한 것이고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한' 불필요한 야근은 감내할 이유가 적어졌다. 이걸로 철저히 개인의 커리어와 삶을 추구해야 할 유인은 늘어났다. 과거처럼 회사에 로열티를 가져야 할 명분이 사라진 마당에 기업은 직원들에게 로열티를 요구할 수 있을까? 로열티를 가지지 못하는 직원들이 터트리는 불만은 전보다 과거보다 쉽게 공론화 될 것이다. 이로 인해 깎여 나가는 평판을 기업들에게 있어 더 큰 리스크가 될 것이다. 두산의 이번 퇴직 사태는 그런 부분에서 일종의 트리거가 될지도 모른다.

오늘 보이는 세상은 어제와는 다른 세상이다. 기업의 임원들은 이걸 이제라도 깨닫게 되었을까?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