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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20일 07시 0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21일 14시 12분 KST

미국과 중국의 담합을 경계한다

한국 외교당국이 한·미, 한·중 관계 자~알 돌아간다고 허풍을 떠는 사이 한국은 두 강대국이 두는 장기판의 졸 신세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사드를 받으라고 한국에 고강도의 압박을 가하던 미국이 갑자기 사드 배치 논의가 반드시 사드 배치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아리송한 말을 한다. 사드 어간에서 미국과 중국이 한국의 어깨너머로 담합한 냄새가 짙다. 개성공단 폐쇄의 참담한 악수로 신뢰 프로세스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첫걸음도 떼기 전에 좌초했다. 결국은 평화협정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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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이 수상하다. 짧게는 지금의 초긴장 상태를 풀고, 길게는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병행 논의하자는 데서 접점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월 21일 북한 4차 핵실험 전에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유엔 주재 북한 고위 당국자가 미 국무부 한국과장에게 미국과 평화협정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내고, 국무부는 "비핵화 논의가 중요하지만 평화협정도 논의할 수 있다"는 답신을 보낸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논의에 큰 불을 붙인 사람은 중국 외교부장 왕이(王毅)다. 왕이는 2월 23일 워싱턴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을 만나 북한 핵 문제를 평화협정과 병행 논의로 풀자고 제안했다.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케리는 북한이 비핵화 논의의 협상테이블에 나온다면 북한은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한반도의 미해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핵화 먼저"가 아니라 "비핵화 협상테이블로 나오면"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현실적 입장은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한국의 원칙적 입장과 충돌한다. 왕이는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논의를 거듭 띄우고 다닌다. 중국은 평화협정이라는 골포스트를 한반도 문제 해결의 종착역으로 세워놓은 것이다.

평화협정은 북한의 전매특허품이다. 북한은 한반도와 인도차이나 문제에 관한 1954년 4월 제네바 정치회의에서 평화협정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1962년과 74년 미국에 주한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85년과 91년에는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북·미 평화협정, 남북 불가침조약을 제안했다. 92년 1월에는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가 미국을 방문해 아널드 캔터 미 국무차관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접을 테니 북·미 외교관계를 수립하자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김정일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그리고 같은 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 미군의 한반도 계속 주둔을 용인하겠다고 말해 김용순의 제안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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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평화협정과 비핵화 논의를 처음으로 연계한 것은 2005년 7월 23일 외무성 성명이다. 두 달 뒤 6자회담 공동성명이 나왔다. 북한이 6자회담 공동성명에 서명한 것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논의에 찬성한다는 의미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문제 관련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는 데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3자회담일 경우 중국이 제외되는 것이 주목되었다. 그러나 2010년 북한은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논의에서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로 후퇴하고 한국은 평화협정 당사국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외무성 성명을 냈다.

미국의 입장도 9·19 공동성명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논의에 동의했지만 북한의 세 번의 핵실험이 있은 뒤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으로 갔다가 2015년 12월 뉴욕 채널의 접촉 뒤 다시 병행 논의로 기우는 듯하다. 왕이의 제안과 케리 장관의 기자회견이 있은 뒤 지난 3일에는 국무부 대변인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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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은 왜 갑자기 평화협정에 착안한 것일까. 그것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유일한 길이라는 공동의 인식 탓이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잇따른 국제사회에 대한 정면도발과 박근혜 정부의 대북 초강경 자세로 한반도가 일촉즉발 사태에 빠진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핵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북한은 국제 제재가 숨막히게 체감되면 늦어도 2~3년 내, 이르면 올해 안에 5차 핵실험, 그것도 수폭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미국과 중국도 안다.

한국 외교당국이 한·미, 한·중 관계 자~알 돌아간다고 허풍을 떠는 사이 한국은 두 강대국이 두는 장기판의 졸 신세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사드를 받으라고 한국에 고강도의 압박을 가하던 미국이 갑자기 사드 배치 논의가 반드시 사드 배치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아리송한 말을 한다. 사드 어간에서 미국과 중국이 한국의 어깨너머로 담합한 냄새가 짙다. 개성공단 폐쇄의 참담한 악수로 신뢰 프로세스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첫걸음도 떼기 전에 좌초했다. 결국은 평화협정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다. 김정은이 광란의 칼춤을 춘다고 우리까지 우쭐우쭐 장단을 맞추면 한국은 왕이가 세운 평화협정이라는 골포스트를 향해 미국과 중국에 끌려가는 처지가 될 것이다. 미·중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평화협정은 반드시 남북한과 미·중이 서명하는 2+2 방식을 관철해야 한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