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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4일 09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24일 14시 12분 KST

한국의 외교적 결정은 '한국 것'이어야

연합뉴스

동북아시아가 질서 개편으로 요동을 친다. 큰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으로 몸집을 헤비급으로 키운 중국이 넓은 태평양을 미국과 두 개의 세력권으로 나누어 태평양의 서쪽 절반을 제 나라 앞마당처럼 차지하겠다는 막무가내의 야망이다. 시진핑이 2년 전 오바마와의 회담에서 제의한 G2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그것이다. 서태평양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는 해저 자원의 보고인 데다 해상 수송로의 길목이다. 그래서 중국은 지금 남태평양에서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 수많은 섬들의 영유권을 다투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 네 나라 모두의 힘을 합쳐도 중국을 당하지 못한다.

둘은 중국의 그런 야망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대응이다.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의 안보·경제상의 핵심 이익을 중국에 나누어줄 생각이 없다. 그래서 미국은 한반도에서 서남아시아의 인도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의 넓은 중국 포위망을 구축한다. 중국과의 직접 대결을 피하면서 물리적인 견제는 일본에 하청을 주고 있다. 미국의 하청업자가 된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신바람이 난다. 시진핑의 센카쿠 도발, 이명박의 2012년 독도 방문과 천황에 관한 발언으로 동면 중이던 민족주의가 화산처럼 폭발한 데 힘입어 아베는 11개의 안보 관련 법안의 중의원 통과를 산뜻하게 처리해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의 길을 열고, 집단자위권이라는 이름으로 동북아에서 군사적인 존재감을 크게 높여 중국과 맞선다.

셋은 핵·미사일 보유를 지렛대로 한 북한의 도발적인 자세다. 지난해 10월 북한 실세 3인방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석으로 잠시 남북한 간에 대화가 재개될 기미를 보였지만 김정은의 무자비한 숙청정치와 한국 정부가 극소수 사회단체의 대북전단 띄우기 하나를 저지하지 못한 게 원인이 되어 남북 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지뢰도발을 계기로 남북한은 실속 없는 확성기 방송에 열을 올리고 있어 가까운 장래에 대화의 단초를 열기 힘든 불편한 상황이다. 김정은이 "이만하면 내 권력기반이 확고하다"고 자신할 때까지 남북 관계는 동결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도 남북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고 하면서도 남북 관계 개선을 방해할 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내년에라도 북한이 붕괴될 사태에 대비하라는, 대통령으로선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의 봄을 보고 북한체제의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고 다닌 오류의 반복이다. 개탄스럽다. 1870~1871년 비스마르크 아래서 프러시아-프랑스 전쟁을 탁월한 전략으로 지휘해 독일 통일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전설적인 전략가 헬무트 몰트케는 "정치가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어야 하지만 모든 진실을 다 말해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경구(Maxim)를 남겼다. 패러디 하면 "정치가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어야 하지만, 모든 사실을 다 말해서는 안 된다"가 된다. 몰트케의 충고와 상관없이 북한 붕괴 임박이 사실인지도 확실치 않다.

동북아 정세가 한국을 딜레마에 빠트리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는 것은 말 안 해도 다 안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다. 어떻게 이 고립에서 벗어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인가다. 결국 답은 대미·대일·대중 실용주의 자주외교로 환원된다. 한·일 관계에서 박 대통령이 아베의 종전 70주년 담화에 대한 반응으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흔들지 않겠다는 아베의 말을 절제된 언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한·일 관계 개선의 청신호가 될 것이다. 민족주의의 기세가 등등한 일본에서 더 기대할 것이 없는 이상 위안부 문제와 안보·경제·문화 분야 협력을 분리 대응하는 외교가 현실적이다. 아베의 역사왜곡은 그의 무식과 무개념 탓으로 돌려 용서해 버리자.

한·미 동맹이 한국 안보의 근간이지만 미국 눈치를 너무 본다. 9월 3일 중국 전승절에 가는데 미국의 암묵적 양해를 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굴종외교다. 북한 견제에 중국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언젠가 있을 통일외교에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전승절에 가서 군사 퍼레이드까지 참관하는 걸 주저할 필요 없다. 한국은 견실한 중견국가로 주변 강대국 파워게임의 균형추다. 이제 넓은 동북아를 시야에 두고 이 지역 유일한 중견국가로 '균형추의 힘'을 이용해 동북아 평화를 견인하면서 남북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을 중국 포위망에 편입시키려고 한·미·일 3각 안보체제에 들어오라, 사드를 받으라, 미사일 방어(MD)망에 참가하라고 압박하지만 판단은 철두철미 '한국 것'이어야 한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